퇴사 후에 든 생각,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유튜브를 잠시 내려놓다.
#1. 여기까지 합시다.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에요.
지난 달 5월 26일, 나는 그렇게 다시 프리랜서의 길로, 글쓰는 사람의 길로 돌아왔다. 다니던 회사의 사정이 안 좋아진 것도 있지만, 그전부터 지속된 업무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작년 중반, 나는 동년배들보다 삼재의 영향력을 6개월이나 일찍 받았다. 그 덕에 블로그 수익화는 제동이 걸렸다. 창업 또한 지지부진하다 결국 구성원의 3/4가 포기함에 따라 실패로 끝났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의 치매까지 악화되었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나는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에서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말해서 좋은 일이 아니니까, 그냥 편하게 삼재 탓으로 돌리겠다. 그 삼재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게 컸다. 결국 그 구설수 때문에 퇴사를 했다.
#2. 미래를 준비하며, 퇴사를 축제로 삼았다.
퇴사 후에는 심리적인 안정을 꾀하는 일과 함께, 내가 미뤄뒀던 것들부터 시작했다. 두 번째, 그것도 일방적으로 당한 권고사직이었던 지라... 다음 회사에 가서도 이 일 때문에 악감정이 생기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구인사로 내려가 "인플루언서가 되게 해달라, 내가 마음에 둔 여인과 연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기도를 드린 이유는 하나. 회사에 다니게 될 것이지만, 회사에 휘둘리는 개인이 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애란 것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다. 내 편을 만들고 싶었다.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리고 온 후, 나는 다시 글의 세계로 돌아왔다. 회사에 가게 되면 유튜브를 하지 못하지만, 대신에 브런치나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은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내 기반을 다시 다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글의 세계로 돌아간 이유는, 하단부에 자세하게 적겠다.)
그리고 미뤄뒀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폼나게, 내가 인플루언서가 된 다음 하려고 했던 퇴사파티를 진행했다. 어차피 같은 상황으로 두 번 짤린 거, 내가 왜 미뤄둬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즐겼다. 트렌토리에 가서 는 퇴사는 축제와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 때문에 미뤄뒀던 것을 잠깐 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그 기간이 참, 축제와 같게 느껴졌다. 삶에서 잠깐 쉬면서 즐기는 축제같이 말이다.
퇴사에 대해 생각을 바꾼 후,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갤럭시워치 액티브를 사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관리를 하게 됐다(워치 안 차고 나가는 날은 삼성헬스 앱으로 관리). 디자인 수업 등을 들으며 나의 퍼스널 컬러를 알아갔다. 하수연 작가님의 책 등을 읽으며 마인드풀니스 등을 하며 마음챙김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축제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내 꿈인 유튜버를 보류하고, 다시 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3. 짧게 끝난 축제와, "글"을 선택하고 "영상"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축제가 짧게 끝난 이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명백한, 내가 책임져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퇴사를 통보한 회사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할머니의 치매는 더 심해졌다. 그간 앞만 보고 달려온 내 건강도 정상이 아니었다. 올 초,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간 건강 주의하셔야 해요. 환자 분 상태 좋은 편 아닙니다"라고 의사가 말했다.
이 상황에서 공인중개업을 하시는 부모님 일까지 막혀버렸다. 아, 진짜! 삼재라는 놈은 왜 하필 이 시기에 나타나서 나를 이렇게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쉬지도 못하게 하는가! 라는 억울함이 들었다. 근데 억울함이 든 건 감정일 뿐이다. 감정에 지지 말고 현실을 살아야 하는 존재는 "나"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삼재가 이렇고 저렇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족의 치매, 자금의 경색, 그간 악화된 내 건강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 건강에 피해가 덜한 일이 무엇일까? 이 고민은 결국 답을 줬다. 내가 기획/제작/운영/편집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은 글 콘텐츠 제작이라는 것을. 블로거 때부터 글은 6년간 써 왔으니까, 내 건강을 책임지며 할 수 있다.
반면에 영상은 아니다. 기획/제작/편집까지 단계가 너무 오래 걸릴 뿐더러, 나의 모든 것을 갈아 넣은 다음에 찾아오는 회복기도 매우 길다. 이걸 인지하고 난 후, 나는 지난 회사에서 영상제작편집, 글쓰기, 마케팅 모두 했던 경험이 생각났다. 내 몸 전체가 아파왔던 그 경험이. 회복기도 길어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도 3일 넘게 걸렸던 것을.
결국, 내 몸을 지키며 돈을 벌고, 내 브랜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글로써 콘텐츠를 남기고, 마케팅 회사에 들어가 역량을 써야 하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글쓰기는 지난 6년간 해 온 일인지라, 전 회사에서도 글쓰기 업무를 할 때는 별 문제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의 길을 선택했다. 선택한 직후는 빠르게 움직였다. 요즘 듣는 패스트캠퍼스 강의에서 이유미 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내 글을 발전시켜 줄 책들을 샀다. 자기계발서가 아닌, 나의 통찰을 높일 수 있는 책을 샀다.
또, 가장 잘 정제된 글이 모인 매거진을 구했다. 매거진은 발행사마다 특징이 다르다. 그라치아는 뭔가 잘 정리된 글의 느낌이 있다면, 맥심은 정말 30대 남자들의 가십을 채워주는 강력한 병맛이 있다. 이런 글들을 보면, 내 글 실력도 늘거란 기대감에, 매거진을 구했다
#end. 글의 길로 돌아오며
유튜브를 결국, 다시 미룬 것은 참 가슴 아팠다. 내가 꿈꾸고자 했던 것들을 또 몇 년 더 미뤄야 하고,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지금 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했을까. 글로 돌아온 이 시점, 아직 내 예전 블로그에는 구독자 10,800명이 그대로 있었다. 내가 쓴 글들은 재작년, 파워블로거에 올랐을 때보다 더 높은 공감을 받고 있었다.
글 덕분에 한혜원 작가님, 김가희 작가님과 같은 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 분들이 내 인생 귀인이 된 것은 두말할 것 없고. 결국 내 경쟁력은 글에 있었던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고, 글의 세계로 돌아오기로 했다. 내가 회복에 성공하고, 삼재에서 벗어난 후에 유튜브를 해도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나도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회사 생활을 더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의 세계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회사에 들어갈 때도,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회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일단은 내가 잘하는 것, 경험이 쌓인 것을 토대로 재기를 꿈꿔보자. 그리고 지금 닥친 문제들부터 하나씩 해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