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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Kwon Nov 01. 2020

너와 나의 집


#_


중년의 여자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저 안쪽에서 소녀의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 Mom, I love you.

- Love you, too!


여자는 차에 올라타며 다정한 얼굴로 자신의 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번엔 소녀가 빼꼼히 문을 열고 또 한 번 큰 소리로 외쳤다. Love you, Mom! 때마침 누군가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거리로 흘러나왔다. 초여름의 화창한 주말. 평화로운 주택가의 풍경을 바라보는 내 눈 앞에 아지랑이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툭. 툭. 방심한 찰나 떨궈진 눈물이 시멘트 바닥에 굵은 점들을 찍어냈다. 


- 잠깐 산책 좀 하고 올게.

- 나도 같이 가.

- 싫어. 금방 올 거야.

- 같이 걷자.

- 싫다니까!


I said NO! 주섬거리며 따라 나오는 그를 본 순간 날카로운 대답이 앞섰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조그만 우리 집에는 숨을 곳이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정말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르니 어디로든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웬걸. 대충 슬리퍼만 챙겨 신고 집을 나섰더니 딱히 갈 곳이 없다. 지난번에는 작정하고 수영장을 갔었더랬다. 물질하는 해녀처럼 수면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눈물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손가락 끝이 쪼글해질 때까지 참 오래도 울었던 것 같다. 그때처럼 마음 푹 놓고 울고 싶건만. 그를 피해 집을 나왔더니 거리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다. 


처음 이 동네를 선택한 건 순전히 집값 때문이었다. 아니, 우리 예산에 맞는 유일한 위치였으니 선택이랄 것도 없었다. 트레인 역에서 멀지 않은 신축 콘도이고 길 건너에 아담한 공원까지 있으니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그러니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경쟁자들이 몰릴 수밖에. 부르는 게 값일 만큼 활황이던 부동산 시장에 우리는 그야말로 똥줄이 탔다. 결국 고민 끝에 집을 파는 주인에게 손편지를 썼다. 당신의 집에서 새로운 가정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미래의 우리 아이가 이곳에서 자랄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인의 마음이 동했는지 우리는 무사히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삼 년 뒤. 우리에겐 여전히 아이가 없다. 나는 오늘 생리를 시작하며 마지막 인공수정에 처참히 실패했다. 


- 아이를 꼭 낳아야 해?


한창 재미지던 연애가 제법 진지해질 때쯤 그가 물었다. 응. 나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형제가 많아 시끌벅적한 집을 동경했던 나와 달리 그에게 아이란 겁이 나는 존재였다. 일에 심취한 부모님과 요란한 사춘기를 보낸 누나 사이에서 그는 스스로 자랐다. 알아서 잘하는 아이였고 적당히 잘 자란 어른이 되었다. 나 학교에서 쓰러진 적도 있었어. 영양실조로.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었거든. 언젠가 그가 내게 들려준 어린 시절의 추억은 애틋함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늙은 부모는 모닥불 위의 마시멜로처럼 따뜻하고 말캉해졌지만, 그는 같은 속도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한없이 다정한 사람도 가족과 사랑을 주고받는 일엔 여전히 서툴렀다. I don't think I'll be a good dad. 덩치가 산 만한 그가 다시 아이가 되어 내게 기댄 날, 나는 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 Ray-kwon. Desn't it sound cool?


길었던 연애를 마칠 때쯤 그가 말했다. 레이퀀, 꼭 유명한 래퍼 이름 같지 않아? 그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 아이에게 가족 성을 지어주자. 너와 나를 닮은 아이를 갖고 싶어. 그 날 나는 레몬처럼 노란 머리와 칠흑처럼 어두운 머리의 중간쯤을 상상했다. 그와 나의 색이 적절히 섞인 '우리'의 모습을. 


- 난 이 동네가 참 좋아.


우리 집을 갖게 된 후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I really like this neighbourhood. 나무가 우거진 공원을 산책하다가, 단골 커피숍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렀다가 꼭 잊지 않고 하는 말, 난 이 동네가 참 좋아. 함께 손을 잡고 꽤 많은 길을 걸었더랬다. 지금 혼자 울고 있는 이 길도 그와 함께였다. 


둘이서도 마냥 행복했던 우리가 둘 뿐이어서 슬퍼질 줄 몰랐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퍼즐 한 조각이 빠진 미완성 가족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는 같은 길을 걷고 또 걸으며 눈물 자국이 마르길 기다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주문을 외웠다.


- Honey!


한참을 걸려 돌아온 집 앞에는 익숙한 덩치의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툭. 툭. 그를 보자마자 애써 말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참지 못한 나는 그에게 와락 안기며 울음을 쏟아냈다. 더 이상 숨길 수도, 숨기고 싶지도 않은 울음이었다. 


- 어쩌면 우리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몰라. 

- 괜찮아.

- 평생 우리 둘 뿐일지도 몰라.

- 괜찮아.

- 아빠가 되지 못해도? 엄마가 되지 못해도?

- 괜찮아. We have each other. 


그가 다정하게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응. 나는 눈물을 훔치고 방금 지나온 길을 그와 함께 거슬러 올랐다. 

난 이 동네가 참 좋아.


2019년 6월. 햇살에 비친 그의 눈가에도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 Photo by Shabu Anow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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