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관광 21개 장면 중 열일곱 번째] 관광상품과 VLOG 참조
이튿날 일정 시작이다. 어느 나라 단체여행처럼 조식은 호텔에서. 뷔페식이고 별반 다르지 않다. 죽과 만두, 각종 샐러드, 계란, 스크램블, 빵 등을 접시에 담아 먹었다. 밥과 나물, 감자조림, 버섯무침, 반찬, 김치 등도 있어 그렇게 먹는 사람들도 있다. 음료도 다양하다. 녹차, 우유, 두유, 커피, 홍차 등등. 호텔마다 조식 스타일은 다르다. 우리도 그렇잖은가. 어떤 호텔은 뷔페식이고 어떤 호텔은 한상차림식이다. 서산호텔과 양각도 호텔 등은 뷔페식이다. 반면 청년호텔 등은 한상차림식이라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빨도 닦고 ‘긴 하루’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섰다. 이날 돌아다니는 일정이 꽤 많다. 첫 일정을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에서 시작했다. 채소를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장으로, 평양의 각종 야채를 책임지고 있는 이곳을 가이드는 무척이나 강조한다. 아침에 먹은 야채가 여기서 재배된 게 아닌가 싶다. 하여간 일종의 산업관광인 셈이다. 농장 입구에 있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목표수행으로 당을 옹위하자!”는, 빨간색 바탕의 하얀색 글씨가 괜히 더 크게 보인다.
규모가 꽤 크다. 68만㎡의 부지에 665동 45정보의 온실이 위치해 있고 약 400세대 1,300여 농장원들이 거주하며 재배하고 있다. 축구장 하나가 약 7,000㎡니까 장천남새농장은 축구장 97개 정도의 상당한 크기다.
온실농장뿐만 아니라 농장원들의 가정집까지 오픈해서 방문했다. 모르겠다. 호텔 오픈하우스도 아니고 이렇게 공개한다니 낯설긴 하다. 안방부터 거실, 주방까지 우리로서는 신기하니 사진찍고 영상찍는 데 여념이 없다. 우리네 농촌집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아무래도 공개용으로 더 신경써서 그런지 깔끔하고 정리정돈돼 있다. 김장철을 앞두고 있어서 부엌 한쪽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드럼통에 반씩 쪼개놓은 배추가 가득하다.
장천농장에 있는 유치원과 학교도 들렀다. 아이들의 “안녕하세요” 인사가 우렁차다. 한 반이 원래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방문한 교실에는 20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 한 소절 듣고 왔다. 농장에 있는 마트에 들러 미리 사놨던 과자와 사탕 등을 선물로 건넸다. 글쎄 모르겠다. 중국인들이 건네는 사탕을 받는 북한 아이들 모습에 괜히 복잡한 감정이 드는 건 나만 인지 모르겠다.
북한 정권마다 모두 공을 들여온 곳인데 1964년 1월 김일성 주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처음 방문한 이후 수십 차례 방문했고 김정은 위원장도 2014년과 2015년 방문한 바 있다. 2015년에는 대대적인 개보수를 진행해서 현대적인 온실농장으로 변모했는데 그러다 보니 2016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이곳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청천강계단식발전소, 과학기술전당과 미래과학자거리 등과 함께 2015년의 주요 성과로 거론됐다.
이날 두 번째 방문지는 만경대와 조중(북중)우의탑. 만경대는 김일성 주석 생가다. 필수코스로 돼 있는데 북한은 아주 신경을 쓰는 장소다. 길 이외 잔디를 밟거나 길을 벗어나 경계석도 밟지 말라 하고 있다.
