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번째 서랍에는 내 겨울바다가
내 두 번째 서랍에는 그대를 그리기 딱 좋은 스케치북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오늘은 조심스레 첫 번째 서랍장을 열었고,
겨울 바다의 눈꽃냄새가 눈물 나도록 향기로울 때
난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사람이 슬퍼서가 아니라 그 대상이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수도 있구나.
그렇게 난 두 번째 서랍을 열어볼 생각으로 손을 뻗는 데
오른쪽 틈 사이로 뭉툭한 색연필 한 개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어쩐지 이 방이 유난히도 노란게 신기하였는 데
어라,,
어제 잠을 뒤척이다가 달빛 그릴 때 썼던 노란 크레용이다.
헛기침을 여러 번 고치고
다시 차분한 마음으로 그대를 떠올린다.
이상하게도 난
보고 싶거나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 신기한 습관이 있다.
너무 잘 기억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망각할 정도로 내 사랑에 짙은 향기를 가지고 있어서일까?
어쩌면 이를 핑계로 한번 더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이렇듯 우리는 사랑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습관이 생긴다.
그대도 나처럼 잠자코 바라보고 있을 하늘이 부러운 나머지
괜히 하늘에 투정 부리기도 하고
평소에는 지나쳤을 공기 방울에 내 마음을 전해 보기도 한다.
혼자 있는 나는 상상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는 함부로 상상하기 어렵다.
늘 예상밖을 뒤엎을 만큼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기도 하고
예상보다 특별하게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사랑도 인생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