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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Jan 17. 2020

기획과 계획

Design other's brain

 일잘러가 되기 위해서는 실력으로 현실을 구축해야 한다. 그 실력이란 결국 지식의 습득과 가공, 몸으로 익히고 두뇌가 기억하는 경험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합한 결과다.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는 이 정보를 처리하는 두뇌, 즉 생각의 힘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기초적인 것은 무엇을 왜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정의하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산출물이 만들어지도록 미래 행위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정리 과정을 통해 생각이 잘 구성되었는지 점검하고, 변화에 따른 조정, 보완을 한다. 애자일 관리의 형식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의 사유 방식과 동일하다. 생각하고, 조정하고, 실행하고 다시 수정하며 목표에 다가서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좋은 선택이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선택은 좋은 사고력을 기반으로 하기에 생각을 다듬는 것은 일에서도 삶에서도 중요하다. 그 시작은 기획과 계획이다. 밥벌이 터전에서 왜 많은 보고서, 기획안, 검토 분석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 기획과 계획의 차이는 무엇인가? 궁금할 땐 사전에서 뜻을 확인하는 습관은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가 많은 말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의사소통을 적확하다.


 기획은 새롭게 시작할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어 내는 것에 가깝다. 막연해 보이지만, 직무 입장에서 분명 범위와 방향성이 좁아지며 명확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의 밥벌이(業), 역할, 목표, 파트너, 협력 부서, 시장, 거시경제, 관계와 같은 다양한 환경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범위를 다차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전략기획, 컨설팅을 제외하고 외부 환경 분석, 내부 환경 분석을 정리하지 않는 경향이 높다. 이 배경지식이 있어야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는 SWOT 분석의 내용이 명확해진다. 대부분 강점, 약점, 기회 요인은 쉽게 쓰지만 위협요인도 중요하다. 전략의 기초는 최악부터 최선으로 쌓아가는 방식으로 상상(simulation)해야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 더 입체적인 분석을 위해 경쟁 분석을 한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회피하는 일이다. 간단한 검색으로 각 분석의 틀을 인쇄해 내 생각대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작이 된다. 


 정리한 내용을 해석하는 것은 생각의 힘이 발휘되는 통찰력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공부하란 말이 지겹지만 한 분야의 책을 한 달에 한 권씩 6개월만 읽으면 큰 무리가 없다. 대학교 3학점 한 과목 교과서가 많아야 1~3권이다. 6개월이면 2~3과목을 공부한 셈이다. 꾸준한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화룡정점을 찍으면 명작이 되고, 마구잡이로 되는대로 그리면 먹물을 아무렇게나 찌그린 결과가 된다. 당연히 호출이 오고, 잔소리를 듣고, 항변도 못하면 화가 난다. 상당 부분은 피할 수 있는 일이다. 


 일잘러는 타인의 지적을 통해서 성장한다. 관심 없고 꼴도 보기 싫은 사람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유 없는 일에 사람들은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 잔소리는 일종의 관심이다. 상대방이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이 긍정과 부정의 형태로 들어있다. 물론 상대방이 생각이지, 내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방법은 경청이다. 듣고 난 뒤에 생각하고 이야기해도 대부분의 일은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나를 아끼는지, 아니면 정수기 물통을 깔때기도 없이 나의 입에 꽂으려는 수작인지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다 안다. 가치 있고 올바른 일이며 미래에 긍정적이라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대표적인 예가 엄마 아닐까? 엄마도 밥벌이 터전의 원수도 감정의 신이 강림할 땐 조금 다를 때가 있다. 이 부분은 무엇인가 상대방이 나로 인해 쌍코피가 날 상황에 직면했다는 알람일 때가 많다. 우리도 대부분 화가 날 때 그렇다. 직장에서 전화위복이란 간단하다. 실수로부터 무엇을 제대로 배우는 기회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을 하면 엄마가 화가 나는지 알고, 상사가 어떤 일에 분노의 히스테리를 뿜는지 안다면 그걸 깔짝깔짝 건드릴 필요가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위크와 해학적 유머지, 도발은 오히려 자극만 한다. 불의하다는 생각에 정의로움을 마구잡이로 넣고 달려든다고 해피엔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비극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불의를 압도할 역량이 준비되었는가? 그 역량은 생각의 힘, 생각의 힘을 뒷받침하는 실행력이다. 분수껏 역량에 맞춰서 하는 것이다. 결국 기획은 사고 훈련이고, 전략적 사고로 고도화하는 일이다. 


