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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킴 May 24. 2024

뭐 우리 아빠는 영 급했나 보다.

나의 4화


아빠의 이번 편지에는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부모님들 자리에서 서로를 인정받았다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상견례를 했던 모양이다. 나의 상견례는 어떠했더라. 당시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천안에 있는 고급 중화요리 식당으로 향했다. 아빠와 형과 나는 양복을 입고서 엄마는 가장 세련된 옷을 꺼내 입고 아내의 식구를 만났다.


그때 나는 나와 아내가 가장 긴장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 보니 부모님들도 못지않게 더 긴장하셨을 것 같다. 우리는 연애를 비교적 오래 하면서 각각의 부모님을 뵈어왔지만, 부모님끼리는 서로를 마주하시는 첫자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혼이라는 게 마냥 당사자들끼리의 행사가 아니기에, 부모님들 간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 많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체로 분위기가 좋았다. 결혼 관련해서도 우리끼리 어느 정도는 이야기가 다 끝난 상황이어서, 그 자리를 부모님들끼리 확인하는 자리였던 것 같다. 당시 내 마음은 또 하나의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당시 결혼 준비를 하면서 매주 주말 우리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것 마냥 하나씩 업무를 쳐내기 바빴다. 예식장, 스드메, 청첩장, 상견례, 신혼집 계약, 리모델링 등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이게 힘들어서라도 두 번은 못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상견례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사실 엄마는 아직도 종종 그런 말씀을 하신다. 솔직히 말하자면 할머니께서 본인을 그다지 탐탁지 않아 하셨다고.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당시 큰아빠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아빠의 무대뽀 전략으로 결혼에 성공하셨다는 이야기다. 할머니께서 아빠에게 “뭐시 그리 급하다고 결혼을 한다고 하냐. 너네 형이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라고 말씀하셨다는데, 뭐 우리 아빠는 영 급했나 보다. 편지만 보더라도 아주 세기의 사랑이다.


요즘은 사실 시기가 뭐가 중요할까. 결혼을 빨리 한다고만 하면 오히려 부모님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 같다. 출산율 0.65명 시대에 아기라도 낳는다고 하면 거의 축제 분위기다. 분명 연애하기는 더 쉬워졌는데 결혼하기는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아이 낳기는 안정적인 생활이 뒷받침이 된다는 신분 증명과도 같아졌다. 다른 것보다 저출산 문제는 얼른 해결이 되면 좋겠다. 그래도 이제는 국민적, 정치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으니 희망이 보이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건 과연 엄마가 아빠의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주었을 지다. 본인의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자신에게 반응을 알려달라는 아빠가 조금 귀엽다. 엄마는 과연 아빠의 사진을 보여 주었을까. 보여주었다면 그 친구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걸 아빠한테 솔직하게 말했을까. 요즘이라면 인스타 아이디로 바로 보여줬을 텐데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연애하는 양상은 다 비슷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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