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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허상이다.  

선과 악의 재정립

by 똘맘 Mar 25. 2025

사람들은 선한 것과 악한 것에 대해서,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같은 기준이 있다고 믿는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선한 행동이라고 생각을 하며, 다른이들의 경계를 마구 침범하여 망쳐버린다. 다른이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상처가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채,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통념의 선을 들이밀고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타인을 재단하고 평가하며, 공격적인 행동으로 선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나 또한 무지 할 때는 내 딸아이에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인사를 잘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연결을 하는 것은 이 지렁이가 낚시꾼이 던진 것인지 어떤 것인지 모른채 덥썹 물어버리는 것 처럼, 스스로 범죄의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하는 행동이다. 

범죄와 전쟁, 폭력 그리고 시기와 질투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으로 부터 행해지기에, 다른 사람과 연결을 시작할 때는 어떤 사람인지 신중이 본 후 연결을 하고, 만약 이 연결에서 불길한 느낌이 든다면, 바로 연결을 해제 하여 나를 지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우리는 자연의 이치를 "모두와 함께 해야한다"는 멍청한 도덕으로 눌러 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의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닐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 것인가? 

많은 사람이 어떤 것이 선한 것이고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 생각을 해보지 못한 채, 피해자는 선한 사람이고, 가해자는 악한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미디어에서는 이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표현 한다. 과연 진실로 부자는 악한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선한 사람인가?

브런치 글 이미지 1

 톰은 나쁜 고양이고, 제리는 착한 쥐라 제리가 가만히 있는 톰을 공격하는 것은 응원하고, 그 공격을 받아 제리를 뒤쫓는 톰은 괴물 같은 존재인가? 우습게도 사람들은 상황을 보지 못하고, 선과 악이라고 정의되어 있는 외관을 보고 판단한다.  사자가 악하고, 토끼가 선하다?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세뇌된 고약한 고정관념이다. 

사자는 육식을 하는 동물이라 동물을 잡아 먹는 것이고, 토끼는 채식을 하는 동물이라 식물을 먹는 것 뿐이다. 그럼 돼지를 먹는 인간은 악한 존재인가? 식물도 저마다 목숨이 있다고 생각을 해보면, 하루 종일 식물을 먹고 있는 토끼는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 가는가?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릴 때 꿈은 변호사였다. 아니, 어린 애가 무엇을 알았겠는가, 아마 부모로부터 변호사라는 직업을 해야한다고 세뇌 당했을지도 모른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자신을 변호하여 형량을 낮추게 하거나, 법 망을 요리조리 피해서 변호사에게 돈을 준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가게 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뉴스를 보면, 상식적이 아닌 행동들이 상식적이지 않은 판결을 받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변호사는 이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에게 형량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 고용 된다.  법의 형량은 선과 악이 아닌 돈의 유무로달라진다. 


그럼 과연 우리가 말하는 선과 악은 어떤 상황에서 생기는 것인가? 

초등학교 2학년 반에서 어떤 A라는 여자 아이가 다른 이들에게 상처가 주는 말들을 내뱉는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와 놀고 싶지가 않다. 그럼 A는 자기의 부모에게 다른 아이들이 왕따를 시킨다고 하며 이르고, 부모는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나쁘다고 말을 한다. A는 자신이 가장 놀고 싶어 하던 B라는 아이가 자신과 놀지 않았음에 야속하여, 그 B라는 아이가 나를 왕따 시켰다고 말을 하고, 그 B 라는 아이는 왕따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변호사까지 대동하여 B양의 잘못을 들쑤셔 강제 전학을 가게 된다. A라는 여자 아이의 부모는 일을 더 크게 만들어 자신의 아이가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뉴스에 제보까지 하고 다큐멘터리를 찍기까지 한다. 온 나라는 B라는 아이에게 손가락질한다. 그에 이기지 못한 B라는 아이는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 후, 전학간 학교의 부모들은 그 아이를 전학 받았아서, 내 아이가 이런 경험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담임선생에게 욕설을 퍼붓고 피해 보상을 신청한다. 


