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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민 Jan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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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반가웠다.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우리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서로 다른 학교에 배정되었다. 하필 두 학교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고, 휴대전화가 없었던 우리는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너 전화번호 알아낸다고 엄청나게 고생했어, 인마.”


녀석의 첫마디였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는데, 내 번호 어떻게 알았냐?”


나는 실실 웃으며 녀석에게 물었다.


“다 방법이 있다. 이 말이야.”


오랜 친구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정신없이 떠들던 중 인호가 말을 했다. 조만간 동창회를 열 예정이라고 했다.


“정식으로 하는 건 아니고, 연락이 닿는 친구들만 일단 부르기로 했어. 본우 너는 올 거야?”


초등학교 동창회라니…. 내가 동창회에 참석할 나이가 되었구나. 신기했다. 인호의 성화에 일단 가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왠지 모르게 참석이 망설여졌다.


‘초등학생 시절 내가 엄청 사교적이었던 것도 아니고, 휴대전화도 없었던 터라 연락하는 친구들도 많이 없는데…. 아, 몰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지금은 하는 일에만 집중해. 이것 말고도 너는 해야 할 일이 많아.’


나는 일단 동창회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 저 깊은 곳에 던져 놓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은 금세 다가왔다. 동창회에 가기로 한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태생부터 극 내향인이었던 나는 많은 고민 끝에 결국 동창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번이 아니면 옛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나리도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짝꿍이었던, 중학교 시절 학원을 같이 다녔었던 나리. 여전히 하얀 얼굴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그녀를 생각했다.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 동안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얘가 왜 이럴까. 사실 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나리에게 내 생각의 물결이 닿은 순간, 내 머리와 가슴속에서는 커다란 파도가 일었던 것이다.


그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가끔씩 그녀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함께 당산을 갔었던 기억이나, 함께 어린이 대공원을 갔었던 기억 말이다. 한 번은 졸업앨범을 뒤져 그녀의 집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여보세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안녕하세요. 나리네 집인가요?”


용기를 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곤 흘러나오는,


“잘못 거셨나 본데요.”라는 대답에 크게 실망했던 적도 있었다.


나리도 동창회에 올까? 올 리가 없지. 그녀는 2학년 때 전학을 갔는걸. 나는 혼자서 머리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하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그녀에 대한 생각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질 줄 몰랐다. 그렇게 나는 피곤함에 잔뜩 찌든 얼굴로 본가를 찾았다.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머니께서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어이구, 얼굴이 반쪽이 됐네. 엄마가 혼자 살아도 잘 챙겨 먹으라고 했어, 안 했어? 사과 깎아줄까?”


어머니의 권유를 돌려 돌려 거절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어떻게 지금이 더 깨끗해 보이는 거지? 방구석에 상자 한두 개 더 놓여 있는 걸 제외하면 내 방은 예전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 머리맡에 그대로 붙어있는 슬램덩크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좋아합니다. 이번엔 진짜라고요.’


만화 속 한 장면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서 있었던 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용기…. 내가 참 많이 부족했던 것. 지금 내 속에서 일어난 이 감정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배가 고파졌다.


“저 사과 먹을래요!”


외치며 방을 뛰쳐나갔다.






약속 장소는 고향에서 제일 번화한 곳에 위치한 먹자골목이었다.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날이 따뜻해서 다행라고 생각했다. 검은색 기모후드에 통이 좀 있는 베이지 치노 팬츠. 외투는 청 셰르파 재킷을 입었다. 너무 딱 맞춰 나가면 안 되지, 오랜만에 보는 건데. 여유 있게 버스를 탔다. 고향에 오기 전 모임 인원을 인호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다들 사는 게 바쁜가 봐.”


인호가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겠지. 바쁠 시기잖아. 다음번에 하면 더 많이 모이지 않을까?”


“그럴까?”


나의 희망 섞인 예측에 인호는 회의적인 목소리를 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바빠질 텐데.”


약속장소의 문을 열었다. 그곳은 고깃집이었다. 일행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 다른 방향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인호가 보였다. 오랜만이었지만 녀석의 얼굴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씩 웃으며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다른 얼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호 옆에 남수. 나와 인호와 함께 자주 어울려 다녔던 녀석이었다. 그 옆에는 차례대로 종규, 민수, 성찬이…. 그리고 나리.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리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마비되었던 신경계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놀라움과 함께 의아함이 들었다. 그녀는 2학년에 전학을 갔었는데? 그 순간 나리의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고, 이내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규리가 있었다. 초등학교 학생회장 출신이자, 마당발 그 자체였던 규리는 나리가 학교를 다닐 때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그 때문인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동창들의 환호와 인사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으로 인해 나는 조금 어지러워진 상태였다. 지금 이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규리가 입을 열었다.


“너도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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