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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17. 2023

8. 유 퀴즈 팀에서 전화가 왔다

여름 이야기

지난 금요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담장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에게 직접 전화가 온 것은 아니고 남편이 재직했던 학교로 전화가 왔는데 남편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단다. 요즘은 개인정보 유출이 본인 허락 없인 안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선 작가의 전화번호를 남편에게 넘겨주었다.


학교 측에서 전화번호를 건네받은 남편은 유 퀴즈 담당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는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면서 남편에게 촬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란다. 남편의 대답은 예스였다. 작가에게 어떻게 알고 전화했느냐 물으니 퇴직 직전에 나온 남편의 책 <청소년 고민 상담소>를 통해서 알았고 했단다. 작가는 남편과 이런저런 인터뷰를 하고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유 퀴즈라니! 남편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우리 가족 여섯이 있는 공창에 카톡을 날렸다. "얘들아! 아빠 TVN 유 퀴즈에서 섭외 왔다" 내 카톡에 바로 남편이 답했다."계획일 뿐 확정 아닙니다." 내가 남편의 카톡 뒤에 또 바로 답했다."ㅋㅋ어쨌든 잘하면 유재석 씨 만나게 생겼어 ㅋㅋ" 우리 부부의 카톡 대화에 이어서 딸 사위 며느리 아들이 화들짝 놀라는 이모티콘을 모두 날리고 "헐~ 대박"이라며 카톡창을 뜨겁게 달궜다.


딸은 우리 아빠 진짜 유퀴즈 나가도 될 분이라며 연습부터 해야 한다고 했고 며느리는 벌써부터 두근거린다고 했다. 딸이 토요일에 집에 왔다. 방송에 나가려면 아빠 연습 좀 해야 한다며 자기도 촬영이 확정되면 연차 쓰고 촬영장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반응한다고?"라고 하자 사위도 당연히 연차를 내고 동행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후아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딸 부부가 이런 반응이라면 아들 내외는 또 어떤 반응일까?


유 퀴즈 팀에서 전화를 받은 뒤 남편은 이틀 째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좋은 일도 스트레스가 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저리 촬영에 따라간다고 들떠있는데 그럼 나도 당연히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후아 남편의 촬영보다 국민 MC 유재석 씨를 직접 만나게 된다니 이게 정말 생시란 말인가.  






유퀴즈 팀과 통화를 하고 난 지 사흘 만에 작가에게 문자가 왔다. 추가 인터뷰를 하고 싶으니 오후 4시에 시간이 되느냐며. 두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며 내가 아이들이 있는 카톡 공창에 문자를 넣었다. "유 퀴즈 작가와 인터뷰가 4시에 있을 예정임." 아이들은 "와~" "인터뷰하면 출연 확정인 거예요?" "오오오" "두근두근 아버님 파이팅""인터뷰 파이팅"등등 축제의 분위기였다. 남편은 인터뷰 때 무슨 말을 할까?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남편의 방송 출연은 처음이 아니다. 남편은 학교 재직 시절에 JTV의 한 프로그램과 KBS 라디오에 출연을 한 적이 여러 번이고 인터넷방송에도 출연했다. 또 중앙지와 지방지, 인터넷신문에 많은 칼럼을 썼고 지금까지 출간한 책이 무려 스무 권 이상이나 된다. 공부법, 한자어휘, 부모교육, 청소년 상담, 속담 등 분야도 다양하다.   


4시 15분쯤에 유퀴즈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궁금한 마음에 나는 쪼르르 남편 서재로 따라 들어갔다.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남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쪽에서 뭔가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한참 듣고 있던 남편이 "네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유퀴즈 출연이 빠방난 모양이었다.


유퀴즈 팀 연출자와 작가들이 회의를 했는데 은퇴자를 테마로 잡은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한 여름밤의 꿈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남편은 더 멋진 새로운 꿈을 기대해 보겠다고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지만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나도 많이 아쉬운데 본인이야 오죽할까? 


아이들에게 아쉬운 소식을 바로 카톡창에 알렸다. 아이들의 반응에도 아쉬움이 가득했다. "오 마이 갓" "헐룽" "실망이에요" "그래도 며칠 우리 가족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재미있었어요." "그래도 방송국에서 연락 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 생각해요."라면서 슬픈 표정의 이모티 콘이 주르륵 올라왔다.  유 퀴즈 이게 뭐라고.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올 것 같다는 딸의 위로와 파이팅을 외치는 아들 며느리 사위의 응원에 아쉬운 마음이 옅어졌다. 그래도 더운 여름에 아쉬움이 짙은 그이의 마음을 이열치열로 달래주려고 남편이 애정하는 순대 국밥을 먹으러 나갔다. 다른 날이면 결코 먹지 않을 순대국밥을 오늘은 참아가며 남편과 함께 먹었다. 남편은 뜨끈뜨끈하고 칼칼한 순댓국을 먹고 나더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고 유퀴즈에서 촬영 제안받기 전의 마음으로 금세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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