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샘 May 27. 2020

꽃그림 명화 16, 마리 로랑생

- 미라보 다리의 슬픈 연인들

꽃그림 명화 16, 마리 로랑생과 미라보 다리


Artemis


미라보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흐르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흘러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들 사랑도 흘러내린다


인생은 얼마나 지루하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



Apolinaire et ses amis

파리에 가면 센강의 미라보 다리가 있다.

프랑스의 시인 아폴리네르의 시로도 유명했던 프랑스의 상징이었던 미라보 다리.

십여년전 파리 출장시에 일부러 미라보 다리를 찾아가 본 적이 있는데, 파리 근교의 너무나 평범한 다리여서 실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시는 감미롭고 프랑스를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시이다. 그저 물 흐르듯 세월의 덧 없음과 사랑의 불확실성이 푸념처럼 가만히 녹아 있는 이 시에는 시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있다. 그래서 가만히 전해지는 그 애절한 사연에 청춘들이 너도나도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입에 암송하던 시절이 있었다.

Diane_la_Chasse 1908

무명시인이던 기욤 아폴리네르는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도난 당하는 사건에 뜻하지 않게 연루된다. 그림에 대해 조예가 깊었던 아폴리네르에게 루브르 박물관의 다른 작품을 훔친 도둑이 아폴리네르를 찾아 와 작품 감정을 의뢰하자 아폴리네르는 도둑을 호통치고, 신고가 두려운 도둑은 그림을 놔두고 도망갔고 아폴리네르는 그 그림을 들고 루브르 박물관장을 찾아 간다. 


그러나 박물관장은 아폴리네르를 도둑으로 오인하고 경찰에 신고해 가택수색과 동시에 주변 탐문까지 받게 되는 피의자 신분이 된다. 그 당시 피카소의 소개로 아폴리네르와 사귀던 여류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은 그를 찾아와 그의 무능과 도둑질을 질타하며 그를 떠나 버리고 만다.

The Kiss

얼마 후 결국 무혐의로 풀려난 그는 현재 생미셸 광장의 옥탑방에 아뜰리에를 꾸리고 있던 친구 샤갈에게 찾아가 신세 한탄을 하며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해가 뜰 무렵 집으로 돌아가려고 센강의 미라보 다리까지 와서 건너던 중이었다.


떠 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은 센느강의 눈부시고 그와 대조적으로 너무 초라한 자신을 돌아보며 한탄스러웠던 아폴리네르의 비참한 마음에서 미라보 다리를 건더던 순간, 아폴리네르는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시상이 떠오르고 이 때 쓴 시가 바로 '미라보 다리'이다. 

Feme a la Mantille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라 하던가. 이 시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아폴리네르는 수많은 프랑스인의 가슴에 도둑으로서의 혐의에서 벗어나고 동정론에 힘입어 프랑스 최고의 시인으로 등극하게 된다. 


결별 후 로랑생은 오토 폰 바예첸 남작과 결혼을 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아폴리네르는 한동안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해서 참전했다. 그러나 부상을 입고 후송된 뒤 쇠약해진 그는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1918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한편, 바예첸 남작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했던 로랑생은 결혼 7년 만에 헤어진 뒤 파리로 돌아와 삽화가와 무대미술가로 크게 성공하지만 속으로는 젊었을 때 사랑을 나눴던 아폴리네르를 잊지 못한다. 아폴리네르를 그리워하던 마리 로랑생은 1956년 73세의 나이로 숨졌다. 죽기 전 그녀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 몸에 흰 드레스를 입히고 빨간 장미와 아폴리네르의 시집을 놓아 달라.”

Femme_au_turban 1922


마리 로랑생은 프랑스의 여류화가로 파리에서 출생하였고 아카데미 앙베르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처음에는 로트레크와 마네의 작품에서 감화를 받았지만 브라크와 피카소 등과 알게 되고 아폴리네르와 살몽 등의 시인들과도 접하며 입체파 운동이 일어나는 와중에서 가장 첨단적인 예술을 흡수하며 자랐다. 

Mademoiselle Coco Chanel 1923

그러나 본질적으로 입체파는 되지 못하였다. 형태와 색채의 단순화와 양식화 속에 꽃과 소녀를 주제로 자기의 진로를 개척하여, 감각적이며 유연한 독특한 야수파 계열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로댕에 의해 ‘야수파 소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까지 한 마리 로랑생. 쾌활한 성격으로 언제나 다른 동료화가들과 지인들에게 극찬을 듣고 사랑을 받던 마리 로랑생. 

Mme. Domenica Paul

아방가르드와 큐비즘이 탄생하기까지 없어선 않 될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고, 여인이란 이름으로는 한없이 아름답고 화려한 그녀의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화가와 시인의 뮤즈로서 활동하기 위해서이고, 중간에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린다는 식으로 비꼬임을 당하기도 했다. 예술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미술사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더 기억되고 있다.

Nu_au_miroir 1916


이전 14화 꽃그림 명화 15, 알폰스 무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