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Oct 05. 2024

동굴 속으로 들어가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다. 

나의 열한 번째 이야기


일상,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사람은 누구나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가진다. 


누군가는 직장으로 일을 하러 간다. 

누군가는 학교에 공부를 하러 간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러 간다.


일상을 잘 보내는 것, 이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현재 나의 일상을 생각해 본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 아침약과 영양제를 먹는다.

침구를 정리하고 간단하게 세면을 한다.

그리고 출근할 복장을 입는다. 


회사를 간다. 업무를 하고, 회의를 하고, 간간히 웹서핑을 한다. 

오후 5시가 되면 저녁약을 먹는다.


퇴근을 하고, 간단하게 무언가를 먹는다.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걷는다. 그리고 뛴다. 

집에 와 샤워를 하고 논 알코올 맥주를 마신다.

책을 읽거나 TV 채널을 돌려본다.

그리고 취침약을 먹고 침실로 들어간다. 


일상을 잘 보내고 있는 걸까?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취하지 않으며 하루를 살아간다. 

글을 쓰고, 읽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럼 나의 20대 후반의 일상은 어땠을까. 

10시에 출근을 하기 위해 9시가 되기 전 겨우 눈을 뜬다.

주방에 도착해 데우고 끓일 것들은 미리 불에 올린다.

발주 넣은 물건을 검수한다.

옷을 갈아입고 전날 사항을 체크한다. 

11시 30분 오픈이니까 프렙을 시작한다. 


오픈직전 커피를 한잔 마시며 오더를 기다린다.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3시가 되면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된다.


떨어진 재료들을 다시 프렙 한다. 

라면이나, 대충 볶은 스탭밀로 배를 채운다.


디너가 시작되고 라스트 오더를 끝으로 주방을 마감한다.

마감이 끝나면 시간은 10시. 또는 11시 가까운 시간.


하루 12시간, 13시간을 그렇게 쓴다. 

집으로 온다. 샤워를 해본다. 

배가 고프지만 입맛은 없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지친다. 오후 11시. 뭔가 하기에 애매한 시간. 

그렇다고 이렇게 자기에도 아까운 시간. 

피곤할수록 예민해지며 그 예민함은 또 감각을 깨운다. 


냉장고 한가득 있는 술병 중 아무 술이나 꺼내 온다.

핸드릭스 진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얼음에 희석도 하지 않을 채로 샷으로 연거푸 들이킨다. 


곧 취기가 올라온다. 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 

취기가 올라와 예민함을 조금이나마 눌러준다. 


그렇게 하루를 끝낸다. 

나의 일상은 그랬다. 


분명 주방의 고된 노동을 즐기는 순간도 있었다.

주방에서 흘리는 땀이 나를 발전시켜 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경험과 스킬이 늘수록 업무는 늘어났지만 그 또한 즐겼다.



내 선배들이 말한 것처럼 나도 후배들에게 말했다.

‘ 우리가 더 움직이고 힘들어야 좋은 음식이 나온다. ’

‘ 귀찮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요리사로는 끝이다.’


좋은 음식을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소스를 저었고, 육수를 내고,

재료를 더 섬세하게 손질하고, 프라이팬을 저었고, 플레이팅을 했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나 진짜 괜찮은가?

이틀에 하루 겨우 잠드는 게 맞는 걸까? 

하루 종일 나를 위한 식사 한 끼를 못하는 게 맞는 걸까?

세 달을 넘게 하루도 못 쉬고 13시간을 일하는 게 맞는 걸까?


스스로에게 던진 의문이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단 한순간도 손을 쉬지 않고 놀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물음표를 던졌다.


분명 나는 그때 번아웃 또는 공황장애를 느꼈던 것 같다. 

때 때로 찾아왔던 답답함이 이제는 과호흡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일을 해야 했다. 쉬지 못했다.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더 힘든 사람이 있을 것이고, 지금 내가 나약해서 

이런 한가한 생각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때부터라도 병원을 갔다면,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면..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자기 위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나는 술에 의지했다.


술은 간편하다. 손쉽다. 빠르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손 닿을 거리에 술은 존재한다. 

알코올이 몸에 스며드는 순간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렇기에 끊어내기 힘들다. 


내 주변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대화 소재가 없어서일까.. 

친구들과 만나도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복되고 지친 일상을 하소연하기도, 지침을 표현하기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봐도 나는 자리보다는 

술을 마시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었다.


연락이 와도 받지 않는 나날이 많아졌다. 

사람과의 만남이 나의 공허함을 달래주진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번거로움을 느낀다.  


집에서도 필름이 끊기기 시작했다.

정해둔 주량에서 한계를 넘겨 쓰러질 때까지 마시기 일쑤였다.


술병이 쌓이는 만큼 점점 나약하고 마음이 병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마셨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술병을 모았다. 

