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노력
아이가 서너 살쯤 되었을 때였다.
또래 아이들은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거나,
직쏘 퍼즐을 척척 맞춘다거나,
책을 아주 좋아해서 한자리에 앉아 오래 집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아무것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와 눈 마주치며 웃고,
놀이터에서 모래를 만지고,
뛰어다니며 노는 걸 좋아했다.
그때 나는,
‘아, 우리 아이는 그냥 평범한 아이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평범함’이 괜찮은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부모도
"우리 아이는 평범해요" 라고 말하길 꺼려하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겉으로는 아주 쿨한 엄마처럼 말했다.
“우리 애는 그런 거에 별 관심 없어. 그냥 평범한 아이야.”
하지만 그 말을 할 때,
내 마음은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이 안에 뭔가 특별한 재능이 숨어 있다가
내가 몰라봐서 사라져버리면 어쩌지,
혹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으면 어떡하지.
그 두려움이, ‘평범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 안에서 조용히 꿈틀거렸다.
그 시선은 분명 아이를 향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나를 향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부족한 엄마라서—
내가 그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목 없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혹시,
내가 아이의 가능성을 놓쳐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불안은 작고 조용하게 시작되었지만,
조금씩 내 안에서 쌓이고, 켜켜이 겹쳐지더니
어느 날, 결국 터지고 말았다.
나는 불안증 진단을 받았다.
내 의지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는 스스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약을 복용한 지 1년째 되는 엄마다.
내가 나의 불안을 조금씩 다스릴 수 있게 되자,
아이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아이는 처음부터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아이를 다시 들여다보니,
그 애는 처음부터 믿음직스러운 아이였다.
혼자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가는 아이였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불안이 문제였다는 것.
아이는 괜찮았다.
잘 자라고 있었고,
무언가를 서두르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늘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의 재능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힘'이었다.
아무 재능이 없을 것 같았던 나에게도
누군가의 삶을 붙잡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건, 내가 가진 행동력이라는 이름의 재능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믿는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 삶을 살아내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재능은 남이 정해주는 기준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안에서 천천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가능성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믿고 기다려주는 일이다.
#7. 내 아이를 보려면 나를 보자
매주 금요일, 당신의 노력에 말을 거는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