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즈음 그가 대만에 있는 가족들과 여러 번 전화를 하고 나서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얼버무리길래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고 그가 말했다.
"엄마 아빠가 집 짓는 계획 중단하시겠대."
집을 짓는 건 그의 부모님의 평생의 염원이셨다. 그 얘기는 2019년 그의 집에 처음 갔을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였다. 60살이 되기 전에 집을 지을 거라고 하시며, 몇 년 동안 땅을 보러 다니셨다는 얘기를 하셨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었다.
"원래 계획은 50세에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죽기 전까지 30년 사는 거였어.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지. 그래서 60세로 계획을 조정한 거야. 그래도 20년은 살겠지!“
그러다 그의 부모님은 몇 년 전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해 땅을 사셨고, 여러 정보를 얻으시며 마음에 맞는 건축가를 찾으려 노력하고 계셨다.
그런데 갑자기 왜?
내가 왜 집을 그만 짓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형이 결혼해야 하니깐 돈이 필요해서 그렇대."
그의 큰 형은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나는 타이페이 집 값이 비싸다는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정확히 얼마인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타이페이의 오래된 20평대 아파트는 15억을 훌쩍 넘어갔다. 그나마 나은 건 대만은 아파트를 매매할 때, 매매가의 20~30퍼센트만 현금을 낸다면 나머지 70~80퍼센트는 대출이 가능하고 대출금리도 낮다고 한다.
하지만 그 현금에 해당하는 3억 가량의 돈도 그의 형이 벌어놓을 수 없는 돈이었다. (대만의 대졸자 평균 초봉은 1600만원 가량이다.)
그래서 그의 부모님이 그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사 계획을 잠정 중단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꼭 지금 부모님의 돈으로 형의 아파트를 사야 하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지금이 타이페이 집값이 제일 낮을 때라 지금 집을 못 사면 평생 월세를 살아야 돼. 집값은 계속 치솟을 거야. 평생 내 집 마련을 포기하거나, 혹은 지금 무리해서 집을 사거나 둘 중 하나야. 그래서 부모님이 무리해서 해주려고 하시나 봐."
그는 부모님의 염원에 문제가 생기자 많이 속상한 듯했다.
"자식 셋을 다 대학교육까지 시켜주셨으면 이제는 부모님도 즐기셔야 맞는 거잖아. 그런데 엄마아빠는 또 계속 희생하시니깐... 끝이 없는 것 같아."
나는 그에게 부모님이 집을 지으실 기회가 있을 거라고 그를 위로했다. 그를 위로하며 내 머릿속에도 우리 엄마아빠가 떠올랐다.
그리고 올해 10월 초, 그의 누나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보려 부산에 왔다.
남자친구는 서울에 있고 나만 혼자 부산으로 내려가 언니와 영화제도 즐기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다.
그러다 호텔방에서 우리는 집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내가 언니에게 그럼 집 짓기는 몇 년 뒤로 미뤄진 거냐고 물으니 언니가 말했다.
"응? 몰랐구나? 미뤄진 게 아니라 그냥 끝난 거야. 이젠 땅이 없으니깐."
"땅이 왜 없어?"
언니가 몰랐냐는 듯이 말했다.
"아예 땅을 판 거야. 땅을 판 돈으로 오빠 집을 해주는 거야."
뭐? 듣는 내가 괜히 다 서운했다. 하루는 어머님이 나를 데리고 30분을 운전해서 가셔서 여기가 계약한 땅이라며 구경시켜 주셨다. 어머니는 잔뜩 기대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저렇게 집을 지을 거라고 얘기하시며 기뻐하셨다. 싱가포르의 한 젊은 부부의 집이라며 잡지도 보여주시곤 이런 인테리어로 하고 싶다고 말씀도 하셨었다.
내가 놀라자 언니가 말했다.
“대만엔 아들 결혼 못할까 봐 평생 살 던 집을 팔아서 아들 신혼집 사주는 부모들도 많아. 대만은 전통적으로 남자가 집값과 결혼식 비용을 내 거든.”
“그럼 언니도... 남자친구가 집 해와야 결혼할 것 같아?”
“아니, 나는 남자친구가 집을 못해와도 결혼할 거야. 옛날엔 남자가 꼭 집을 해와야 했지만 요즘엔 집 사기가 힘드니 월세로 사는 신혼부부들도 많아. 애초에 연애할 때 동거를 많이 하니깐 결혼해도 그냥 살던 월세집에서 쭉 사는 거지 뭐.“
그리고 언니는 말했다.