 내 경우에는 읽고 배운 뒤, 후배들 커피 한 잔 사주며 이야기하는 과정을 활용했다. 내 생각에 대한 반응을 많이 취합했다. 이런 작은 일상이 쌓여 진보된 질문을 만들 수 있었고, 새로운 관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보단 마나님과 머리싸움을 할 때가 훨씬 RPM이 빠른 것 같다. 연인이 있다면 이런 두뇌 싸움을 종종 할 것이다. 그 머리 쓰는 방식이 일에도 도움이 된다. 당연히 옳지 못한 일을 하면 밥벌이 터전에서도 일상에서도 매를 벌 수밖에 없다. 슬기롭고 지혜롭게 생각하면 좋겠다.


 계획은 어떤 목표가 구체적으로 설정된 전제로 시작된다. 기획 후의 준비과정이다. 목표를 진행하기 위한 절차, 절차의 우선순위, 꼭 해야 할 행동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체계적 정리한 절차에 가깝다. 방학을 교육부가 기획하겠지만, 방학 계획서를 만드는 것과 아이들이 한다. 요즘도 방학 계획서를 만드나? 지금 돌아보면 어려서 만든 쉬는 시간 없는 무지개 방학 계획표는 아주 비인간적이다. 사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의 하루 일과를 찾아보면 왕이 오래 살 수 없는 직업을 알 수 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고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자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계획이 100이라고 할 때, 결과가 100이 딱 나온다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100프로에 가깝다. 과거에 고객에게 한 품목만 $10불 높게 구매해주면 다음 오더에서 $10불을 다시 차감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동료를 봤다. 실적을 맞추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과라기 보단 책임감이다. 그럼에도 환율을 적용하면 목표와 동일하지 않다. 다들 힘들다는데 항상 초과 실적을 부르짖는 사람을 보면, 본인이 안 하기 때문일까? 이런 생각도 한다. 아니면 말이라도 해보는 것일까? 그런 불평보다 약속을 만들고 지켜가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다. 특히 삶에 스며들어 남을 때 무엇이 내게 남는가는 중요하다. 목표와 계획을 달성하는 사람은 점검하고, 확인하고, 조정하며 상황에 대한 대책을 끊임없이 준비하고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일잘러다. 지식과 경험의 축적은 미래 상황의 예측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목표 설정은 기획에 가깝고, 이때 생각의 힘을 많이 써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한 실행은 계획에 가깝고, 상황 변화에 대한 문제 해결 능력을 위해서는 없던 생각의 힘도 만들어야 한다. 큰 일이라면 사람들을 모으고, 작은 일은 지식을 축적하고 그 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도움을 얻기 위해서라도 생각의 힘을 써야 한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기획 단계의 오류가 가장 크다. 원가 결정 곡선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그 이후엔 상황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에 따른다. 상황 변화란 문제가 발생했다는 말이고,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단 의미다. 문제 해결 능력은 상황과 실력에 따라 결정된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기획도 하고, 계획도 하고, 꾸준히 무엇인가 준비하는 것이다. 혼자 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밥벌이 터전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한다. 당연히 서로 도와야지 매일 불란이 생긴다면 잘 될 턱이 없다. 평상시 두루 사람들에게 인사도 잘하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 쓸데가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기획서, 계획서를 잘 작성하는가? '글쎄'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 수준은 내가 생각보다는 타인이 인정하는 수준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작게는 장표질이고, 더 넓게는 사고를 구체화하고 시각화하여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이다.  


 생각한다는 관점에서 기획과 계획은 본인들이 아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상대방에게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전달하는 훈련이다. 이 논리 훈련을 통해서 본인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점검하는 이다. 이 과정이 모두에게 납득이 가려면 현재는 보이는 대로 정확하게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현실을 직시해야 해야, 필요한 것, 준비해야 하는 것이 일목요연해진다. 망삘의 확률이 올라가는 경우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분간하지 못할 때다. 하고 싶은 희망과 욕망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하고 싶은 방향으로 조금씩 전진하는 것이다. 먼저 할 수 있는 것 중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은 정리해서 타인의 동의를 얻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과정에서 역지사지의 관점, 타인의 좋은 관점을 배우는 자세, 혜택이 잘 분배되는 방향이 될수록 속도가 붙는다. 


