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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필요한 이유

가시를 품은 장미 #17 - 네 번째 편지

by 케니스트리

해뜨기 전, 아직 어두운 뚝방길을 달려 성당에 갔어요. 간절한 마음에, '걷는' 아니고 '달려가는' 기분이었어요. 오늘은 꼭 고해소에 들러야 했거든요. 간절한 기도보다 먼저 마음을 정갈히 해야 했나, 나의 죄를 씻어내야 했나 싶었기 때문이에요. 결과적으로 고해는, 가슴을 눈물로 가득 채웠어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고백을 하고, 깨끗한 손을 맞잡고 다시 기도했어요.


'지금, 나의 앞이나 뒤, 어딘가 안갯길 위에서 힘들게 걷고 있을 로사가 부디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다시 일어나 걸을 힘을 얻고, 동행의 마음이 위로와 평안 되게 하소서.'


여전히 외롭고 고된 싸움 중인 그대에게.


오늘 새벽에 펼친 주보에서,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에는 한계가 없다'는 문구를 발견했어요. 사랑하는 마음이 곧 세상을 향한 더 큰 사랑으로 번지기도 한다고요.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세상을 향한 더 큰 사랑, 그것이 지금 내가 하는 사랑의 가치인 것 같아요. 그러니 그대여, 내게 좋은 소식 전하지 못해서, 나와 대화하지 못해서, 이 좋은 계절 함께이지 못해서 미안해하지 말아요. 자기는 세상에 태어나 결국 만나 참된 사랑을 알게 했고, 스스로의 아픔으로 그를 돈독히 했고, 죽음에서 돌아와 기적을 알게 했고, 그로부터 더 깊은 사랑의 샘을 선물했어요.


먼 길 떠나기 전에 전할 오늘의 편지는, 그대가 조혈모 세포 이식을 위해 입원한 지 45일째에 쓴 일기로 대신할게요.


죽을 길에서 살 길로 들어선 사람은, 이제 치료가 아닌 치유의 과정 위에 있다고 해요. 몸의 생리가 정상화되고, 새로운 세포와 함께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마음이라고요. 마음은 세포보다 조금 늦게 회복된대요. 그러나 서두를 수 없는 게 또 마음이라서, 결국 스스로의 돌봄과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요.


그동안의 검사 결과들을 쭉 봤어요. 사람들은 이미 지난 이벤트에 크게 감동하지 않죠. 저는 보고 또 보고, 매 번 가슴 벅찬 기적을 느껴요. 그날이 떠올라서 놀라고, 또 놀란 가슴을 다시 한번 쓸어내려요. 아찔했어요. 난 그로부터 물리적으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데, 자기의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려 한다는 걸 어렴풋 알면서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안타까움에 통곡을 해도, 그저 집에서 신께 애원하는 일밖에는 그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자기는 긴 잠 끝에, 죽음의 물길을 건너다가 돌아와 눈을 떴어요. 자는 사이에 무슨 꿈을 꾸었나요? 무엇을 보았나요? 자기를 다시 내가 있는 세상으로 돌려보낸 이는 신인가요, 아니면 무의식의 자아인가요?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게 미안하다고, 더 좋은 사람 만나라고 했던 말에 대한 답 이에요. 나, 자기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밀어내도, 돌아서 갈 길을 찾지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다시는 내게, 미안한 마음 갖지 말아요. 떠나라고 하지 말아요. 자기는 여전히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고, 내게 그만큼의 사랑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자기는 그 무엇에게도,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많은 이들이,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에 감사하고, 또 감격하고 있어요. 그들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건강의 가치,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사랑을 깨달을 거예요. 그건 너무 큰 선물이에요. 자기가 시련을 짊어지고, 또 겪음으로써 얻게 한 희망. 스스로 가시밭길을 맨발로 헤쳐 나온 모습에, 사람들은 구원의 신비를 알았어요. 나도 그래요.


앞으로도 분명 우리 앞에 시련이 놓이겠죠. 그것은 피할 수 없어요. 그러면 걷어차거나 넘어가야죠. 너무 높아 넘을 수 없다면, 돌아가야 할 거예요. 돌아가기에 너무 크다면, 동행이 힘을 합쳐 이겨내야죠. 혼자는 어려워요.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을 서로 하라고 둘을 만드셨어요.


"서로 사랑하라." 우리 본당 광장 벽에 있는 성경 구절이에요. 내게는 그게, '로사를 사랑하라'로 보여요. 그런 눈으로 당신 있는 곳 바라며, 건강히 일어날 당신을 기다릴게요.


사랑해요. 언제나 그렇듯, 앞으로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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