“그런데 타이페이에서는 월세를 살다 언젠가 돈을 모아서 집을 살 수 있다는 미래는 없어. 부모님이 집을 사주시는 게 아니라면 그냥 집은 평생 못 산다고 포기하고 사는 거야. “
언니는 나에게 한국은 어떠냐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언니와는 이제 허물이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동생 여자친구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또 다른지 굉장히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국도 비슷해. 요즘엔 둘이 같이 벌어서 마련하는데 한국엔 전세 제도가 있으니깐 좀 돈을 크게 모아서 전세로 들어갈걸? 사실 나는 주변에 결혼한 사람을 못 봐서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확실한 건 한국에선 부모님이 살던 집을 팔아서 이사 가면서까지 자식한테 집을 해주진 않아."
언니는 말했다. "왜 엄마가 그렇게 오빠 집을 해주려 했는지 00이가 말했어?“
“아니? 못들었어.”
“사촌 오빠가 올해 핑진 때문에 파혼했거든. 바로 옆에서 그 과정을 보시면서 생각이 많으셨어."
핑진聘金
난 대만에 지참금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한참 대만 방송국 라디오 뉴스로 듣기 공부를 하던 2년 전의 일이다.
그날 라디오 뉴스의 한 꼭지는 결혼에 관한 인식조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듣는데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응답자의 60퍼센트 이상은 핑진이 불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핑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의 부모님께 현금을 드리는 거야.”
응? 돈을 드린다고?
그가 어디서 들었냐 묻길래 나는 내가 들은 라디오 뉴스의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가 갸웃거리며 말했다.
"60퍼센트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음... 그런데 실제로 결혼할 때 핑진을 안주는 집은 거의 없어. 여자 부모님이 확인만 하고 돌려주더라도 일단 남자가 드리는 건 꼭 해야해."
“그건 왜 드리는 건데? “
“나도 정확히 잘 모르는데... 딸을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나도 당연히 감자 부모님께 드릴거야.”
하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은 오히려 언짢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드려도 안 받으실 거고.. 우리 엄마아빠는 오히려 싫어할 수도 있어.“
“그래? 그래도... 안 받으시는 건 부모님 마음이시지만... 그래도 내가 준비는 해가야지.”
“왜? 꼭 드려야 돼?”
“그렇지. 그걸 안하면... 내가 감자의 부모님을 무시하는 거니깐.“
오잉
그렇게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핑진이라는 단어를 언니의 입에서 다시 듣게 되었다. 핑진 때문에 파혼을 했다고?
언니가 말했다.
“사촌오빠가 핑진을 충분히 드리지 않은 거야. 그쪽에선 100만원 이상을 원했는데 사촌오빠는 70만 원을 드렸대."
아아 백만 원... 어? 대만 돈으로 백만 원?!
대만달러로 100만 원이면 한국돈으로 42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나는 언니가 잘못 말했나 싶어 정말 대만 달러 100만 원이 맞냐고 물었다. 그러자 언니는 핑진을 설명해 주었다.
"핑진은 두 가지의 돈을 합쳐서 주는 거야. 하나는 여자친구에 부모한테 자신이 경제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돈이고, 나머지 하나는 딸을 키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 비용을 합쳐서 내는 거야. 길조인 숫자로 예를 들면 66과 36을 합쳐 102만 원 이렇게 드리는 거야."
그런데 나는 사촌형의 핑진과 어머니가 집을 사주신 게 무슨 관련이 있나 싶었다.
“그 여자집에서 핑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파혼을 시킨 건, 사촌오빠가 집을 못 사가서 그런 거야. 집을 해왔으면 오히려 핑진을 전부 돌려주셨을 텐데 마침 핑진도 원하던 금액이 아니니 그 핑계로 반대한 거지. 그러니깐 사실은 집 때문인 거야. 엄마는 그걸 보고 오빠 집을 사주려고 한 거고."
들으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언니는 말했다. 감자도 핑진을 받게 될 거야. 내가 안받을거라고 하자 언니는 그럴순 없다고 했다. 00이가 외동아들이면 모르지만 오빠 여자친구가 받았기 때문에 감자만 안 줄 수는 없어. 그럼 감자의 집안을 무시하는 모양이야.
무시...? 그때 남자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똑같이 나왔다.
그리고 언니와의 대화에서 그의 어머니가 나와 남자친구가 곧 결혼할 것 같으니, 서울의 부동산 상황이나 한국의 결혼비용은 어떤지 언니에게 물어보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언니에게 그의 부모님이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고 우리는 알아서 잘할 거라고 말했다.
문득 내가 너무 철없게 느껴졌다.
내가 그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마냥 신났을 동안 그의 부모님은 돈 걱정을 하셨다니...
그리고 3주 전, 엄마가 김장을 일주일 앞두고 외갓집 식구들이 모여 김장에 필요한 준비를 한다고 해서 고향에 내려갔다.
남자친구와 무를 뽑는데 삼촌이 남자친구를 향해 물었다.
-감자랑 결혼 언제 할 거야? 계획이 있어?
-네! 돈 모으고 2026년에 할거예요.
그러자 삼촌이 그를 놀리듯이 말했다.
