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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에서 더 살아야 하는가?

돈이 생겼는데 왜 살기 싫을까?  

by 똘맘 Mar 11. 2025

내 안에 천사가 아닌 악마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속앓이했던 것들, 죄책감에 짓눌렸던 순간들이 있었던 이유는 내가 나빠서가 아니였다. 오히려 착한척을 해야 해서였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안은 악으로 가득 차 있고, 내가 했던 나쁜 행동들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을 마주 한 순간,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은 늘 미묘한 애증 속에 살아간다. 특히 깊은 사색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딸을 시녀로, 자신의 아바타로, 혹은 부족한 자신을 채워주는 도구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제 그들의 행동이 낯설지 않다. 비판할 수도 없다. 그들은 그저 악마일 뿐이니까.

Photo by Lorenzo Fustaino on Unsplash      Copy to clipboardPhoto by Lorenzo Fustaino on Unsplash      Copy to clipboard

10년 다니던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선언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화를 냈다.
 “니가 이제 돈을 벌어 나에게 주어야지! 육아휴직을 하면 어떻게 해? 돈 벌라고 애도 다 봐줬는데! 대학도 보내고 어학연수도 보내줬어. 이제 돈 벌 때인데 무슨 육아휴직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대꾸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가 한 인격체가 아니라 우리에 갇힌 식용 돼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배고프면 칼날을 들이밀어 내 살점을 뜯어가고, 이후에는 정성껏 치료하며 먹이를 주었다. 정기적이든 비정기적이든, 나를 키운 목적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는 나에게 가져간 살점을 나누어주고, 때로는 자신의 살점까지 떼어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엄마에게서 악취를 느끼기 시작했다.


평생 나에게 먹이를 준 이유가 내 살점을 취하기 위해서라는 걸 몰랐다. 아니, 미디어에서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육아휴직 중 엄마와 떨어져 지내던 때, 우리 관계의 마지막 쇄기를 박는 전화를 받았다. 아마 그녀는 그 것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고, 항상 했던 대로 전화를 하여 이야기 했을 것이다. 코로나 시기, 사촌 동생의 아이 돌 사진이 카톡에 올라왔다. 내 삶이 바빠서 아이를 보러 가지도 못했는데, 벌써 1년의 시간이 지난 것에 세월 참 빠르다 생각을 하면서 좋은 마음으로 돈을 보냈는데, 엄마는 그 소식을 듣고 전화해 말했다.
 “걔한테 돈 붙였다면서? 돌잔치에 초대도 안 했으면 돈 줄 필요 없어....그나저나 우리가 문제야. 요새 코로나 때문에 벌이가 적고 요새 돈이 없다!”
 전화기 너머 스며오는 악취에 귀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육아 휴직중인 딸에게, 잘지내냐는 어떻게 지내냐는 말도 없이 내가 마치 자신에게 보내야 할 돈을 친척동생에게 보낸양, 생각이 모자라고 호구짓을 하는 것 같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했다. 참지 못하고 도중에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다시는 받지 않았다.


나는 내가 문제 있는 사람인지, 지독하게 나쁜 인간인지 고민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꿈에서도 그 목소리가 나타났고, 멍하니 있을 때면 엄마가 했던 말들이 끈적한 액체로 변해 뇌 속을 떠다녔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처럼 전화기에 엄마라는 두글자만 떠도, 심장이 답답해지고 숨을 쉴 수가 없고 미치도록 화가 밀려왔다. 전화기를 던져버리기까지 했고, 어느 날은 핸드폰에 그 두글자를 보고 아파트에서 떨어지고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악마라니!!  

 그보다 더 유쾌한 정의가 있을까? 내가 악마다!!!! 나는 악마다!! 

행복감과 해방감이 잠들어 있던 온몸의 세포를 하나씩 하나씩 짜릿하게 감싼다. 


내가 악마니, 당연히 나의 엄마도 악마였을 것이다. 그녀는 나쁜 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소리를 한 것 이다. 나 또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돼지가 돼지를 낳고 개가 개를 낳듯이, 유전자의 축복 속에서 악마의 피는 대물림 된다! 하지만 왜 그녀는 나를 천사로 키우려고 했을까? 악마에게 천사가 되라는 것은 돼지가 새끼를 낳아 놓고, 강아지 처럼 왈왈 짖으며 공원을 산책 하라고 하는데, 과연 하루종일 돼지 우리의 오물속에 누워서 이야기만 하는 본인의 엄마를 보며, 무엇을 느끼겠는가? 


아쉽지만, 내 자식도 내가 키운 것에 고마움을 모르고, 나도 모르게 내뱉은 서운한 말에 악취를 느끼며 나를 멀리할 것이다. 이건 나쁜 것이 아닌 악마의 섭리다. 만약 내 아이가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 섭리를 깨우치지 않도록 내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 내 마음에 쌓인 썩은 냄새가 아이들의 귀에 스며들지 않게, 아이들이 조금 더 늦게, 내가 악마임을 눈치 채도록... 


모든 사람이 악마다. 그래서 입만 열면 다른 사람에 대한 모함과 질투 그리고 비난들을 쏟아 내는 것이다. 

그들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연적인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누가 잘 살면 질투가 치밀고, 못 살면 무시와 충고를 퍼붓는다. 남이 나에게 저지른 악은 선명하먀 보여지고, 내가 남에게 뿌린 악은 눈에 안 들어온다. 벌인가? 우린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가지고 싶고, 먹고 배출하고 먹고 배출 하기에 또 먹어야만 하는 벌을 받고 있는 악마인 걸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따르는 것들은 그것을 손에 넣는 순간 불행으로 바뀌어 버린다. 

