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악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돈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서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질문들이 깨어났다.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돈을 쓰려 할까? 남들보다 멋져 보이려고 평생을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왜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비정상적인 소비를 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걸까? 아니, 만족하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소비를 반복하는 걸까?
그러다 더 큰 질문들이 쏟아졌다. 왜 사람들은 소비의 굴레에 갇혀 평생을 살까? 왜 사랑을 찾지 못하고 돈이나 물질이 사랑인 양 착각할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심리학 탐구의 문을 열었다.
인간의 심리를 알아갈수록 시야가 밝아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뿌옇게 흐려졌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세금의 진실, 보험 회사의 진실, 우유의 진실, 약의 진실을 다룬 책들을 읽으며 내가 믿었던 세계가 산산조각 났다. 옳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의학이 발달했다고 기뻐하지만, 자연스러운 죽음의 자유는 잃어버렸다. 병원에서 몇 년간 수천만 원을 쓰며 자식도 힘들고 본인도 고통받다가, 죽음이라는 축복을 겨우 맞이한다. 인간에게 죽음은 당연한데, 우리는 그 당연함을 비정상이라 여기며 막으려 한다.
가죽만 남은 팔에 주사를 맞고, 산소호흡기를 의지하며, 목에 구멍을 뚫어 미음을 먹이고, 생명을 억지로 연장한다. 산소호흡기를 뗄까 봐 손발을 침대에 묶고, 대소변은 기저귀로 처리한다. 몇 주 만에 찾아온 자식은 간병인에게 돈과 먹을 것을 쥐여주며 잘 부탁한다더니, 한 달 입원비를 누가 낼지 형제들끼리 언성을 높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지막 길인가?
세상은 술이 나쁘다고 하면서도 술을 권한다. 술은 폭력을 키우고, 욕망을 부추기며, 남녀 간 치정 문제를 낳는다. 음주운전은 감형까지 받는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켜 통제력을 잃게 한다. 나도 술을 마신 다음 날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한 적이 많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은 술을 없애지 않고, 현실을 도피하는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걸까? 담배와 마약도 마찬가지다. 몸에 해롭고 암을 유발하며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데, 왜 없애지 않고 정부가 통제라는 명목으로 합법화할까? 법도 그렇다.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강력한 벌을 주면 다른 이들이 따라 하지 않을 텐데, 범죄자도 변호사를 두어 법망을 빠져나간다.
과연 이 세상은 선함이 아닌
악함이 지배하는 사회일까?
여기가 지옥이 아닐까?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이며,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괴로움을 만든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왜 우리의 삶은 고통으로 채워지고,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리는 걸까? 기독교의 아담과 하와 원죄가 진짜일까?
돈이 없으면 돈 때문에 힘들고, 돈이 있어도 또 다른 이유로 괴롭다. 결혼을 못 하면 결혼 못 해서 힘들다고 하고, 결혼하면 결혼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일자리가 없으면 백수라 괴롭고, 일이 있으면 회사와 일 때문에 죽겠다고 한다.ㅡ무엇을 가지면 그 가진 것에서 고통이 시작된다. 빛나고 예쁜 상자를 열어보면 쓰레기만 가득하다.
희망은 판도라 상자에 있었다.
신화에서 판도라 상자엔 온갖 고통과 재앙이 있었고, 마지막에 희망이 남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희망 덕에 살아가지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이기심을 부추겨 경쟁과 갈등을 낳는다. 희망은 구원의 빛이 아니라 지옥에서 탈출 할 수 없도록 감옥의 문을 잠가버리는 열쇠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모두가 악마 같고 이기적으로 보였다. 돈을 위해 환자에게 검사와 수술을 권하는 의사,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변호하는 변호사, 광고는 불안과 희망을 부추겨 물건을 사게 한다. 남이 잘되면 질투하고, 어떻게든 남의 돈을 가져오려 마케팅이라는 설탕을 발라 판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 죽음이라는 유일한 탈출구를 보며 살아가는 걸까? 나도 지옥에서 스트레스와 경쟁이라는 현대판 벌을 받고 있는 걸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도 악마 중 하나다.
식당을 하며 돈을 번 것도 남의 돈을 끌어모으기 위해서였다. 글을 쓴 것도 돈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몰래 봉지 커피를 훔쳐 아빠에게 가져다줄 때 "하루 커피 6잔 마시는 사람도 있는데, 난 한 잔이니 3봉지 가져가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잘난 척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질투와 시기로 뒷담화를 하는 것은 취미였다. 누군가가 무엇을 주면, 고마워하지 않고 트집만 잡았다.
내가 악마임을 깨달은 순간, 나를 짓누르던 생각이 고요해졌다. 모든 게 설명되었다. 나는 악마고, 이 세상은 지옥이다. 악마인 나는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다. 우리 모두 지옥에 있는 것이다.
타인을 향해 있던 화살이 나에게 돌아와 박혔다. 내가 악마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신기하게도 잠들어 있던 내가 깨어났다. 내가 지옥에서 악마들을 보고 있던 것은 내가 천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악마였기 때문이다. 나는 악마이기 때문에 더이상 착함이라는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 두꺼운 메이크업을 하여 갑갑했던 피부를 클렌징 한 것 처럼 시원하고 숨을 쉬기 편안해졌다.
이전에 '미움 받을 용기'로 인해 내가 왜 돈을 무의미하게 쓰는지, 왜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셨는지에 관해 이해를 하고 변화 하였는데, 내가 '선' 이 아닌 '악'이라는 생각은 그동안 나의 가슴과 목을 옥죄고 있던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졌다. 다른 사람만 '악'이 아니다. 나도 '악'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세상과 나에 대한 기대를 완벽하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상'을 강요하던 감옥에서 나를 풀어주고 난 뒤에 느낀 해방감이란... 이제부터 세상과 싸우거나 나를 바꾸려고 애썼던 피로감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근데, 누가 나를 이곳에 가두어 놨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