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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볼

가끔씩 힘이 되는 기분 좋은 말!

by Eunjung Kim
테니스 레슨

2024년 연말, 잘한 일 중 하나를 꼽는 다면, 십여 년 만에 운동다운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또 혼자 하지 않고 남편을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고 윽박질러서 함께 운동을 것과,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깜깜한 사춘기 동굴로 동면을 시작하려는 아들을 부리나케 낚아채어 셋이서 같은 운동을 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마스터 킥은 바로 우리가 사는 타운 하우스단지 바로 옆(얼마나 가까운지, 걸어가도 1분이 안 걸림) 공터에 테니스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기초공사부터 시작하여, 건물이 들어서고 실외 경기장이 완공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에이, 공 튀는 소리 시끄러운 거 아냐? 그냥 근린공원이나 생겼으면 좋겠는데. 트랙이라도 달리거나 운동기구라도 하면 좋으련만..'

하는 안타까움 조금에, 외면하고픈 무관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눈이 많이 온 가장 추웠던 연말의 어느 날, 우리 집 2층 창문으로 테니스장의 오픈을 알리는 네온사인이 딸깍 켜지는 것을 보고는 무엇에 홀린 듯 '테니스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화로 당장 상담 예약하고, 등록하고 다음날 바로 레슨을 시작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던 걸 보면, 분명 무엇에 홀렸거나 아니면 모든 미지의 시작이 그러하듯 그날 우연이 나를 비껴가지 못했거나.

우리 둘째도 매일 치료실 다니며 열심히 근테크 중입니다

나의 운동의 역사는 별거 없다. 10대의 운동 경험 이라고 한다면 운동장, 놀이터, 골목 등지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약간의 체육을 곁들인 놀이에 가까웠으므로 무에 가깝다. 수강료를 지불하고 제대로 배운 운동이라면, 결혼 전에 남편과(당시는 남자 친구) 1년 동안 새벽에 다닌 수영강습이 전부였다. 취미로 탁구나 배드민턴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삼 남매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나서는 홈트레이닝이나 스트레칭, 요가 정도가 주된 운동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생애전환기라는 마흔이 넘고 보니 조금만 무리를 하거나 아프면 회복이 더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나라는 단독자 일 때는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 아파서 아이들 곁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의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어쩌면 내면 깊은 곳에서 방어체계가 작동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운동을 해야 한다! 건강해져야 한다!


근테크(근육+재태크)

마른 것을 미덕이라 여기며 과도한 다이어트 열풍이 가시질 않았던 21세기의 풍조는, 코로나19 전후로 면역력으로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건강한 식단 하기, 양질의 수면하기, 꾸준한 근력 운동하기.. 등등 너무 잘 알지만 또 너무 잘 실천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근력이 노화와 수명에 영향을 준다며, 젊어서 근육을 모아 놓아야 한다고 방송에서도 sns도 온통 떠들어대는데, 내가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나는 근(육) 거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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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과연,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1. 현실직시

어디~보자~~ 젊은 날 모아 둔 근육이 어디 있었더라(있었던가?).. 아무리 뒤적거려 보고, '이 정도면 근육 아닌가?' 억지로 끼워 맞춰 근육이라 쳐주자 해봐도 내 근테크 잔고는 거의 바닥이다.


2. 현실 직시 후 절망

운동을 시작한 지 두 달 반, 레슨을 10번 받고 나서, 건강하게 살을 찌우고 근육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근육은 둘째치고 내 몸인데 내 맘대로 안된다.


3. 다시 현실직시 그리고 희망

20 kg가 넘는 둘째를 하루에도 수 십 번 안고 들고 이동해야 하는지라 앞으로를 생각하면 나는 더 힘이 세져야 한다.

힘이라 함은, 물리적인 힘은 물론이거니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화학적 호르몬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정신적인 을 포함한다.

새로운 운동을 배우면서 내 팔다리가 뇌에서 명령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약간은 수치스러웠다가, 근육의 가동 범위가 좁아서(안 쓰던 근육들이라) 원하는 기본자세조차 잘 나오지 않는 나 자신이 허수아비 같이 우습고 한심했다가.

