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charm Peony'가 만개한 날비가 내렸다. 폭우와 비바람 예보에 나는 애가 탔다. 정원에 수없이 피었다 지는 꽃을 일일이 아쉬워하지는 않지만 어떤 해, 어떤 꽃의 마지막은 덧없음과 아쉬움을 남긴다. '사람의 생'도 그러하지만 "꽃도 만물도 활짝 피어나지 못하는 것이 딱하지 한번 만개했는데뭘 더바랄까?" 혼잣말이다.
폭우가 내린날 나는 새벽에 일어났다. 우리 동네엔 희한하게 집집마다 가로등이 있다. 집 앞 가로등 불빛이 정확히 작약 행렬에 비치는 지점을 찾은 나는 붉은 작약을 살펴보았다. 괜찮았다. 그러고도 4~5일을 더 지탱하더니 꽃잎은 화르르 떨어졌다.
37개의 작약 구근 덩이를 일렬로 심은 지 3년 만에 적잖게 불어났다. 작약 옆 흰색 카모마일이 어울리는 배경을 만들어 주었는데, 엄청난 양의 카모마일은 쓱쓱 잘라 건조기에 말려 차를 만들었다. 바로 그 자리에 잔가지를 낸 카모마일이 다시 피고 있다. 화사한 연분홍과 진분홍 작약이 함께 흔들흔들! 설레는 풍경이다.
암석정원으로 가봐도 천지가 작약이다. 웃음을 안기는 토끼 같은 작약도 있고, 인터뷰를 기다리듯 봉우리를 앞으로 쑥 내민 것도 있다. 산 할아버지 긴 눈썹처럼 흰색 꽃잎이 중간에 동그랗게 둘러진 것도 있다.
노랑 작약이 피어나던 날줄기의 건실함과 꽃의 단단함 그리고 처음 본 색다름에 나는 360도로 둘러 가며 감상했다. 이 대륜 작약의 크기는 웬만한 연꽃만 하다. 모란과 작약은 몇 해 동안 내 그림 속의 소재가 되었고, 집에만 있게 된 올해엔 시름을 잊게 한다.
작년 늦여름 잘 영근 씨앗으로 파종한 작약은 성공했고, 제자리에 떨어진 것도 세 개 자라고 있다. 뿌리를 나누는 것도 꽃을 늘리는 방법이다. 이미 시작된 폭우에 정원의 나무와 꽃들은 아름다움을 일시에 잃었고 스텝 꼬인 사람처럼 나뒹굴듯쓰러지고엎어졌다.
직접 길러보기 전에는 목단과 작약의 구분은 쉽지 않았다. 위의 사진-모란은 기본적으로 나뭇가지에서 싹을 틔우는 반면, 작약은 풀이라 겨울에 마른 줄기를 정리해버리면 흔적을 찾기조차 어렵다. 올봄 나의 호미질에 아래 사진 몇몇 작약 구근은 찍혀버렸다. 무엇보다도 두 꽃은 뿌리의 약성으로 인해 귀한 한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단아한 신부에게 화려한 포인트가 될 부케 같은 꽃- 모란과 작약은 이제 없다. 2021-우리에겐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