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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Aug 15. 2024

[제7화] 빨간 리본 초대장

신비한 초대장

 용모가 참으로 단정했던 그 남자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민서는 이제 주 3회는 카페에서 일한다. 시급은 좀 줄었지만 마음은 좀 더 편해졌다. 고깃집에서 일할 때만큼 몸이 고되지도 않고, 거기서 만큼 진상 손님을 자주 접할 일도 없다. 고깃집에서 저녁 타임 알바를 뛰는 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 취한 손님들의 진상 짓을 고스란히 받아 내야 했다. 들어오자마자 주문 빨리 안 받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여기서 가장 인기 있는 게 뭐냐고 물어놓고는 대답해 주면 실컷 고민하다 결국 직원이 추천한 인기 메뉴를 무시하고 다른 것을 주문한다. -그럴 거면 묻지나 말지-
 소스가 너무 짜네, 된장찌개에 건더기가 없네, 판 바꿔달란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대로네...
 계산할 때 포인트를 더 달라거나 깎아 달라는 건 그래도 애교다. 한 번은 5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다섯이 입장부터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등장을 광고하더니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아가씨, 물 빨리!

-물은 셀프인데. 젠장-
 복장을 보아하니 등산을 다녀온 것 같았는데 꼭 이런 사람들이 등산이 목적이 아니더라. 민서는 최대한 표정에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 그냥 물을 가져다주었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그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아가씨를 연신 외쳐 대기 시작했다. 한 번에 시킬 일도 일부러 여러 번에 걸쳐 불렀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민서를 위아래로 훑기도 했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는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고깃집 사장도 분명 이 모습을 본 것 같은데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런데 민서가 무슨 자격으로.

 다섯 번째인지 여섯 번째인지 모를 물시중을 들고 그 테이블을 막 돌아서 오는데 뒤에서 다시 큰 소리가 났다.
 "아가씨, 컵도 새 걸로 갖다 줘야지, 여기 컵에 기름 튄 거 안 보여?"
 "에이, 왜 그래, 박 씨. 우리가 컵은 새로 가져다 달라고 안 했잖아."
 그러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그런데 아가씨가 센스가 없긴 하네, 했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르며 새 컵을 집어 들었다.
 "저도 마침 컵이 필요해서요."
 한 손에 새 컵을 들고 있던 한 남자가 민서의 손에서 부드럽게 컵을 빼가더니 대신 그들에게 가져다주었다.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아가씨 그만 부르시고 이제 들어가세요. 선생님들 딸들이 밖에서 일하느라 고생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하실 거예요?"
 온화함 속에 강렬함이 담긴 목소리. 민서는 그만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당신은 누구? 저 아가씨 남친이신가?"
 하고 비아냥거리더니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킥킥대다가 주변 손님들의 터져 나오는 불만을 듣고서야 이내 잠잠해졌었다. 고깃집의 평화는 그런 진상들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찾아온다.

 카페에도 물론 이상한 손님들이 있긴 하겠지만 민서는 아직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손님을 만난 적이 없다. 주말 민서의 카페 손님들은 대부분 연인이거나 혼자 오는 사람들이다. 혼자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읽거나 필요한 작업을 하거나 때로는 두꺼운 수험서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황금 시간대 가끔 만석이 되는 때에도 카페는 크게 소란스럽지 않았다. 모든 것이 빠르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고깃집에 비해 고객과의 상호작용도 여유로웠다. 그녀가 이곳에서 일하는 날을 더 선호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다른 이유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 상대적 박탈감이 이곳, 카페에서 훨씬 덜하기 때문이란 걸 민서도 알고 있다. 민서가 일하는 고깃집은 다양한 손님들이 방문하지만 유난히 직장인들 회식이 많은 편이다. 주변에 회사 건물들이 많아 당연한 일이겠지만 취준생 3년 차쯤 되고 보니 많은 직장인들이 꺼리는 그 시간마저도 그녀에게는 부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민서는 자신도 그 팀에 섞여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고 마음껏 불평하게 될 수 있기를 3년째 노력 중이다.

 이쯤 생각하다 보니 카페 일자리가 더없이 고마워졌다. 그러다가 문득 어제 떡볶이집에서 받은 이상한 초대장이 떠올랐다. 그곳은 또 어떤 카페일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가볼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가, 전화번호도 없고 주소도 나와있지 않은 곳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가, 어느새 민서는 가방 깊은 곳에서 그 빨간 리본 봉투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가방 안에서도 구김하나 가지 않은 빨간 리본을 보며 신기한 듯 그녀는 봉투 뒤 자신의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설렘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기분 탓일까, 찰나였지만 봉투 안에서 뭔가 밝은 빛이 잠깐 새어 나오다 멈춘 것 같기도 했다.

 민서는 떨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봉투를 열었다.

 <조금 특별한 카페에 민서 님을 초대합니다. 당신의 삶에도 있을 작은 기적을 경험하시겠습니까? 초대장을 받으시려면 YES를 터치해 주세요.>

 다시 한번 글자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초대장을 받으려 해도 YES가 도대체 어디 있냐고?!'
 그녀는 마치 초대장을 받은 여러 명 중 오직 자신에게만 그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평했다. 세상은 왜 나에게만 이리 불공평한 것인가. 이 작은 종이 쪼가리 하나조차도?

 초대장을 봉투에 다시 넣지도 않고 책상 위로 던져버렸다. 그때였을까, 얇은 종이 위 단출한 메시지 너머로 옅지만 꽤 밝은 빛이 잠깐 들었던 것 같다. 민서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종이 끝을 살짝 들어보았다. 아직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무슨 생각을 한 거니?'
 이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종이를 홱 뒤집어 책상 위로 다시 던졌다.
그리고 책상에서 시선을 거두려는 순간 민서는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민서 눈앞에서 지금 일어났다. 종이 앞뒤, 심지어 봉투 안쪽까지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어제는, 아니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없었던 글자가 크게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YES>
 머리부터 얼굴, 목을 지나 어깨를 타고 양쪽 팔까지 저린 듯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며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좁은 틈 사이사이로 소름이 돋았다. 머리털이 쭈뼛 선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민서는 고민 따위 없이 'YES'라는 글자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그녀가 손을 대는 순간 알파벳 하나하나 빛을 머금더니 몇 글자를 더 토해내었다.
 <종로구 숲 속길 '플로라의 호수' 끝으로 오세요.>
 글자는 생명력을 얻은 듯하더니 이내 사그라들며 금세 빛을 거두었다.


 엄마의 또 다른 유난한 오늘을 피해 민서는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잔소리를 듣지 않고 엄마 차를 운전해야 할 땐 종종 있는 일이다. 내비게이션 상 시간으로 봐서 아주 먼 거리는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숲 속길이라는 길이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지번이나 건물 번호도 없이 그냥 호수 끝이라니...
 한 시간 조금 넘게 갔을까,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주변임을 알리더니 이내 곧 도착했나 보다. 상냥한 듯하지만 상당히 무미건조한, 아주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갑자기? 여기서?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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