 보고서를 읽어보면 작성자의 사고 수준과 사고의 흐름을 추정할 수 있다. 리더는 생각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하다. 계획과 기획을 정리하는 사람은 리더의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 리더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란 긍정적 사고가 필요하다. 현실에서 먼 경우라면 어쨌든 한 팀이란 생각이라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타인의 머릿속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생각을 디자인하는 일이 쉬워진다. "그럴싸한데"라는 답이 나오면 잘 된 일이고,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라는 말이 나오면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 상대방은 내 머릿속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꺼내서 생각을 보여주고 조언과 동의를 얻는 것이 기획과 계획이다.


 "좀 다듬어 봐"라는 말은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있는데 더 설득력 있게 구체적으로 표현하라는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라는 말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에 가깝다. "나중에"는 말은 생각을 더 구체화하라는 말이다. 그 생각이 안 된다는 것인지, 전달 방식의 문제인지, 경청과 배려가 부족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때는 질문이 필요한 때다. "꺼져"라는 말은 무례하고 기분 나쁘지만 아무것도 해 줄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라는 넛지 형태의 말은 현재의 생각에 내 생각을 좀 더하면 안 될까라는 질문에 가깝다.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다. 일잘러가 되기 위해서는 적확한 단어로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설득과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서로 경청하고 배려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모두들 잘 알고 있다. 그냥 혼심을 다해 죽으라고 했더니 속도 모르고 타박을 하니 화가 날 뿐이다.


 과거에 이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사업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본부장이 반려했었다. 자신의 뜻과 다르시단다. 나의 밥벌이 일터 구호인 '해도 지랄, 안 해도 지랄, 하면 더 지랄'인 상황이다. 짜증은 짜증대로 나지만 예의 바르게 본부장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보니, 본인이 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답답한 부분은 임원이 하고자 하는 매출 계획과 전략은 실무진의 피드백과 비교하면 어긋난 돼지발톱처럼 접점이 없다는 점이었다. 본부장에게 갑자기 매출 200% 예측 성장 계획서는 안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것이 정말 가능하다면 그 담당자가 밥벌이하러 여기에 오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매출이 몇 배씩 올라가는 방법을 알았다면 직접 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것 아니가? 적정하게 꾸준히 성장하고, 단계를 넘을 때 종종 점프업을 하지만 매일 점프업을 한다는 것은 주식이 매일 상한가를 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그런 일은 인생에 없다. 자리로 돌아와 밥벌이 넋두리인 "다들 엔간히 해야지"라는 말을 했다. 보고서의 전제조건을 고려하면 다시 쓴다면 며칠을 다시 작업해야 한다. 발표일은 바로 다음 날이고 그때가 대략 오후 4시 정도였으니 선택이 필요했다.


 그때 내가 생각하고도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해보기로 했다. 그림과 차트는 그대로 유지하고, 설명만 본부장의 의견대로 변경했다. 관점을 바꾸어 해석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파트장들이 경을 칠지 어떨지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우려와 걱정의 말들이 많았다. 누굴 바보로 아는 것인지 내가 바보인지에 대한 의구심들이 많았다.


 임원의 관점을 가능성의 범위에 넣긴 했지만, 초안의 관점을 또 다른 관점의 범위에 넣었다. 계획과 초과 계획을 세우듯 계획에 범위를 넣어 minimum과 maximum의 관점을 같이 담아 보기로 했다. 생각이 정리되니 글씨만 작성해도 되기에 퇴근 시간 전에 마무리했다. 본부장이 승인하고 퇴근한 것을 보면 파트장들도 말이 많았다. 내 의도와 다르지만 본부장의 다른 생각과 실무 팀장의 생각을 더해서 정리한 셈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조삼모사와 같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삼모사는 순서가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부장을 기망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차트와 그림에 대한 해석은 실행자의 관점, 조직 관리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하나만 담았고, 다음에 두 가지를 함께 담았다. 기획단계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사건, 어떤 사물, 어떤 현상을 보며 최소한 3가지 이상으로 해석해보는 습관은 기획, 협상, 보고에서 유연함을 준다. 그러나 방향이 너무 중구 남방이면 경박해진다. 


