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국
내가 살고 있는 뉴몰든에서 학교가 있는 킹스크로스까지 편도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통학하였다. 영국의 열차는 연착되는 경우가 많다. 통학 시간을 타이트하게 잡고 출발했다가는 수업시간에 늦을 수 가있다. 한 번은 학교를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로로 사람이 뛰어들어서 연착이 된다고 전광판에 표시되었다. 그날이 내가 처음으로 영국에서 버스를 탄 날이다. 처음 타는 대다가 여러 번 갈아 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구글맵에 갈아타 곳이 표시되어 있어도 막상 찾기는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도착했지만 수업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어학연수를 하지 않고 바로 학과 수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영어를 거이 내뱉을 수가 없었다. 반 친구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려고 손들려고 하면 피해 다니기도 했다. 아이엘츠 공부 할 때는 듣기도 말하기도 어느 정도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상황에서 외국인이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들으니 도무지 무슨 날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국은 다인종 국가이고 내가 다니는 학교도 인터내셔널 대학이라서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몰려든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발음도 각양각색이다. 처음 듣는 영어 발음에 속도까지 빨리 말하면 나에게는 지구상에서 처음 듣는 외계어나 다름이 없다. 특히 영국인 중에 완전 시골에서 온 아이의 발음은 보통 영국인의 발음에서 한 번 더 꼬아서 들리는 느낌이라 알아듣기가 더욱 힘들다.
교수님께 내가 그동안 한 작업을 설명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하지만 영어로 표현을 잘 못하는 대신 그림과 실제 작업물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잘 표현하려고 했다. 그리고 설명할 때 필요한 영어 단어를 찾고 문장을 만들어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 입에 익을 때까지 연습하였다. 아이엘츠를 공부할 때 라이팅으로 쓰는 연습을 하고 스피킹 연습으로 라이팅으로 쓴 것을 계속 반복해서 읽는 연습과 같았다. 하다 보면 쓴 것을 보지 않아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온다. 래퍼들이 프리스타일로 랩을 내뱉는 것이 이해가 갔다. 그렇게 내 작업을 설명하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미션을 완수하듯 해나갔다.
1년 과정인 파운데이션 코스가 끝나면 파운데이션 과정에서 만든 포트폴리오로 BA(bachelor's degree) 코스에 지원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4년제 대학과 같은 학위로 인정되지만 3년 과정이다. BA과정 입학을 위해서는 더 높은 영어 점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시 영어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토록 원하던 패션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영어 점수 때문에 대학에 못 들어갈 생각을 하니 아찔 했다. 그때부터 수업시작 몇 시간 전에 도서관에 도착해서 아이엘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열차의 연착에 대비해 지각을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그리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레스토랑, 카페에 가서 직접 주문도 해보고, 영국은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라서 날마다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영어에 나를 최대한 노출시키려 했다. 나중에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 기회가 될 때마다 약속을 잡아 영어로 말하고 듣는 연습을 해나갔다.
파운데이션 코스는 킹스크로스와 아치웨이 두 건물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킹스크로스는 완전 신식 건물이지만 아치웨이는 완전 오래된 건물이었다. 알렉산더 맥퀸이 다녔던 건물과 같은 건물은 아니지만 학교를 다니다 보니 정이 들었다. 특히 킹스크로스에서 보냈던 시간이 아직도 가끔씩 떠오르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다른 학과의 작업을 훤히 볼 수 있게 설계된 학교 내부, 교수님은 다른 학과 작업들도 모든 것이 영감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학교 앞 분수와 광장, 햇빛이 좋은 날 잔디밭에서 마시던 맥주, 카날의 배를 개조해 만든 북숍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등 이 아직도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