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왜 SNS에는 "깨어있는 부모" 이야기만 넘칠까

이름없는 노력

by 소월강

요즘 유튜브에는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스스로 공부했어요’

같은 영상이 넘쳐난다.

깨어 있는 부모, 좋은 질문, 성찰하는 교육…

다 옳은 말 같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그런 콘텐츠를 보며 한 가지를 자주 떠올린다.

그건 방법의 문제 이전에 구조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오늘은,

그 ‘불편함’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해보고 싶다.




“똑똑한 아이는 공부하라는 말을 듣고 자라지 않았다.”

“아이의 지능은 부모의 질문력에서 비롯된다.”

깨어 있는 부모가 아이를 변화시킨다.”


이 말들,

단어 하나하나는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묘하게 불편하다.

그 말들은 결국

“부모가 얼마나 깨어 있는가”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종종

보이지 않는 박탈감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런 질문을 잘 못하는데…”

“나는 그런 감각이 부족한데…”

“혹시 내가 부족해서 아이가 손해 보는 건 아닐까…”

그런 메시지들이

지금도 아이 옆에서

매일 하루를 건너는 수많은 부모들을

조용히 작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불편한 건,

그 이야기들이 항상 '결과'만 말한다는 점이다.


"이 아이는 지금 의대에 다닌다"

"이 아이는 토론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이 부모는 절대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런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겪고,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

그걸 가능하게 한 정서력과 자아 인식,

그리고 몇 번의 좌절과 실패 속에서 만들어진 믿음 같은 것들은

다 빠져 있다.


그래서 그런 콘텐츠를 보면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결국 인간이 원하는 건 성공의 공식을 찾는 거구나.”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만 알고리즘의 위로 올라가는 거구나.”

“그러니까 진짜 중요한 말들은, 너무 빨리 잊혀지는구나.”


그렇다.

지금도 “당신은 지금으로 충분하다”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사람들은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반짝하고 빛나지만,

금방 묻혀버린다.


대중의 욕망 자체가 ‘공식’과 ‘단축키’를 원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플랫폼은 그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고, 증폭시킨다.

그렇게 사회는 더 초조해지고,

부모는 더 조급해지고,

아이들도 점점 숨이 막혀간다.


나는 여기서 질문하고 싶다.

모든 부모가 정말 ‘질문 잘하는 사람’이어야 할까?




깨어 있는 질문이란 건

단순한 육아 기술이 아니다.

그건 사고의 방식이고,

자신을 성찰해 본 경험의 산물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걸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든 부모가 그런 질문을 할 수 없다면,

그 부모들은 나쁜 부모인가?

아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밥을 차려주고,

등교 전 잊은 물건을 챙겨주고,

잠들기 전 등을 토닥이며

그날 있었던 일을 다 들어주는 사람.

그 사람은

질문을 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에게 '내가 너를 보고 있어'라는

가장 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질문력은 부모의 일부일 뿐

부모됨의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는 말이 적지만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일 수 있고,

누군가는 지식을 몰라도

아이를 안정시키는 힘이 있을 수 있다.


아이의 성장은

‘깨어 있는 질문’이 아니라

‘지속되는 사랑’에서 나온다.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하고 싶다.


“깨어있지 않아도 질문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3. 좋은 부모라는 이름의 폭력성


매주 금요일, 당신의 노력에 말을 거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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