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품은 장미 #3 - 완전관해 후 반년
"프로필 사진에 나무를 봤어요. 어느 산의 나무예요?"
"오랜 잎 없는 고목이죠? 어때요? 좋아 보였어요?"
"조금 슬퍼 보였어요."
여럿과의 등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매서운 추위가 부담이었는지, 결국 둘만 시작하게 된 산행도 어느새 중반을 향하고 있었다.
"언젠가 갔던 산 중턱쯤에 있던 나무인데, 너른 평야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를 내려보는 것 같기도 해서 좋았던 나무예요.“
알 듯 말 듯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는 로사에게,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성곽이 보였다. 정상에 거의 다다른 것이다.
“더는 자라지도 않고 잎이 없어 쉼터가 되지도 못하는 죽은 나무지만, 여전히 많은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한, 영원함의 상징 같지 않나요?"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가끔 하얀 입김이 가득한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 번씩 로사를 돌아보았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으며 이야기를 건네고, 또 받았다.
날은 추웠고, 최근 내린 눈으로 산길은 미끄러웠다. 아이젠을 신지 않으면 걷기조차 어려운 길이었지만, 다행히 험한 구간에는 천천히 오르기만 하면 정상까지 무리 없이 닿을 수 있는 친절한 계단이 있었다.
산에서 계단을 오르다 보면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마치 고목 같이, 여전한 존재로 내 마음 한복판에 변함없이 서 계신 할아버지. 나를 산에 자주 데려가셨던 할아버지는 어떤 험한 길에서든 든든한 길잡이이자 지킴이가 되어 주셨다.
그런 할아버지도 말기 암 항암을 중단하신 시기에는 낮은 층 계단조차 오르기 힘들어하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가끔 슬프게 아른거린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암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검사며 항암이 지금보다 더 힘들던, 꽤 오래전의 일이다.
할머니의 암
처음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중학생 때 할머니로부터였다. 할머니는 초기 진단에서 대장암 2~3기 정도로, 수술이 가능했을 것으로 의사는 판단했다. 가족들은 모두 걱정했지만, '현대 의학'을 믿었기에 긍정과 냉정을 잃지 않았다. 아직 어렸지만, 막연히 하늘의 누군가에게 두 손 맞잡고 '할머니의 회복'을 빌었던 나 또한 큰 병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 그리고 간호사 누나들이 할머니를 낫게 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에 큰 그늘이 드리워진 날은, 바로 그 수술 날이었다. 할머니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수술실에서 나오셨다.
"이미 복막 전체에 암이 퍼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수술이 무의미한 상황입니다."
수술실에서 막 나온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은, 근심 가득해진 부모님의 모습은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라는 힘겨운 버팀의 서막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의 아픔과 부모님의 슬픔, 그리고 온 집안에 드리워진 절망의 그림자는 짙게 느껴졌다.
정보를 찾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 나는 '암'이란 녀석의 정체를 이처럼 막연한 어두움과 두려움으로 상상하며 접했다. '무엇을 해야 하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사람이 달에도 가는 새 천년에, 커다란 병마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 계속 되뇌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사다 두신 어느 암 관련 책을 보았다. 정말 어두컴컴한 공간에선, 잠시 스쳐가는 빛이라도 소중히 느껴지기 때문일까? 어느 한의원 원장님이 쓰신 책에 담긴, 이미 병원이 현대 의학으로 '시한부 판정'을 내린 암 환자들의 회복기가 아주 작은 희망의 빛처럼 느껴졌다.
"저기, 책 '암, 알면 이길 수 있다' 저자이신 ○○○님 연락처를 좀 알고 싶은데요. 통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출판사에 전화도 하고, 같은 작가님이 쓰신 책이 또 있는지 큰 서점을 뒤지기도 했다. 결국 작가님과 닿지 않았던 한동안의 탐구생활의 끝은 무력함의 재발견이었다. 내가 무척이나 사랑한 할머니. 더 오래오래, 함께하며 행복할 기회를 앗아간 미운 불치의 암을 어떻게든 치유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던 그때 난 아직 열대여섯 살 즈음이었다. 하지만 중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책에 쓰인 수많은 한의학 요법과 민간요법으로 암을 극복한 이들의 사례가 그야말로 '책에 실릴 정도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거나 다소 '과장된 과정과 결과'라는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첫겨울을 맞이할 때 세상을 떠나셨다. 평생 누군가에게 원망 들을 일을 하신 적도 없고, 늘 자비롭고 자애롭게 주변을 돌보신 할머니를 그렇게 일찍 여의며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다.
'착한 사람도 그 몹쓸 것에 고통당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슬프게 헤어져야 하나요?'
다 낫고 나면 '신이 주신 선물'이요, 이겨내지 못함은 자연의 섭리라는 신앙적 타당함. 권선징악도 생명의 씬(scene)에는 해당되지 않는 주제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몇 년 후, 할아버지께서도 암으로 돌아가시자 그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착한 로사
“저는 그렇게 착하지 않아요. 선한 행동도 다른 이의 눈치를 보기도 하거든요. 길 가다가 있는 쓰레기를 주워 휴지통에 버리고 싶은데, 괜히 착한 척 유난 떤다 말할까 봐 그냥 지나친 적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요.”
산 정상 식당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가방에 챙겨 온 밀폐 용기에 담는 로사를 보며 '참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을 나와 걸으며 우리는 '도덕적인 행동과 타인의 시선'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눴다.
"가령 이런 경우죠. 조금 전 로사가 한 행동, 가장 친환경적으로 남은 음식을 포장한 것은 정말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에요. 여러 가지를 고려한 지혜로운 행동이죠."
길에 누군가가 먹고 버린 사탕 껍데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으며, 조금 전 식당에서 한 로사의 행동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고마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착하게, 정의롭게 사는 게 편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그걸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어요. 다른 이의 도덕성을 일종의 '가식적'이거나, '우월감'으로 다소 부정적으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길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누군가가 먹고 버린 빈 음료수 캔을 주워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 담으며, 로사는 덧붙였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누가 누가 착한가를 겨루듯 소소한 선행을 이어갔다.
그렇게 다다른 산 정상의 천주교 성지에 들러서, 잠시 위령비 앞에서 기도를 했다. 난 바로 옆의 동행을 위한 기도를 먼저 했다. 얼마 후 있을 로사의 림프종 완전관해 후 정기 검사에서 별일 없기를, 그리고 그녀가 가진 착한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새 생명을 누리며 한껏 행복하기를 바라는 기도였다.
지난 시간, 상실과 극복 모두를 겪으며 어느새 신을 향한 원망도 사그라들었던 것일까. 산을 돌아 내려오며 깨달았다. 착한 마음은 치유를 보장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삶의 끝자락에서 미련이나 후회의 짐을 남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로사는, 이미 그런 해방의 시간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어느새 그 길 끝에 다다라 치유의 문을 열고 행복한 미래로 나아갈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