한병.. 두병.. 열병.. 온갖 종류의 빈 술병들이 부엌을 가득 채웠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한번 시작된 번아웃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눈을 한번 감으면 뜨기가 힘들었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동시에 불안감과 초조함이 밀려왔다.


한계점에 다 달았을 때 나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일을 관뒀다.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주방에서 일을 했지만, 더 이상 노동을 감내하기 힘들었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동굴에 들어간 곰 마냥 

집을 동굴 삼아 나도 암막 커튼이 주는 어둠 속에 하루종일 머물렀다.


자기 위해 술에 취했고 눈을 뜨면 다시 마셨다. 

온종일 잠에 취하고 술에 취했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물을 섭취했다.


휴대폰을 껐다. 

그 누구와도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다시 동굴에서 나오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부록 : 나의 금주 일기)

24-10-05, 금주를 시작한 지 28일.


어제저녁 오래된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온다. 

얼굴이라도 보자 싶어 약속을 잡는다.


차로 가면 15분 거리를 굳이 걸어갔다. 

한 시간 반을 걸어 친구를 만났다. 

금주한다 말을 했기 때문에 술자리를 가지지 않는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도 아니었고 

둘째가 태어난 지 50일 밖에 되지 않았기에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다. 


한동안 보지 못했기에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굳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짐작만 할 뿐이다. 


오래된 친구는 그게 좋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해 굳이 하지 않을 대화는 생략한다. 

말을 한다고 고민이 해결되고 힘듦이 사라지지 않을 걸 알기에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에서 버티고 이겨내겠지..


다시 한 시간 반을 걸어 집으로 와 잠을 청했다. 




오늘은 늦게 까지 잠을 잤다. 

미용실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한다.

창밖에 날씨를 확인한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가을이 왔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곧 단풍이 물들고, 그러다 낙엽이 떨어지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는다. 

오랜만에 잡은 운전대가 낯설게 느껴진다. 


창문을 열고 라디오를 듣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우울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제법 일찍 도착하게 되어 적당한 카페에 주차를 하고 차를 한잔 시킨다.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도 멍한 느낌이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아 전원을 꺼버린 느낌이다. 

기계적으로 타이핑을 하지만 뭘 쓰는지 제대로 써 내려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쓰고 있는 느낌이다. 


멍해 있으니 차라리 나은가.. 

해결되지도 않을 고민을 하고, 걱정을 하고 스스로를 불안 속으로 

내 몰아가는 것보다는 분명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느리게 가기 시작한다. 

그 사람과 함께할 때는 일분일초가 아깝고 시간이 빠르게 흘렀는데, 

지금은 반대로 느리게만 가기 시작한다. 


이게 여유일까? 지겨움일까..

요즘처럼 시간이 빠르게 흐르길 바랐던 적이 있었을까..


이 여유와 공백을 뭘로 채워야 할까.. 


사람들이 조언한다. 취미를 가져보라고. 

안 해봤던 것들을 한번 도전해 보라고…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보고 그걸 해보라고. 

그게 말처럼 쉬운 거였다면 진작 했을 것이다.


아직도 모르겠다. 

뭘 좋아하고 해야 하는지. 무엇에 행복함을 느끼는지..

무슨 취미를 가져야 하는지.

그걸 고민하고 생각하는 그 자체에 피로감을 느낀다.


늘 새로움에 목마른 사람이 있다. 

어떤 일에 지겨움이나 권태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도 있다. 

색다른 경험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새로움 보다는 익숙함이 좋다. 

지겨움도 잘 느끼지 못한다. 

같은 음식을 일주일 매일 먹어도 그리 지겹지 않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누군가 보기에 굉장히 단조롭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단조로움이 주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


취함을 빼고 나니 빈자리가 생긴다. 그건 분명하다.

많은 시간 긴 나날을 취기로 채워 놨으니 분명히 

그 빈자리를 대신할 무엇을 찾아야 하긴 한다..  


아직 모르겠다.. 


스스로의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해 그냥 이렇게 글을 쓰고 또 쓴다.


그 사람은 내가 없이 보낸 첫 주말이 편안했다고 말했다. 

아직 편안함에 이르지 못했는데…


나와 함께한 시간이 온전히 편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 역시 편하지만은 않았다. 

마음을 많이 준 만큼 불안했다. 무서웠다.

내 마음이 큰 만큼 확인받고 싶었고 절대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옆에만 있어준다면.. 언제나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말이 가장 어렵다..

취함을 인생에서 덜어내긴 했지만, 그 이상 한걸음을 걸어 나가기가 힘들다..


나도 평화롭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우울감에서 해방되고 싶다. 

불안하고 싶지 않다. 초조함도 지우고 싶다. 


간절하고 간절하다.


쉽지가 않다…. 모든 것이.

오늘따라 무력감이 느껴진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너무 간절히 원해본다... 

그 사람과 노을을 바라보며 나란히 걷는 날이 서둘러 오기만을 기다려 본다.




이전 10화 연애... 그것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