대체 여기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란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B가 악이라고 손가락질하며 권선징악이라고 말을 한다. 

여기서 악은 A 일까? 

A의 부모일까? 

그들의 말을 듣고 취재를 하여 다큐멘터리를 만든 방송사일까? 

강제 전학을 보낸 선생님일까? 

전학을 간 학교의 선생님일까? 

전학을 간 학교의 학생들일까? 

전학을 간 학교의 부모들일까? 

뉴스에 댓글을 단 사람들일까? 

아니면 A와 인사를 하고 처음에 친하게 지내다가 거리를 두었던 B일까? 

B의 부모일까? 

아이의 전학을 받아 준 학교일까? 

전학간 학교의 담임 선생일까? 

모두가 피해자다! 가해자는 아무도 없고, 피해자만 있는 상황 속에 무엇이 선이고 악이란 말인가? 

모두가 나름의 선을 추구 했지만, 그 선들이 충돌하면서 비극을 낳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 해야할까? 


우리는 자신의 박스에 갇혀, 자신이 맞다는 것을 선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문제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인해 자신이 맞다는 것의 이면의 행동은 악이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는 일부 일처제가 선이라고 정의가 되어 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해도, 일부 다처제가 통용이 되어, 부자가 많은 여자들을 거느릴 수 있고, 가난하고 매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결혼을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동물들의 번식활동에서도 우두머리 수컷이 많은 암컷을 차지하고, 그의 자손을 남기는 자연적인 현상을 볼 수 있다. 여왕 개미, 여왕 벌 같이 한 암컷만 생산활동을 하기도 한다. 자연적인 세계는 적자 생존의 법칙이고, 나에게 이익을 주는 것을 선택 할 뿐이다. 자연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오직 사람만이 자연과 대치 되는 무엇인가를 서로 약속하고, 그를 어기면 비난을 한다. 


개미가 진딧물을 무당벌레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선이 아닌 이득을 위해서였다. 처음에 이 법칙을 이해 했을 때(아마도 4년 전에),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진딧물이 배출하는 진액은 다른 식물에 떨어진다면, 곰팡이가 자라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생물의 광합성을 방해 할 수도 있다. 또 진액이 떨어진 곳에서 곰팡이나 병원균이 번식하면 주변의 식물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만약 진딧물이 자신이 내 뿜는 진액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무곳에나 선을 행사한다면, 주변의 식물들은 말라 죽을 수도 있다. 또한 그 진액은 진딧물에게 필요 없는 것이라 개미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이지, 만약 진딧물이 먹어야 하는 요소 였다면, 그것은 공생관계가 아닌 약탈이나 기생의 관계가 되어 개미는 어마어마한 악의 곤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이익이 타인에게는
이익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이 세계에서는 '선'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착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가? 자신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이기적인 생존 전략일 뿐이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악한 행동이 되기도 한다. 모두 선을 바탕으로 행동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선이 될지 악이 될지는 받는 사람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나 또한 남에게 받은 것들이 선이 아닐 때가 많았다. 옆집에서 만두를 맛있다고 두 봉지를 주었는데, 한번 먹고 나니 내 입맛이 아닌데... 버리기가 마음에 걸려서 몇달 동안 냉동실에 넣어 놓은 적도 있다. 다른 사람이 준 아이의 옷은 얼룩도 있고, 질도 마음에 들지 않고, 아이에게 입히고 나가면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해서 기분이 요묘해 지기도 한다. 비싸지만 남이 입던 옷 대신 내가 구매한 만원짜리 옷을 입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특히 시댁의 아이가 입던 작은 옷을 받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은데, 상대방은 선을 행했다고 생각을 하며 우쭐하며 나를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이 쓰던 것을 받아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내가 중고 제품을 돈으로 샀을 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선이 이렇게 어긋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사이코 허황투성이에 성격파탄자라 그런 것인가? 


혼란스러운 나에게 다가온 것은 니체와 불교의 사상이었다. 그 둘은 다르게 보이지만, 굉장히 비슷했다.