-지금은 돈이 조금밖에 없어?
-네! 지금은 조금밖에 없어요.
-그럼 2년 뒤에 어떻게 해! 조금밖에 없으면 못해~
-어? 그럼.. 2027년에 할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조금 밖에 없지만...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그래 열심히 모아~ 돈 없으면 장가 못 간다~
내가 삼촌을 향해 그러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자마자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런 말을 왜 해!!!
엄마는 남자친구를 향해 말했다. "00아 신경 쓰지 마. 돈 없어도 돼. 엄마가 너네 결혼할 때 해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해줄게. 너무 아끼지만 말고 둘이 젊을 때 해외여행도 다니고 세상구경도 해."
엄마는 나와 남자친구와 셋이 있었을 때도 신경이 쓰였는지 다시 말했다.
“00아 돈 걱정 할거 없어. 엄마가 그러려고 돈 벌은 거지. 그리고 감자는 장녀니깐 동생들보다 더 해줄 거야.”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 아빠는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벌써 30년을 일했다. 엄마는 앞으로도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할 거라고 했다.
그 모든 노동의 시간이 끝이 보이지 않는 자식의 뒤치다꺼리를 위함이었나?
갑자기 부모님께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서울로 돌아와 그에게 그 순간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그와 좋은 곳을 가거나 좋은 걸 먹을 때 엄마생각이 나면서 미안해졌다. 그렇지만 너무 눅눅한 마음 같아 그에겐 굳이 말하지 않았었다. 그에게 사실 그랬다고 말하니 그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감자네 부모님도 유독 본인들한테는 돈을 안 쓰시잖아. 일만 하시고 취미생활도 안 하시고... 몇년에 한번 여행 가는 게 전부이시니깐..”
맞아. 부모님들께서 본인 스스로를 위해 즐기지 않으셨기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엄마도 해외여행을 안다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외여행 다니고나서 엄마돈을 끌어 써..
알고 보니 그는 그의 부모님이 우리의 미래 결혼 비용에 대해도 생각하고 있으시다는걸 알고 있었고, 본인은 지참금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건 싫다고 했다. 그가 자꾸 핑진을 주지 않으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말을 해서 나는 한국사회에선 그걸 보는 게 오히려 더 부정적인 의미로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막상 안 받겠다고 확실히 못을 박으니 그는 마음이 편해 보였다.
우리는 이야기의 결론을 냈다. 그럼 우리는 결혼할 때 양쪽 부모님께 1원도 받지 말고 모든 걸 다 우리 힘으로 시작해 보자. 우린 젊으니깐 앞으로 열심히 벌면 되지. 나중에 우리 60살 돼서 돌이켜보면 뿌듯할 거야!
며칠 뒤 엄마와 전화를 하다 그 날의 다짐을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있잖아, 나 00이랑 얘기했는데 우린 결혼할 때 양쪽 집에 지원 하나도 안 받고 다 우리가 알아서 할 거야!”
칭찬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는 대뜸 비웃음을 날렸다.
-에휴, 철없는 소리 한다.
-철없는 소리 아니야!!!
-너! 엄마가 돈 주고 나서 너네 돈으로 휘두를까 봐 그래? 엄마 안 그럴 거야.
-오잉 무슨 소리야. 그냥 결혼하면 독립된 가정으로 나오는 거니깐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우리가 다 시작하려는 거야.
-해줄 수 있는 만큼 다 해줘야지. 왜 자식 고생하게 하니? 너는 너 자식 낳으면 그렇게 할 거야?
-응! 난 자식 낳으면 그럴 건데?
-...... 그건 니가 자식 안 낳아봐서 그래.
그러면서 엄마는 또 나에게 오백 번 정도 했던 레파토리. 니가 자식을 안 낳아봐서 철이 없고 어쩌고~ 그래서 사람은 자식을 낳아야 진정한 어른이 되고~ 를 반복하시며 내가 모르는 소리를 한다고 뭐라 하셨다. 내 진지한 마음을 진지하게 안받아들이나 보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들으며 더욱 그 마음이 확고해졌다. 부모님 도움 없이 우리 둘이 열심히 돈을 모아 잘 살겠다는 마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잘 살 거라는 자신감이 넘친다. 근거는.......... 없다...!
돼지고기 가지볶음은 내가 참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는 가지를 잘라서 한번 데쳐서 넣는다.
그의 아버지께서 기름이 들어간 가지요리를 할 때면 항상 가지를 한번 데쳐, 껍질표면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한 김 식혀 요리에 넣으셨다고 한다.
이렇게 한번 데치면 기름에 볶는 요리를 할때 가지에 기름이 덜 먹는다고 한다.
뭔가 익숙한 맛이다 했더니 창잉터우(마늘쫑 돼지고기 볶음) 요리에서 마늘쫑을 빼고 가지를 넣은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