북중우의탑은 중국인 관광객의 평양 관광 코스에 필수로 포함돼 있는 곳. 한국전쟁당시 중국군의 전쟁 참전을 기념해 1959년 건립된 것으로 우리로서는 방문할 필요가 없는 곳이긴 하다. 중국 친구들은 여기에 가면 보통 꽃을 사서 헌화하고 목례 삼배를 한다. 버스에 남아있겠다 하니 가이드는 곤란한 표정이다. 개별 일정을 허용하지 않는 북한 관광상품 특성상 그러하리라. 하지만 어쩌겠는가. 잠시 버스에 머물렀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다. 그렇지 않은가. 해외여행가면 먹는 게 즐겁기 그지없다. 머 국내에서도 먹는 게 즐겁긴 하지만. 이날 점심은 글쎄 특별한 메인 메뉴가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상 거하다. 한정식 스타일은 아니고 그저 다양한 반찬이 테이블 위에 가득하다. 감자볶음, 김치, 열무김치, 버섯볶음. 샐러드, 계란볶음, 불고기, 두부된장국, 떡과 만두가 함께 올라 있다. 대동강맥주도 빠지지 않는다. 중국인 단체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일반적으로 이러한 건지 모르겠다.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럴 것 같다. 국적별로 다른 식단을 준비할 성 싶진 않다.
오후 일정 시작이다. 김일성광장이다. 광장 정면에 있는 것이 인민대학습당. 학습당은 대형 도서관 겸 교육시설이다. 학습당 건물 외벽에 김일성과 김정일 거대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평양의 중심부답게 각종 정부 부처가 모여 있다. 광장을 바라볼 때 왼쪽에 대외경제성이 위치해 있다. 대외경제성 앞에는 외무성이 있고 건물 위에는 거대한 노동당기 사진이 있다. 인민대학습당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도 왼쪽에 대칭해서 정부부처가 모여 있다. 대외경제성과 대칭해서는 교육성이 있고 교육성 앞에는 국무원이 있다. 국무원 건물에는 대형 북한 국기가 올라가 있다.
인민대학습당과 정부부처들이 모여 있는 김일성 광장의 길 건너편에도 광장은 이어진다. 그곳에도 조선미술박물관과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양 옆에 대칭해 있다. 그리고 인민대학습당과 마주보는 위치 대동강 건너편에 주체사상탑이 솟아 있다.
김일성광장 바닥에는 각종 흔적이 많이 보인다. 무언가 표식을 해놓은 듯한 흔적이다. 이게 보니 광장에서는 각종 공연이나 군사퍼레이드 등이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수시로 이뤄지다보니 그때 표시해놓은 흔적이란다.
중장년 이상의 중국인들은 심드렁한 모습이지만 이곳은 MZ 세대에게는 일종의 포토 스팟이다. 일행 가운데 몇 안 되는 젊은 친구들은 서점에서 구매한 김일성전집을 펼쳐보거나 아니면 가슴에 품고 광장을 걸어가는 포즈를 취한다. 김일성전집이 이들에게는 북한에 왔다는 훌륭한 장식물인 셈이다.
오늘 오후에는 북한 체제선전 스팟을 많이 들르고 있다. 이번에는 당창건기념탑이다. 1995년 제막된 이 건물은 조선노동당의 상징인 낫, 망치, 붓을 형상화했다. 각각 노동자, 농민, 지식인(인텔리)를 의미한다. 이 낫, 망치, 붓은 탑신을 이루는데 이 탑신의 높이는 50m다. 노동당 창건 50돌을 기념해서 제작했기에 50m로 구성했다.
북한의 각종 체제선전 건물은 기억과 기념, 상징 체계로 분석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당창건기념탑은 이전부터 궁금했다. 각종 상징을 기반으로 제작된 건물 가운데서도 이 기념탑은 더욱 철저하게 의미부여를 하고자 계산해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건물 자체도 그렇고 공간구성까지 그러하다. 1995년이면 김일성 사후 유훈통치기다. 이 시기에 보통 애도와 추모를 목적으로 하는 건축물들이 많이 건설됐는데 유독 당창건기념탑은 축하를 목적으로 건설됐다.
오후에는 또다른 체제선전물 관람 일정이 놓여 있다. 바로 주체사상탑. 총 길이 170미터의 이 건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추모비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50미터까지 올라갈 수 있으나 우리가 간 날엔 날씨가 안 좋아서 올라가진 않았다. 올라가도 구름이 짙게 끼어서 보이질 않는단다. 아쉽다. 보인다면 평양 개선문, 인민대학습당, 고려호텔 등이 보인다.
