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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Apr 03. 2022

157 좀처럼 빛나지 않는 삶이라도

탄자니아 모시 AA

거짓말이란 말이다, 쇼노스케, 이렇게 생겼단다. 낚싯바늘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땅 파기는 좋아해도 낚시와 거의 연이 없는 사람이면서. 낚싯바늘은 물고기 입에 걸리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끝이 구부러져 있거든. 거짓말도 그렇구나. 그렇기에 남을 낚기는 쉽지만 역시 걸리고 나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그래도 빼려고 들면 그냥 찔려 있을 때보다 더 깊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의 마음도 후벼 파게 되는 것이야.
아버지는 가쓰노스케가 울더라고 가르쳐주었다. 거짓말 갈고리를 빼는 아픔에 울더구나. 그러니 쇼노스케야. 아버지는 이어서 말했다. 작은 일, 사소한 일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한평생 계속할 각오가 있을 때만 하려무나.


 벚꽃, 다시 벚꽃 - 미야베 미유키, 401쪽. 그녀는 미스터리의 여왕이다. 1960년 도쿄 태생으로 추리소설, 미스터리 분야의 각종 상은 다 받았지 싶다. 그녀의 소설은 선명하고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정교하다. 덕분에 잘 읽힌다. 소설 속에는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작가의 시선을 통해 가족문제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 가족의 소중함을 배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에서 벚꽃이 유혹하는 달콤한 향기도 맡을 수 있다. 각자의 사정, 각자의 욕망 속에서 서로 상충하는 인물들 이야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변명들, 주어진 시간을 치열히 살아가는 태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다르지 않음 깨닫는다.


 을 펼치면 에도 1836년의 봄, 벚꽃이 지천으로 날리는 언덕이 아슴아슴 보인다. 에도는 도쿄의 옛 이름이다. 소설 초반에는 '이제 막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벚나무가 바람에 가지를 흔들고 있다', '강바람이 불어 벚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아침 햇살이 환희 빛난다'는 이른 봄 풍경이 나온다. 약간 쌀쌀하고 불안정한 기온이 느껴지는 묘사다. 등장인물들이 펼칠 심리적 관계를 그림처럼 보여다. 만개한 아사쿠사의 벚꽃과 스미다 강변의 따뜻하고 낭만적 풍는 다르다. 벚나무 아래 아무도 없는 텅 빈 풍경 같다. 등장인물들의 삶의 의미가 제각각 임을 짐작케 하려는 의도적 묘사로 읽힌다. 럼에도 도쿄의 골목길을 걷고 있는 편안함을 준다. 


 쇼노스케가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고 정서적인 주거 환경을 찾고 싶다며 휘적거리며 골목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쇼노스케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나게 뛰어놀 멋진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듯하다. 미야베 마유키는 언어가 사고 범위를 규정하고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듯 공간에 대한 경험이 그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소설 속에는 다양한 집이 나온다. 폭 9척에 안길이 2칸인 쪽방들, 다다미 넉장 반 크기의 단칸방, 울이 있고 서가가 있는 집 등이다. 집이 크다고 정서적 욕망을 채워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쇼노스케가 커피를 들고 이 골목 저 골목 탐험하는 즐거움을 쏠쏠히 느끼며 걷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자. 그가 마시는 커피는 탄자니아 모시 AA, 오늘의 커피다. 변덕스러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제자리를 찾는 맛이다. 갈등을 누르고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쓴맛이 다. 살아가는 일이 피곤함과 갈등의 근원이어서는 안 된다며 산뜻한 신맛을 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삶일지라도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쇼노스케에게 딱 어울리는 커피다. 실의에 빠져도 의미를 잃었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벚나무도 강가에서 가을비에 젖어 먼 봄날을 꿈꿀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그리 끝나는 이유를 헤아려 보자. 산다는 건 물가에 비친 거울 벚꽃처럼 쓸쓸하지만 누군가를 그리는 달콤한 마음처럼 적당히 정답고 서툴다. 그럼에도 사랑이 흘러넘치길 바라는 일이다. 벚꽃 분분히 흩날리는 밤, 우리 각자의 사정대로 충분히 사랑에 빠지자. 산뜻하고 가벼운 커피 한 잔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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