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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의 순수함으로

가시를 품은 장미 #4 - 두 번째 편지

by 케니스트리

두 번째 항암을 앞둔 로사에게.


병원에 입원한다는 게 사실은, 살면서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닌데, 해야 할 치료를 못 한 채 오랜 기다림 끝에 하게 된 입원이 이토록 반갑게 느껴진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생의 기쁨이란 결국 상대적인 것이고, 행복이란 사건을 대하는 우리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해요.


병원에서 무사히 첫 항암을 마치고 회복하며 안도의 큰 숨을 내쉰 지 오래지 않아, 병실 사정으로 지연된 2차 항암 탓에 지난 몇 주간이 마치 몇 달처럼 길게 느껴졌어요. 내심 그대가 걱정할까 봐 겉으로는 ‘치료 과정에서 이 정도의 지연은 임상적으로 크게 의미 있지 않다’며 안심시키는 말을 했지만, 사실 내면에는 염려가 많았어요.

시간이 쌓여 하루가 되고, 이틀, 사흘이 되고, 어느덧 몇 주가 너무도 빨리 지났거든요. 그 사이 또 몸에서 무슨 안 좋은 변화가 있진 않을까 하는, 그런 불길한 생각들. 많이 걱정 됐죠? 그런데도, 견뎌야만 했을 거예요. 로사는 여러 모로, 참 잘해 주었어요.


식욕이 떨어져 먹기 싫은 음식도 억지로라도 잘 먹어 주었고, 매일 빠짐없이 산책도 하고, 컨디션 관리도 잘해 주었어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염려, 응원도 있는 그대로의 좋은 의도로 받아 주었고, 불안함과 아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미래 속에서도—당연하게도 성격이 변하기 쉬운 상황인데도, 로사는 한결같았어요.

웃음을 잃지 않아 줘서, 때때로 예민하게 굴었던 저를 다독이고 안심시켜 줬어요. 고마워요.


암은 단순히 아픈 것과는 달리, 이처럼 나와 주변 사람들을 시험하는 것 같아요. 암을 치료하는 길에는 고통도, 회복도, 기다림도, 불안함도 있죠. 그걸 몇 번은 더 견뎌야 하고, 또 몸을 돌보며 다음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해요. 그래서 완치를 이룬 이들을 마치 이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그 인내와 노력을 인정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그런 과정을 겪었고, 많은 이들이 그걸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정말 시기적절하게 좋은 치료를 받고, 신이 정한 결과를 마주했을 뿐이에요.


이제 와 다시 그대의 싸움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그 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숨어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어요. 병을 안은 채 하는 걱정, 염려는 우리가 평소 사회생활을 하며 겪는 스트레스와는 다른 성질의, 묵직하고 오랜 짓누름의 반작용 이겠지요.


특히 나라는 존재도. 내가 혹시 로사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그저 조금이나마 더한 긍정의 마음으로, 강한 목적의식이나 집착 대신 오직 그 ‘과정’에만 충실할 시기에, 혹여나 안 좋은 결과 앞에서 ‘남겨질 사람’으로 마음의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예쁜 모습을 보이지 못해 미안하다며,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그대의 예쁜 마음에, 오히려 내가 미안했어요. 그대 치유의 여정에, 도움도 안 되면서 근처에서 맴도는 내가 오히려 ‘사랑의 굴레’가 되어 그대를 옭아매는 것은 아닌가,... 아픈 이 못지않게, 나 역시 늘 좋은 마음만으로 그대를 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언제나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내가 그대의 ‘꼭 이겨내고, 살아낼 이유’라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언제나 내가 그대 치유의 길에 동행자로서 ‘도움이 된다’고 해 줘서, 고마워요.
다시금 용기를 가지고 그대 곁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다시 입원을 앞둔 그대에게, 이 마음이 사랑의 굴레가 아닌, 그 자체의 순수함으로 그대 치료에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이길 바랍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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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Daniel Je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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