그러나 그 시간을 견뎌내고 나면 땀과 함께 노폐물과 쓸데없는 감정들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것 같다. 며칠을 근육통으로 끙끙대지만, 시간과 또 다른 연습을 통해 통증은 근육이 된다. 뇌에서 긍정의 도파민이 폭발하고 반대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코르티졸이 감소하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운동하러 갈 맛이 난다.

볼머신으로 엉망진창 라켓 휘두르기를 했더랍니다. 흑역사로 오래 간직할겁니다
마흔 넘어서 들어보는 칭찬, 나이스 볼!!!


움직이는 공을 받아내기 위해 눈과 손이 협응 하고, 다리가 재빨리 보조를 맞춰주고, 무릎 관절과 허리의 움직임까지, 보통의 구기 종목들이 그러하지만 테니스 역시 전신 운동이다. 사실 아직 코치님이 친절하게, 받기 좋게 던져주는 볼을 적당한 거리에서, 정확한 타점에서 타격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쌩초보자가 하기에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두 가지는 정확히 알게 되었다.


1. 가장 기초가 되는 자세가 망가지면 실력은 늘지 않는다.

첫 한 달간은 테니스 라켓의 그립을 제대로 잡는 것도 헷갈렸다. 준비자세에서 볼을 타격하기 전, 백스윙 자세를 준비할 때, 몸의 무게중심, 어깨의 높이, 타점 위치 등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처음 배울 때 기본자세를 잘 잡아놓지 않으면 2~3년 테니스를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코치님께서 자세를 계속 지적해 주고 교정해 주는 기간은 아주 유익하다.

어쩌다 한 두 번, "오! 자세 좋았지?" 하면 그 자세를 몸으로 기억하려고 애쓴다.

2. 급한 것과 빠른 것은 다르다.

상대가 서브한 테니스 볼이 한 번 땅에 튕겨진 다음(원 바운스) 볼을 타격할 때, 볼을 보면 무조건 휘두르게 되는 급한 성질머리 때문에 종종 지적을 당했다. 빠르게 볼을 때리는 것과 급하게 때리는 것은 다르다.


볼이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급히 라켓을 휘두르면 백! 하고 라켓 헤드 끝부분에 맞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급했지'(코치님의 점점 내려가는 목소리)


심기일전하여 열의 한 두 번은, 볼의 바운싱을 기다렸다가 여유 있게, 스윙을 해서 볼이 스트링에 정확히 맞아 펑! 하는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날아간다.

'나이스 볼!!!! 그 느낌 기억하는 거야(정말 환하게 웃으심)'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는다. 강속구도 변화구도 아니고 코치님이 친절하게 잘 던져준 볼을 받아 쳐낸 것에 불과하지만, 제대로 타이밍을 잘 맞춘 그 순간의 내가 자랑스러웠다. 노련한 코치님이 초보 회원님 힘내라고 파이팅 해준 칭찬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뭐 얼마나 대단히 많이 배우지도 않았고 테니스를 안다고 할 수도 없지만, 결론은 나는 이 운동이 너무 재미있고, 인생과 맞닿아 있어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에서 선善이라고 여겨지는 가치들을, 삶의 기초가 되는 가치들을 잘 지켜나갈 것.

인생이 던져주는 잦은 그리고 짓궂은 질문들에 때로는 비껴 맞기도 때로는 온몸으로 맞고 뒤통수로 맞기도 하지만, 열의 한 두 번은 내가 고수해 온 선한 가치들로 막아낼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두 번 '나이스 볼!' 하며 어깨를 으쓱할 수도, 그러다 자주 '나이스 볼!' 하는 그런 날들도 오지 않겠나.


덧붙이는 말,

마침, 오늘 저녁 테니스 레슨 가는 날입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를 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날씨인데, 오랜만에 글을 쓰며 생각을 환기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글도, 운동도, 빼먹지 않고 꾸준히 해서 잔잔바리라도 근육을 잘 키워보겠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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