실은 다행이다 싶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말이다. 헉헉 이다. 체제선전건물 관람 과다 복용이다. 북한 관광상품의 특성이다. 이렇게 관광코스에 체제선전물이 많은 것 말이다.
평양관광자원을 성격별로 나눠본다면 자연, 문화, 체제선전, 사회시스템, 예술 및 기타, 쇼핑 및 식도락, 기타 산업, 위락 관광자원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북한 관광이 시작된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기별로 각 관광자원의 비중을 정성적으로 평가해 본다면 체제선전 관광자원의 비중은 어느 시기든지 압도적이다.
각 시기별로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보충했다. 90년대 보충된 대표 체제선전 관광자원이 앞서 들른 바로 그 당창건기념탑이다. 이외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푸에블로호 등이 90년대 추가된 대표 체제선전물이다. 2000년대에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김일성화김정일화전시관이, 2010년대에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등이 새로 들어서거나 개보수가 이뤄졌다. 게다가 체제선전 관광자원은 실제 어느 시기 관광상품코스에서나 제일 많은 시간이 할애되어 방문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 실제 일정에서도 그러하지 않은가. 북한 당국의 관광을 통한 목적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의 관광자원성격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12화 때 이미 상세히 언급했지만 2010년대부터 쇼핑 및 식도락, 위락, 사회시스템 등 3개 관광자원의 비중 증가가 확연하다. 이제 그 사회시스템 관광자원을 보러갈 일정이 왔다. 평양 지하철. 한번은 꼭 타보고 싶었다. 서울에 왔다고 지하철 타보고 싶어 하지는 않겠지만 평양에 가면 지하철은 들러보고 싶을 게다.
평양 지하철은 16개 역으로 혁신선 및 만경대선 이렇게 2개 노선이 있다. 종합안내판의 '어디로 가시렵니까?'란 문구가 인상적이다. 그리 많은 역은 아니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특징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이 한없다. 정말로 말이다. 좀 과장해서 5분은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다. 실제는 1~2분이었던 것 같다. 우리 일행들은 핸드폰으로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다들 기대한 관광콘텐츠였나 보다. 게다가 북한 사람들의 실생활 한복판으로 들어간다는 설렘이 가득하다.
지하철역은 으리으리하다. 대리석인 것 같은 매끈한 돌들로 플랫폼이 꾸며져 있다. 대형 벽화도 그려져 있다. 보통 만경대선의 부흥역에서 영광역까지 1개 구간만 타곤 하는데 운 좋게 부흥역에서 개선역까지 5개 역을 타볼 수 있었다.
지하철도 다른 형태를 탈 수 있었다. 이런 행운이! 부흥역에서 영광역까지는 꽤 오래된 열차였다. 문도 손으로 개폐해야 했고 실내도 다소 어두웠다. 반면 영광역에서 개선역까지는 꽤 최신식 열차다. 자동문이었고 새것 티가 팍팍 났다. 지하철 안의 폭은 서울 지하철보다 다소 좁은 것 같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표준궤란다. 서울도 표준궤라 들었는데 아닌가.
모니터 화면도 있어 영상과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늘 날짜, 온도, 습도와 함께 속도가 표기되고 있다. 다음역이 어디인지도 나온다. 노약자 등의 전용좌석도 있다. 전용좌석 2개는 짙은 빨간색이어서 분홍색 일반 좌석과 구분해 놨다. 우리와 같은 형태인지 싶다. 연세 지긋하신 분이 탔지만 전용좌석 2곳엔 모두 주인이 있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젊은 여성 한 명이 자리를 양보한다. 모자를 쓰고 있던 어르신은 손 사례를 쳤지만 그 여성이 두세 번 양보하니 앉으신다. 보기 좋다.