기독교와 인간은 천국과 행복이라는 말도 안되는 개념을 만들어, 그 반대인 지옥과 불행을 만들어 버렸다. 완전한 삶을 꿈꾸고 있기에 현재를 부정해 버렸고, 이 변화하는 모순 속의 세계에거 불안과 불확실로 인해 고통받게 만들었다. 

타인을 동정하지 말아라,
 그것은 타인을 초라하게 만든다. 


동정은 '선'한 감정이라는 그 이면에서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과 상대를 약자로 규정하는 시선이 숨어있다. 

니체가 말한 연민의 도덕이라는 개념으로 보자면, 연민은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들고, 강자를 약화시키는 독이라고 봤다. 동정은 내가 선하다는 착각을 강화하고, 상대를 객체화 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니체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불완전하고 추한 것으로 부정했을 때, 신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삶을 긍정하는 자에게는 신이 필요 없다." 라고 말한다. 고통과 모순이 가득한 현실을 받아 드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면 된다고 한다. 니체는 '선'이라는 개념도 이런 허구중 일부로, 약한 자들이 강한 자를 억압하기 위해서 만든 도구(원한의 도덕)라고 비판하디도 했다. 


신데렐라, 흥부와 놀부, 시골쥐와 서울쥐 같은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려 주면서 사람들에게 '선'을 교육하는 것인가? 이 동화를 통해 사회적인 질서를 유지하고, 약자를 위로하는 역할을 하여 참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주어, 욕심내지 말고 통치자의 말을 들으며 살라고 위안을 주는 것인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독'을 주입하고 있는 것인가?  


자연은 자신에게 이익이 따르는 것을 행하고, 본능이 이끄는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왜 인간만은 자연의 이치 따르는 것을 '악'으로 단정 짓고, 자신의 욕망을 없애거나 통제하는 행동을 '선' 이라 말을 하며,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을 갉아 먹으며 살아갈까? 욕망은 나고, 내가 욕망인 것을 모르는 것인가? 


선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고, 
악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거나 다른이에게만 주는 것 


  나는 굶어죽고 싶지 않아서, 땅에 고구마를 심고, 그 고구마를 수확해서 먹으려고 하는데, 매일 놀고 있던 옆집 사람이 와서 자신에게 나누어 달라고 한다. 싫다고 거부하니, 악한 사람이라며 욕을 하고, 동네 사람들을 선동하여 나를 그 마을에서 몰아 낸다. 


결국 주위에 선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악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물질에 한정되지 않았다. 어떨 때는 웃음, 인사,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돈'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고구마와 같이 썩어버리지도 않아서, 가지고 가져도 또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남이 원하는 것이라면, 서로가 타인에게 주지 않으니 서로의 행동이 '악'한 행동이 될 수밖에 없다. 


끔찍한 사실은 자연의 섭리에서는 사자는 토끼를 먹으면, 끝이 나지만, 인간은 원하는 것이 끝없이 확장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1:1 관계가 아닌 타인을 더하자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 것을 C라는 사람이 목격했는데, 그것을 A가 C에게 주지 않았다면, C는 A라는 사람이 '악' 한 행동을 한 사람이 된다. 초등학교 2학년 반으로 돌아가서 왜 B가 A에게 나쁜 행동을 했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제 3자의 시선과 욕망까지 얽히면 어떤 결과가 돌아 올지 모르게 복잡해진다. 


내가 만난 사람이 '선'한 사람이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준 사람이고, '악'한 사람이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거나, 도리어 내게 가져가거나 다른 사람에게만 주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원하는 것을 남으로부터 받기 원하는 나는 '선'인가? '악'인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받기를 원하는 것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은 선한 사람이 되고, 

만약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받기를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독악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들을 '악'으로 혹은 '선'으로 정의 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이 아닌 '나'였다. 

이로써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 내려놓기" 와 니체의 "삶의 긍정"에 다다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나로 부터 발생한다. '선'과 '악'은 결국 욕망과 이익으로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 하였다. 


내가 자리해 있던 또 하나의 세계가 부서졌다. 


"세상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만, 자연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by 장자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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