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품은 장미 #18 - 두 번째 생일
오늘이 두 번째,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길.
사랑을 시작하면, 왜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벅찰까. 서로의 존재를, 그 모습을 기운 삼아 부드러운 열정이 스스로 지펴진다. 사소한 일들에도 웃음이 나고, 소소한 행동에도 마냥 기쁘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서, 사랑하는 와중에도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행복을 재단하기도 한다지만, 내게는 그이를 만난 순간부터가 달랐다.
오래 메마른 땅을 맨발로 걷고 또 걸어 마침내 만난 초원의 샘물처럼, 어느 부유한 동네의 나그네라면 그냥 지나칠 풍경에도 나는 기꺼웠다. 그런 행복의 시간이었다.
병실의 풍경을 전해 듣는다. 아픈 와중에도 자주 다툰다는 병실 속 보호자와 환자와의 대화를 말하며, 그래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진다고 로사가 말했다. 우리도 다퉜을까? 만약 1년을, 아니 2년을 함께한 커플이라면? 몇십 년을 함께 산 모녀 사이라면?
모습은 달라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그대로 려나?
우리에게는, 병중에도 서운해질 만큼의 긴 시간도, 끊길 리 없는 질긴 인연도 없었다.
우리의 한 달은, 꾹 눌러쓴 몇 자 편지글 속 ‘사랑해’ 같았다. 틀린 말에도 끄덕이고, 잡티마저 봄 햇살 닿은 아이의 살결 같았던 날들.
그리고 우리의 봄날은, 꽃샘추위를 만난 그 어느 날에 멈춰 있다. 여민 옷깃과, 꼭 붙어 선 서로만이 따스한 존재인 그 시점 어딘가에.
우리가 아직도 곱씹고 이야기하는 작은 에피소드들은, 오래 우린 매실청처럼 달다.
사실 별것 없다. 영화 보고, 가까운 산을 걷고, 동네 맛집을 찾고.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내가 모르는 곳곳의 숨은 명소에 데려가길 좋아했다. 그중 성당에서의 몇 번의 미사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말없이 마음의 끈만이 이어진, 깊이 공감하며 기도하던, 성령의 시간이었다.
그런 날이 다시 온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로사.
많은 것을 바랄 시기에, 우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나아갈 길을 알기에, 그 앞을 바라며 함께 걷기만 한 몇백 일. 우리는, 여전히 병원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 앞에서 하던 데이트도 이제는 대체로 전화로 한다. 병문안도 점차 만나는 횟수와 구역이 더 제한되었다. 치료를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한동안 느려진 말, 없어진 기운을 혹 꺼질까 손으로 감싸 다시 되살려 천천히 집 앞 공원으로 동행하는 일상.
자기는, 다 나으면 뭘 제일 하고 싶어요?
어느 날의 산책에 로사에게 물었다.
자기랑 같이라면 뭐든 좋아요.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로사의 작은 미소가 느껴졌다. 모자의 그늘 아래에서도, 빛을 잃어가던 로사의 눈에 잠시 생기가 든다.
우리 갔던 산 정상에 맛있는 식당 기억나요? 눈 많이 내린 날이었잖아요.
그럼요, 기억나죠.
거기 정말 맛있었는데. 양이 적어 늘 가지고 다닌다며, 남은 음식 싸간다고 배낭에서 밀폐용기 꺼냈잖아요.
짧게 짧게 대화를 이어가며, 우리는 함께한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항암 치료 기간 중에는 물리적으로 행동반경이 작아졌고, 한 번의 치료가 끝나도 한동안은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았다. 그 순환의 시기에 익숙하며, 점점 짧아지는 모처럼의 휴일을,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몰두하게 됐다.
서로 바라는 것이 많아 실망도 많은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무얼 더 바랄 수 없기에 행복한 그런 공간 속에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오래전 오늘, 네가 딸로 와주어 예쁘게 자라주어 많이 고맙고 행복했단다.
우리 딸이 병실에서 생일을 맞이하다니, 먼 훗날 웃으며 얘기할 날이 올 거야.
엄만 새벽에 네 기도를 하며 눈물이 많이 흐르더라.
오늘 이 눈물이 마지막 눈물일 거야. 이젠 웃을 날만 있겠지.
미역국 하얀 쌀밥을 지으며, 네가 먹어주길 기도했어.
태어나주어 고맙고 살아있어 주어 고맙다 우리 딸.
사랑해. 엄마가.
엄마의 편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