 계획은 절차의 구성이기 때문에 완료를 목표로 한다. 점검하고 확인할 내용, 꼭 해야 할 실행으로 구성된다. 기획의 결과 예측은 마이너스부터 ~ 무한대까지 폭이 넓다. 따라서 플랜 B가 필요하고, 컨틴전시 플랜도 필요하다. 미래는 예측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반면 계획은 전체를 포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 사항과 변경 가능한 범위의 것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점검이 없으면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며, 마지못해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기획서는 기획이 망했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고, 어떤 기준점에 따라 포기할 조건도 사전에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일을 출구전략이라고 한다. 당연히 기획의 결과가 좋을 때는 발전시킬 확장 전략까지 검토하면 금상첨화다. 자리에서 이런 일을 하다 문득 나를 상상할 때가 있다. 대견하기보단 막 웃음이 날 때가 많다. 대체로 대강 철저히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기획과 계획을 확정하는 과정은 해석의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각 프로세스에 있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은 힘들지만 다양한 관점을 청취하는 기회다. 아무리 좋은 보고서도 반려 세 번이면 강판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기획을 한다면 하나의 대상을 보고 몇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러한 해석은 타인의 다양한 생각을 유추하고 대응하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된다.


 계획은 성공과 실패의 연속 구조가 되고, 기획은 내 생각, 네 생각, 네가 하지 못할 법한 엉뚱하고 창조적인 생각, 세상의 생각, 전문가의 생각, 전혀 다른 분야로부터 얻은 영감 등 다양한 해석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하나의 목표와 논리로 묶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정리하여, 어떻게 타인의 이성적 논리회로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 욕망을 깨닫게 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디자인하는 일이 기획이다. 기승전결, 서론/본론/결론, 스토리텔링, 인지공학, UX, 사업기획, 사업계획, 광고, 영화, 소설이라는 다양한 장르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본부장이 되어 시장 전략 계획을 만들어 보라고 팀장들에게 지시했다. 두 명은 제품과 관련된 전략이고, 한 명은 시장과 관련된 통합 전략이었다. 당연히 일이 생기면 입도 나온다. 밥벌이 일터에서 시킨 사람 씹는 맛을 즐기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상황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상황을 벗어났다고 후배 동료들의 권리는 어느 정도도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보고서의 방향성은 특별한 미팅보다 그때그때 standing meeting을 통해 확인한다.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하는 것이 편하다. 너무 자세하게 말하면 결국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도 나한테 시킬 궁리만 한다. 팀장들이 보고서를 잘 써야 내가 편안한 모드(다른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에 돌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은 한다. 무엇을 알려주기 위해서 더 높은 과정을 넣는 선행도 한다. 숙련된 팀장들이 이런 일을 한 두 번 해봤겠는가? 컴퓨터 폴더에 켜켜이 쌓아 둔 유사 보고서 tamplate로 활용하여 쓱싹쓱싹 하던 대로 금방 쓴다. 나도 많이 해봤으니 이해한다. 보고서를 받고 천천히 읽으며 빨간펜 선생처럼 밑줄을 많이 긋고, 설명도 달아서 돌려줬다. 우리 집 마나님도 나한테 안 그러는데, 팀장들이 바가지를 긁기 시작한다.


 "알아는 듣겠는데 아주 막막하다"라는 말에, "팀장님은 먹여 살릴 팀원들이 늘어나서 이 참에 조금 같이 해봅시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페이지를 줄여가면 머리가 터질 거 같은데"라고 하늘에다 투덜대는 녀석에겐 "원래 시간이 없어서 대충 막 길게 쓴다고 처칠 님이 그러시더라,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정리해야 짧아진다"라는 말에 뭘 사라는 말만 우렁차게 되돌아왔다.


 3장짜리 보고서를 한 시간에 쓴다면 이것을 한 장으로 줄이려면 3시간은 걸린다. 그림으로 캡처해서 줄이면 간단하고, 폰트를 줄여도 쉽다. 뒷일은 미래의 내가 한다. 그런 일이 의미 있는가? 시간이 단축되어 1시간으로 줄인다면 전문가 수준이다. 타인의 생각을 디자인하는 전문가가 아닐까? 적절한 단어를 찾아서 핵심을 정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전 공지로 각 팀의 사업계획에 맞춰 구체적인 전략을 점검하는 의미였다. 당연히 재미가 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사업계획 발표전까지 외우지 말고 의도를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한 번 제대로 도와줘야 여러 번 손이 안 가기 때문이다. 몸에 붙으면 닳지 않는 실력이 된다. 그 팀장이 팀원에게 같은 방법을 시전 하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을 때가 있다.


