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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May 16. 2023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혼밥이 좋더라..

평일 낮에 청계천을 간 적이 있다.

점심시간쯤, 회사의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와 청계천을 걷고 있었다.

햇빛은 밝고 따사로웠고 그들의 손에는 커피 한잔씩이 들려진 채로..

내가 학교에서 볼 수 없는 밝은 표정으로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산책을 하던

그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회사원들이 부러운 것 중 하나가 점심 먹고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 그것이다.


나의 점심시간이란,,, 잠시 눈물 좀 닦고...

도떼기 같은 시장통 속에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허겁지겁 먹고 나서

편식하는 아이  반찬 더 먹어봐라 잔소리해 주고

투닥투닥 싸우는 애들,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 눈 흘겨가며

지도해야 하는 시간..

무슨 일이 생기면 담임 책임이기 때문에 점심 식사조차도 맘을 놓을 수 없다.

점심시간도 근무의 연장선이란 말이다. 대신 퇴근시간이 일반공무원보다 1시간 빠르지만

밥을 밥답게 먹고 싶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퇴근시간과 맞바꾸고 싶지는 않다.


올해는 담임을 맡지 않아서

급식 시간에 반 아이들 없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이들 떠드는 소리 때문에 우아한 식사는 진작에 글렀지만 잔소리 안 하고 내 식사에게 집중할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


담임을 맡지 않은 몇몇 동료교사들과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해도 좋지만

나는 올해 철저히 혼자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식사시간도 일부러 급식 시간이 다 끝나는 쯤에 가서 구석자리를 찾아 혼자 밥을 먹는다.

한마디로 너무 좋다.

20대에는 혼자 밥 먹는 것이 무척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 굶으면 굶었지 혼밥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혼밥이 감사한 나이다..


원래 내향형이지만 동료들과 자잘한 수다를 좋아하고

새로 전입 온 교사들에게 이거 저것 알려주는 걸 좋아하는데

올해는 철저히 내 동굴 속에 숨기로 했다.

너무나 많은 자극과 업무에 노출된

나의 뇌가 휴식이라는 구조요청을 해 온 것이니.

가까운 사람들과의 작은 소통조차 내 기를 빨아대는 느낌이 들었고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내 책임을 다 하는 선에서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혼자 수업교실에서 연수 듣고, 스트레칭도 하고 글도 쓰고, 음악 듣고..

수행의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뜨뜻미지근하던 개인 모임도 정리를 했다.

맨날 옛날 추억팔이에 젖어 있는 초등동창회도 슬쩍 발을 뺐다.

사실 친구도 대부분 동료교사라서 가끔 방학 때나 만나곤 하는데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모임도 내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하기엔

만남의 의지가 생기질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지만

그것도 20-30대 이야기인 것 같다.

20-30에 왕성한 사회적 활동을 하고 난 후 휴식기에 접어드는 시기인지도 모르지만

40대에 들어서니 만사가 귀찮은 귀차니즘에 혼자가 좋은 혼자병이 생겨나는 걸 보면.


한 때는 배우는 걸 좋아해서 이거 저것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아이들 친구 엄마들과 모여서 육아수다를 떨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혼자이고 싶다...라는 강한 열망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육아에 기를 뺏기고

직장 생활에 기를 뺏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열망은 현재진행중이다.

드라마에선가 김혜자 엄마가 희생만 하다가

오피스텔 얻어서 혼자 나가 사는 게 소원이라고 하는 장면이 어찌나 이해되던지..

왜 다들 결국엔 자연을 찾아 정착하는지도 백 번 이해한다.

사람에게선 빼앗긴 기는 자연에서 치유됨을 아는 나이가 다가온다.


내가 남자라면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오지 산속은 아니더라도 산이나 바닷가 마을에 작은 오두막 집을 사서

텃밭을 일구며 사는 삶을 빨리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혈기왕성한 시절을 보낸 후

철저히 자연에서 혼자가 된 삶을 택 걸 보면 결국 인간은 언젠간

혼자만의 시간이 운명처럼 필요할 때가  다가오는 듯하다.

나는 아직 인적 드문 시골에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에

언제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지만...


나이 들수록

낯선 사람을 마주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이미 알던 사람도 내 기를 빨아가는데

낯선 사람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이란

그 몇 배의 기가 필요할 터이니..

사람들을 만나서 에너지를 얻는 부류가 있으나

나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음으로 에너지가 생기는 부류.


은퇴 후  나의 삶이 뻔히 그려진다.

아마도 집 밖을 나가는 날이 손에 꼽게 적을 것이고

운동 삼아 외출을 하더라도 모자 푹 눌러쓰고

산이나 들로 바다로 자연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전혀 외롭지 않고

은근 기대되고 설렌다.

내가  원하던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삶과

연결된 모습이랄까


올해는 철저히 혼밥을 즐기려 하고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려 한다.

이러한 수행의 시간

또다시 시끌벅적한 나의 일터로

돌아갈 마음의 불쏘시개가  될 테니..

이 혼밥의 시간도 내년에 마법처럼 사라질 것이다.

다시 아이들에게 반찬 더 먹어라 잔소리를 해야 하고

떠드는 아이들 싸우는 아이들 눈 흘기며

밥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시간들이 다시 다가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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