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한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희 Jan 20. 2021

필사적이지 않게 필사하기

[오늘한편] 글씨교정

글씨 교정과 나

글씨 교정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정확히는 324일입니다. 뭘 그런 걸 다 새냐고 핀잔을 주실 수도 있지만, 어떤 일을 얼마나 지속해왔는지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있는 것과 그냥 하기만 하는 것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더라구요.


어느 쪽이든 하다 보면 결국에는 관성이 붙어서 원래 의도를 망각한 채 지속하게 되는 건 비슷하지만, 알고 하는 쪽은 그래도 '내가 이걸 하고 있다'는 감각의 차이가 있달까. 여하간 1년이 넘게 글씨 교정을 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창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닙니다. 


누가봐도 멋들어진 글씨를 만든다거나, 캘리그래피를 해본다거나 뭐 그런 류의 욕망은 더더욱 아니죠. 그저 내 자신이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다는 실감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하필 글씨였던 이유도 별 거 아닙니다.


중학교 시절, 악필로 겪어야했던 억울한 일에 대한 컴플렉스가 여즉 남아있던 탓입니다. 예전에 그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2018년 10월에 썼으니 2년도 전이군요. 그럼 2년이 넘었다는 소리인데, 이제 324일이 되었다니 거짓말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작심삼일 100번

사실은 이렇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가급적 글씨 교정을 매일 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들로 그러지 못하는 날이 예상보다 자주 있었습니다. 글씨교정을 했던 날만 따로 세어보니, 2년 남짓 지났음에도 실제로 1년을 채우진 못한 거죠. 그래도 343일이라도 했으니 대단한 건가 싶기도 합니다.


글씨 교정을 도저히 못할만큼 귀찮았다거나, 비슷한 이유로 피곤하다거나, 어디 놀러갔다거나 등등. 그렇게 하루이틀 쉴 때도 있었고 아예 3일을 넘겨서 제법 오랜 시간 쉴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이 생길 때 쯤이면 글씨 교정을 이어나갔습니다. 작심삼일도 100번이면 300일이라더니.


그래서 글씨가 아주 나아졌느냐하면, 글쎄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스스로도 뚜렷한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남들에게 보여줘도 비슷한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더더욱 의구심만 생길 뿐이죠. 나아지기 위한 실감을 위해서 쓴다면서 도대체 나아지지 않는 짓거리를 왜 하는 것일까요.


2019년 11월 16일, 그리고 2021년 1월 19일. 별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그저 관성이 생겼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당초 글씨 교정의 목적이 뭐가 되었든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설령 순간의 변덕으로 시작했다고 한들, 이제 글씨 교정은 제 일상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뭔가 그냥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정신 차려보면 뭘 한 것도 없는데 오늘이 거짓말처럼 끝나있더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하니까요. 그런 순간, 찾아드는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당장 그 순간에 뭐라도 해야할 것처럼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뭘 반드시 해야한다거나, 특별한 일을 해야한다고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만 납득할 수 있다면 어떻든 상관 없죠. 설령 자기합리화라고 해도, 본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만 주어지면 그만입니다. 저에게는 그게 글씨교정인거죠.


수단으로서의 필사

한 달 전까지는 시를 필사하기도 했었습니다. 하필 시를 필사한 이유는 굉장히 단순했습니다. 글씨 교정 책을 한 권 끝냈던 터라 또다시 새로운 책을 사서 처음부터 시작하기도 뭣했고, 기계적으로 같은 말을 쓰려니 재미가 너무 없더라고요. 글을 잘 쓴다거나 시를 배워보겠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공들여 쓴 문장을 따라 쓰다보면 뭐라도 더 긍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건 사실입니다. 제가 간과한 점은 그러기 위해서는 필사하는 순간, 다른 무엇도 신경쓰지말고 오롯이 필사에 집중해야한다는 거였죠. 유튜브를 틀어놓고 머리를 텅 비운 채 받아적는 걸론 택도 없었습니다.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라는 마음가짐으로 받아적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시를 받아쓰다보니, 오히려 글씨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새로운 교재를 구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도저히 빈칸을 똑같은 글씨로 채워넣기가 싫어서 수시로 다른 걸 적고 있지만요.


필사적이지 않게 필사하기

그래서 가끔은 이럴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무턱대고 받아적다보면 그 자체로 얻어지는 게 있습니다. 하루를 닫는다는 느낌도 있고, 이거다 싶은 문장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되더라고요.


아마 무언가 이루려 했다면 이렇게까지 오래하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어영부영 1년을 채웠으니 지금부터 구체적인 목표 하나쯤은 있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좀 더 고민해봐야할 문제겠군요.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고 싶어서 시작한 글을 이틀이나 걸려서 마무리지었습니다.


늦은 밤이네요. 모쪼록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셨기를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이번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 중요한 고민, 오늘 뭐 먹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