 시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사업기획이자 사업에 대한 정의다. 자신이 하는 일 중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의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가다듬을 것이 많다. 아무 생각 없이 하면 막 하기 쉬운 게 사업 정의다. 사업을 정의해야 그 분야가 사업성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시장 환경, 내부 환경, 고객 상황을 점검해야 가능성을 알 수 있다. 액자에 걸린 사명처럼 경영분야의 철학적 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석 툴을 이용하는 이유는 과거에 해 본 사람들이 권장하는 체크 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사업은 목표를 세운다. 목표는 아주 드라이하게 숫자로 잡는 경향이 있다. 숫자는 사업의 미래 결과일 뿐이다. 이 사업을 통해서 고객에게 전달할 가치와 그 결과로 발생하는 숫자를 간편하게 숫자로 적는 것이지 숫자만 적는 것이 아니다. 회계/재무가 기업의 언어로 숫자 속에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당연히 사업의 숫자가 기업의 언어가 된다. 숫자 속의 다양한 관점과 의미를 알아가는 것은 밥벌이 과정의 핵심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는 방법론적이 접근이다. 전략은 목표를 항상 유념하고 숙지해야 한다. 잘못하면 국어시간이라 쓰고, 영어교과서를 펴는 것과 같다. A란 목표를 회피하기 위해서 B라는 말을 꺼낼 목적이 아니라면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이 쓴 책이었는데 어뢰가 오며, 배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맞을 면적이 가장 좁다고 했다. 배가 날아오르면 딱 좋을 텐데라는 생각도 하지만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기세는 중요하다. 그래야 더 배울 수 있다. 죽을 수 있는 일에 맞서라는 말은 아니다. 한 번 피하는 것은 쉬우나 습관이 된다.


 컨설턴트들이 자문을 할 때가 있다. 그들은 교과서적인 말을 많이 한다. 일반적으로 검증된 틀을 이야기해야 실책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컨설턴트의 기획과 계획, 제안이 답답할 때가 있다. 현실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투입 대비 효과가 미미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면에서 컨설팅은 우리가 하는 일이 잘 되는가에 대한 검증보다, 우리가 한 생각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검증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렴 내일을 내가 생각하고 해야지.


 한 번은 컨설턴트와 논쟁을 하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이론의 전제조건과 우리 회사 현실이 얼마나 유사한지에 대해 물어봤다. 묻는 말에 답 대신 장황한 일반적인 이야기가 계속된다. 다시 주장이 상반되는 일이 있어서 "경험이 많은 신 것 같은데 이쪽 산업  일을 몇 년 정도 해보셨나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컨설턴트의 지식과 케이스가 실무적인 깨달음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코치가 아무리 잘 가리켜도 실전은 선수의 몫이다. 운동선수 출신인데 내가 하는 종목은 해 본 적이 없다면 이처럼 곤란한 일도 없다.


 구체적인 실행전략이 시간에 맞춰서 정리되면 보고서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 기준대로 하나 안 하나 많은 사람들이 그 종이 들고 못살게 군다. 프로세스다. 프로세스의 정립은 시작하는 단계다. 이후부터는 기획과 계획의 생각에 기초해서 PDCA(Plan-Do-Check-Action)의 무한반복이다. 실행 데이터를 만드는 일이다. 논문으로 보면 가설 검증이다. 차이점은 실전이기 때문에 상황이 변하고, 간사한 나의 마음도, 너의 마음도 변하기 때문에 기준을 잘 기억해야 하는 점이다. 중간중간 Feedback은 필요할 때 안 오고 꼭 불편한 시점에 온다. 하지만 잘 주워 담아야 좋은 결과가 만들어진다. 더불어 미래의 기획, 계획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초안은 어떻게 할까? 쓰다만 보고서를 지울 수 있고, 폴더 구석 어디에 뒀는지 모르게 남겨둘 때도 있다. 어떤 기획과 계획의 초안이라도 잘 분류해서 저장해 두면 좋다. 이런 초안은 엄청 큰 메모다. 이 정리의 노력이 나중에 빛을 볼 때가 많다. 


 완료된 보고서가 PPT라면 한 장에 2페이지씩 인쇄를 해서 펼쳐놓고 보는 것이 좋다. 흐름과 맥락을 한 번 훑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보고서를 고객의 입장에서 읽고, 밥벌이 동료의 입장을 생각하며 읽는 것도 중요하다. 이 과정이 타인의 생각을 디자인하는 마무리 과정이다. 마무리를 통해 누군가를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결과를 바라기 때문이다. 마인드 맵이 아니더라도 항상 종이에 연필 들고 내 생각의 흐름을 그려보면 재미있다. 산만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고칠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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