꽤 사람들로 붐볐는데 출퇴근시간에는 이용객이 훨씬 더 많단다. 우리도 그들이 신기했지만 그네들도 우리가 신기한가보다. 지하철이 머가 새롭다고 연신 사진 찍고 영상 촬영하니 말이다. 지하철안 풍광은 우리와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모두 핸드폰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북한에선 아직 그런 모습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옆에 두세 사람만 핸드폰을 하고 있고 그저 옆 사람과 소곤소곤 얘기 나누거나 그냥 앞을 바라보고 있다. 또는 책을 읽거나 말이다.
역무원인 듯한 사람들이 제복을 입고 승하차를 도우고 있다. 팔에는 ‘안내’라는 표지를 차고 있다. 예전 우리가 버스 탈 때 있던 그 버스 누나 같은 개념이리라. 아니면 서울 지하철의 ‘푸쉬맨’과 같은 것인가. 모든 역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광역엔 있었으나 승리역과 모란봉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영광역에서 모란봉역까지 약 8분 걸린 것 같다. 3개역에 8분이니 한 역당 2~3분 정도 걸린다.
개선역에 당도했다. 플랫폼에도 모니터가 달려 있다. 터치스크린도 있다. 부흥역에는 없던 것 같은데. 개선역은 리모델링한 느낌이다. 대형벽화는 여기도 마찬가지. 연설하는 모습의 흉상도 있는데 아무래도 김일성 젊은 시절 모습인 것 같은 느낌. 그냥 느낌이긴 한데 맞을 듯하다.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글귀에 젊은 김일성인 듯한 인물이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의 벽화가 있으니 말이다.
이곳에는 부흥역과 달리 지하철 역사 안에 서점이 있다. 신문과 잡지는 물론이고 각종 책이 진열돼 있다. 책 제목만 봐서는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다. ‘무역실무지식’, ‘영어번역명수의 길’, ‘여성들을 위한 135가지 건강상식’, ‘정찰세계의 여주인공들’, ‘중국어 자습용’, ‘뇌혈전의 예방과 치료상식, ’건강장수와 약물’. ‘헛갈리기 쉬운 조선어어휘들’, ‘수학물리화학 공식집’, ‘스트레스와 나’, ‘피부와 미안’, ‘무역실무정황처리’ 등이 그 책들이다.
여기도 밖으로 나가는 길이 꽤 길다. 드디어 개찰구를 빠져 나와 밖에 당도. 개선문이 바로 보인다. 자연스레 향한다. 개선문은 프랑스 개선문에 착안해 1982년 건설된 것으로 높이 60미터다. 프랑스 개선문에 비해 11미터 더 높단다. 평양의 여러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인데 지난 4월 6일 2019년 이후 6년만에 열린 평양 국제마라톤대회 참가 선수들은 이 앞을 지나가도록 코스 설계가 되어 있다.
다음 관광일정은 학생들의 공연 관람이다. 학교 강당인 것 같았는데 어떤 학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여학생들인데 기타, 드럼, 피아노 등으로 흥겹게 불러재낀다. 그러곤 일행과 함께 줄넘기도 한다. 그 중국 MZ세대 친구들이 불려 나가서 무대에서 함께 하고 나왔다.
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 오늘 저녁은 해산물 샤브샤브 요리다. 1인용 샤브샤브로 먹기에 간편하다. 꽤 푸짐하다. 생선살과 새우, 관자와 함께 두부며 각종 야채를 한꺼번에 넣고 하나씩 꺼내 먹었다. 함께 먹는 음식으로 각종 전과 김치, 가지튀김, 나물 등이 나와서 양이 많다. 북한에 와서 먹어보고 싶던 물냉면도 추가로 시켜서 ‘흡입’했다.
호텔 돌아오니 이미 늦은 저녁이다. 방에 그대로 들어가기 아쉬워 서산호텔 1층에 있는 카페로 향한다. 평양에서 마시는 커피를 기대했다. 이전에 김포 애기봉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커피집이다. 한강 너머 개성이 보인다. 그 기억에 평양에서의 커피 또한 기대해 봤다. 여기서는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5달러. 저렴하진 않다. 그래도 호텔 커피숍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호텔 앞 정원을 산책하다 비가 흩뿌려 들어왔다. 이렇게 둘째날 일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