우리 모두는 마이너스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내가 그토록 갈구하여 노력 끝에 손에 넣는 것은 모조리 돌맹이로 바뀌어 버린다. 


그렇게 원하던 이쁜 여자를 만나도, 그 여자가 와이프가 되어버리면 불만만 쌓여간다. 

그렇게 원하던 큰 집을 사면 청소를 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유지비도 많이 들고, 보안의 문제도 생긴다. 

그렇게 원하던 좋은 자동차를 구매해도, 유류비도 많이 들고 주차 자리도 마땅치 않고 부품도 비싸다. 

그렇게 원하던 아이들이 생기니, 내 자유가 없어지고 이것은 행복인지 고난인지 모르겠다. 


내가 원하던 것을 가지면, 잠시 스쳐가는 찰나의 행복 뒤에는 그를 지탱하기 위한 책임들이 함께 따라온다. 

우리 모두는 그 책임을 유지 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신들을 농락한 시시포스의 벌을 받는 것 처럼,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을 반복해야 한다. 우리는 썩어가는 과일과 썩어가는 고기에 방부제를 듬뿍 발라서 비싼 값에 구매를 해야 하기에 썩어가는 몸둥아리를 가지고 썩어가는 것들을 가지기 위해 하루를 바치고 있는 벌을 받는 악마 일 뿐이다.  


이 악마들과 함께 하는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어린 사람들은 뉘우치며, 남에게 베풀고 살라고 할 것이다.

문제는 악마들에게 베풀어도,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는 그런 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떡을 하나 주어도, 그 떡 때문에 목이 마르다며 불평을 하고, 혹은 내가 준 떡 때문에 목이 막혀서 죽을 뻔 했다면서, SNS에 나를 태그하여 저 악마는 사기꾼이고, 내가 주는 떡은 다른 천사들을 살해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른 천사들은 동의를 하며, 나를 알지 못하는 본인이 천사인지 착각하는 악마들을 하트를 눌러댈 것이다. 그럼 그 악마들에게 베푸는 것은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일 아닐까? 그래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현명한 세대가 올 때까지 진화 한 것 아닐까?


 이 지옥에서 가장 악취가 풍기는 악마는 자신이 천사인지 착각하는 악마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입을 열어 온갖 악취가 나는 것들을 끊임없이 밷어 낸다. 도덕과 정의를 내세우며, 그것은 악마들에게 전기 충격을 주는 기계인지 망각한채, 자신이 악마라고 자각한 다른 악마들보다 더욱 고약한 냄새를 내며 떠들어대며, 다른 악마들을 칼로 찌르며 다닌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다른 악마들을 짜증나게 하고, 본인 자신을 우습게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칼로 찌른 다른 악마들의 피를 보며, 자랑하는 듯이 생각 없이 떠벌리고 행동하고 다닌다. 얼마전에 내가 그랬듯이...

 우리가 악마로 받은 큰 벌 중 하나는 생각할 수 있는 뇌를 가졌으면서도,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이 지옥에서 벗어날 길은 과연 있을까? 악마인채로 이 지옥에서 죽어야 하는 것인가?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아직 답을 모른다. 다만, 내가 악마임을 받아들인 지금, 그 질문조차 덜 무겁게 느껴진다.  

Photo by Anne Nygård on UnsplashPhoto by Anne Nygård on Unsplash

악마가 사라지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죽음은 왜 악마인 우리에게 공포인 것으로 디폴트 되어 있는가? 우리가 벌을 다 받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까봐, 이 지옥의 탈출구인 죽음에 대해 공포심을 심어 놓았을까? 도달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그곳이 사실은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통로일까? 


이런 고민을 했을 때, 자성에 매료된 듯 자살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었다. 자살이 마치, 용감한 영웅들의 결단력있는 행동과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나는 여전히 겁쟁이 악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악마라고 깨달은 덕분에, 안개가 가득하여 조심하며 걱정 가득 살아가던 세상이 용암이 가득한 낭떨어지들이 있는 지옥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야 렌즈 촛점이 맞아서 길이 보인다. 타인들도 악마인지 천사인지 몰라서, 경계를 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무조건 악마다. 모두가 악마라고 단정 짓고 타인을 대한다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이 사람은 질투에 눈이 멀어, 뒤돌아서면 나를 깎아내리고 무시하며 조롱할 것이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멋대로 썰어내 판단하고, 손가락질하며 자신이 천사라고 착각하는 다른 악마들과 몰려다니며 비웃음 섞인 독설로 씹어대며 떠들어댈 것이다.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그러니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내 악취를 풍기지 않도록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입을 다물고 있기 무료하다면, 내 악취를 풍기며 타인의 악취가 심한지 내가 심한지를 겨뤄볼 수도 있다. 이제 모두가 악마라는 것을 알았으니, 상처 받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어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어둠에 의해 파괴된다."
 
by 칼 구스타프 융

이 지옥을 끝까지 탐험하며 자연적으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살아보기로 했다. 내가 악마임을 받아들인 순간, 내 안의 어둠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타인의 어둠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모두가 악마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니, 더 이상 상처받을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 지옥 생활이 한층 더 흥미진진해졌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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