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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an 23. 2018

"행복해"라고 말하면서도 웃고 있지 않았다





책방에서 일하고, 새로운 책을 쓰기 시작하게 되면서 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나 행복해.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벌고, 내 작업도 하잖아.”






어떨 때는 누군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을 하고, 심지어 두 번 세 번 반복하기도 한다. 누군가 “고민 없어요?” 물어보면 “전 고민 없는데요? 지금 삶에 만족하거든요.”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나 잘 살고 있어요! 부럽죠?’를 떠들어댄다.







한가로운 목요일 밤, 심리상담사로 일하는 손님과 새로운 워크숍 진행 건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어떤 검사로 진행할지, 날짜는 언제가 좋을지, 비용은 얼마가 적당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먼저 해보실래요?”라고 묻는 말에 검사를 받게 됐다. 흰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건네지는 질문에 대답했다.






“고민은 없어요?”

“고민이 없어요. 지금 삶의 만족도는 최고거든요.”

“정말요? 1부터 10까지 숫자가 있으면 몇이에요?”

“7, 8 정도요. 전 행복해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벌고, 글 쓰는 작업 도 하고 있고요. 그 어느 때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요.”






손님은 고개를 몇 번 끄덕였고, 그림을 한 번 더 보고 말을 건넸다.






“본인이 진짜 행복하고, 삶의 만족도가 높은 분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걸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분들은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얼굴이 벌게졌다. ‘자기합리화’라는 말이 툭 걸렸다. ‘자기합리화 라… 자기합리화…’ 몇 번을 되뇌었다. 그리고 토해내듯 말했다. 퇴사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자신 있게 시작했던 일들이 기대에 못 미쳤던 것, 앞서가는 이들 틈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에 작아졌던 것, 그 상황에서 무심코 내뱉어진 가까운 이들의 뾰족한 말에 위축됐던 것까지 모두 털어놨다.






낮아진 자존감을 감추기 위해 책을 파는 일과 책을 쓰는 일로 나를 포장했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나 행복해.”라고 말하면 서도 나는 웃고 있지 않았다.

“요즘 가장 큰 재미가 뭐예요?” 질문을 받고 한참 동안 생각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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