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참여형 영상 콘텐츠 이야기
우연이었을까? 시작이 강렬했기에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또렷한 색채로 나의 일과 일상을 물들인 그들과의 만남은. 그들이 없었다면, 당시 내 역할의 방향도, 이후 내 글의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나는 그들을 동료, 혹은 동행이라 부른다.
한때 조직에서 커뮤니케이션일을 한 적이 있다. 원래 마케팅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그 일을 맡게 되었다. 대외 언론과의 소통은 리더가 담당했고, 나는 회사의 메시지를 내부 직원들에게 전하는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그 일을 하며 직원들과의 소통도 대외 소통 못지않게 많은 부분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뢰를 쌓고 직원 간 원활한 교류를 돕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접목했다. 그러던 중, 이 일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조직문화 차원의 소통과 결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객 경험이 그러하듯, 내부 소통에서도 콘텐츠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더 깊은 가치를 담아야 했다. 경영 철학, 노사 간 신뢰, 구성원의 화합, 미래 비전과 같은 굵직한 가치들은 조직문화 차원의 내부 소통 메시지가 되어야 했다. 이러한 가치들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결국,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자기 참조 효과(self-reference effect)에 따르면, 전혀 회사 사정에 관심이 없던 직원들도 익숙한 동료가 직접 전하는 이야기에는 더 관심을 보인다. 나의 고민도 ‘어떻게 동료를 참여하게 할 것인가’에 있었다.
보상 없는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동기가 필요했다. 흥미와 의미를 동시에 느껴 참여할, 열정 있는 고마운 동료들은, 고민의 과정에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들은 그 자체로 곧 소재도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을 만난 것은 마치 노래 가사처럼 ‘엄청난 우연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행운’이었다.
사내 뉴스레터를 운영하며 매일 아침 머리말에 작은 메시지를 담았다.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직원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때때로 동료들이 회신을 보냈다. 짧은 감사의 인사도 있었고, 깊은 고민이 담긴 피드백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그날 뉴스레터의 주제는 ‘반 자율’이었다.
''반 자율'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해 보니 '반 강제'와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중간 지점에서는 양 극단의 개념이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한 동료가 답장을 보냈다.
'반 자율, 반 강제. 중간 지점에 있으면 표현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어떤 업무를 반 정도는 자율적으로 처리하지만, 나머지는 기존 방식을 따른다고 해서 그것이 꼭 '강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한 줄의 회신이 사고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는 강제와 자율의 경계가 있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마음을 움직이려면 왠만한 동기로는 어려웠다.
나는 우선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시작과 끝사이를 채워줄 조직문화 활동의 키프레임(Keyframe)이 되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반드시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회사 공식 영상은 지나치게 사무적이고 딱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용을 충실히 담으면서도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것은 영상의 품질이 아니라, 스토리와 화자였다. 프레임 안에 들어와 줄 직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소문이 나면서 나와의 만남을 꺼리는 직원도 생겼다. 한 번은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려는데, 동료가 웃으며 물었다.
“혹시 이거 출연해 달라는 뇌물?”
나는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동참을 권유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사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행사는 ‘커피코너’였다. 글로벌 주요 인사의 방문이나 새로운 임원의 부임을 기념하는 이벤트로, 직원들은 평소 만나기 어려운 리더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이 공식적인 자리는 다소 형식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동료가 말했다.
“회사 커피 머신에 커피 종류가 이렇게 많은 거 아셨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회사 커피머신에 다른 종류가 있어요?”
그는 머신의 다이얼을 돌려 라테, 마키아토, 카푸치노, 리스트레또 등 다양한 메뉴를 보여주었다. 몰랐다. 그렇게 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도, 나는 늘 내가 아는 것만 선택하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의 일하는 방식도, 조직문화도, 혹시 이렇게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만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 생각의 조각이 형태를 갖추었다. 카페에서 하는 대화는 가볍지만 진솔하다. 회사라는 공간에서는 경직된 소통도, 카페에서는 더 자유로워진다. 마치 ‘커피챗(Coffee Chat)’처럼. 그래서 결심했다. 카페를 열고 직원들을 초대하자. 각자의 이야기, 회사 안팎의 이야기, 부서의 메시지를 스스럼없이 나누자. 한 잔의 커피를 손에 들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조직문화 콘텐츠 ‘리얼 커피코너’였다.
이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조력자가 필요했다. 늘 뉴스레터에 정성스러운 회신을 보내던 동료에게 먼저 출연을 제안했다.
“회사 커피 머신의 다이얼을 돌리면 더 많은 커피 종류가 나오는데, 기능 소개도 할 겸
우리 몇 명이 하나씩 다 마셔보고 솔직하게 맛 평가를 해보면 어떨까요?”
하루 만에 세 명의 출연자가 모였다. 별다른 대본 없이 프리토크 형식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커피 이야기 속에 회사 이야기를 살짝 곁들였다. 5분 남짓의 영상은 직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 더욱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었다.
리얼 커피코너 첫 진행자였던 동료가 퇴사하던 날,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송별 모임을 하며 몇 컷의 영상을 촬영했다. 그 영상은 연말 송년 모임에서 함께 감상했다. 콘텐츠는 그렇게, 우리 앞날을 살아가며 회상하고, 또 위로받는 따스한 영상의 온도가 되었다.
참여가 문화를 만든다. 그리고 그 문화가 조직을 변화시킨다. 나는 오늘도, 그 변화를 함께 만들어갈 사람들을 찾아 헤맨다. 헤매는 장소가 내부에서, 내외부로 넓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