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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Dec 17. 2019

외롭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2018년에 방영되었던 이선균x이지은(아이유) 주연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 드라마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던 드라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느끼거나, 반대로 불쾌해서 역겨운 드라마라고 손가락질한다. 어떤 점이 좋고, 또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알고 있다. 여기서 나는 어느 쪽이었는지 고백하자면.... 나는 이 드라마를 꽤 좋아했다. 나 역시 드라마 초반에는 폭력, 도청, 불륜 등 다양한 범죄 요인으로 극의 긴박함을 살리는 게 불만이기도 했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강한 끌림을 놓을 수 없었다.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아이유, 이지은(지안)의 연기를 칭찬한다. 기대 이상이었고, 마치 이지안이 실존 인물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고. 하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장면을 선사해준 건 이선균이었다.



마지막 회에서 이선균(동훈)이 눈물을 흘리자 사람들은 각자의 의미와 해석을 내놓았다. 나는 그 장면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슬펐다. 지안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순간에도 참 많이 울었지만, 유독 이 장면에서 나는 서럽고 외로웠다. 동훈의 눈물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갇혀있을,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감정의 빗장이 열리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동훈은 삼 형제 중에서도 가장 묵묵했고, 회사에서도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이었고, 가장으로서도 어긋남이 없는 남편이자 아빠였다. 후계동 친구들에게도 동훈은 허튼소리를 하거나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가끔 동훈이 힘들 때면 출가한 친구에게 찾아가거나 전화를 거는 씬이 나온다. 그게 유일한 동훈의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동훈은 그 누구에게도 속 깊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루가 시작되면 반복되는 일을 하고, 이성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 같았다. 동훈처럼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꽤 힘든 일이다.


물론 어른이 되면 참아야  게 너무 많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도 화를 참아야 하고, 슬픔에 잠겨 목이 따가워도 흐를 것 같은 눈물은 끝끝내 삼켜야 한다. 남들보다 잘나가지 못해도 웃으며 넘어가야 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두통이 몰려와도 자신이 맡은 일은 처리해야 한다.


어른이라면 참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건 눈물이다. 특별히 힘든 일을 겪고 난 후, 또는 신체적인 고통으로 쏟아내는 눈물이 아닌 외로움에 밀려오는 눈물은 정말 참기 힘들다. 정신없이 일을 하고,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취미생활을 하고,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모두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에게는 누구나 마음 한편에 숨어있는 외로움과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삶을 살아가다가 또는 버텨내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터져버리는 눈물은 감정을 절제하며 살아가는 어른에게 숨어있는 버튼과 같다. 동훈이 흘린 눈물 역시 아주 긴 시간을 견뎌온 감정이 끝끝내 흘러내린 게 아닐까.


동훈은 지안에게 말한다. 지안이 자신을 살리려고 후계동에 온 것 같다며, 다 죽어가는 자신을 살린 게 너라고 고백한다. 그 말에 지안은 동훈을 만나 처음으로 살아봤다고 답한다. 동훈과 지안은 서로의 감정을 열어주었다. 보통의 어른처럼 감정 표현을 사치라 여기는 동훈과 다친 마음이 절대 열릴 것 같지 않던 지안의 감정이 쏟아진 드라마.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 드라마에 나왔던 노래를 즐겨 듣는다. 가사가 인상 깊었던 <보통의 하루> <어른> 을 특히 좋아한다.



나 말이야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겨우 지켜내 왔던 많은 시간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을 막아 또 아무렇지 않은 척
너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렇게 오늘도 하루를 시작해
나는 괜찮아
지나갈거라 여기며 덮어 둔 지난 날들
쌓여가다보니 익숙해져 버린
쉽게 돌이킬 수 없는 날


<나의 아저씨>를 보고 난 뒤, 한참을 생각했다. 모든 어른이 행복했으면, 편안함에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나 역시 그 누구보다 외롭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혼자만의 다짐일 수 있겠지만, 이제 나는 눈물도 참지 않고, 감정에 솔직한 어른이 되려 한다. 무너질 것 같으면 그냥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진짜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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