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학선 Jun 29. 2019

완벽한 힐링을 준 천혜의 자연  몬세라트 순례길

스페인 여행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호텔에서 조식을 마친 후 걸어서 10분 거리인 에스파냐 광장으로 걸어갔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에스파냐 광장 옆에 있는 마법의 분수 쇼를 보고 호텔까지 걸어왔던 기억에 가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지하철역 바로 옆에 FGC 플라사 데 에스파냐역으로 내려가 만레사(Manresa)행 R5번 노선 열차표를 발권하였는데 몬세라트 역에서 수도원까지 가는 왕복 케이블카 비용까지 포함된 통합승차권(1인당 22유로)을 구입하였다.


출발을 기다리는 열차 안에는 이미 국적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객석에 앉으면서 여행의 설렘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앞에 앉은 미모의 연인은 미처 자리에 앉지 못한 남자 친구에게 말없이 미소를 보내며 눈으로 무언가를 계속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특별한 이야기보다는 그냥 남자 친구와 눈을 맞추칠때마다 엷은 미소를 보는 것이 아닌 가 생각된다. 남자 친구가 좌석이 없이 서서 가는 이유는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여인에게 좌석을 양보한 까닭이다. 참 좋아 보이는 외국 젊은이들이다. 아내와 나는 아침인데도 목이 말라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사이에 열차는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싱그러운 아침 열차를 타고 밖을 쳐다보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느끼면서 여행 8일 차의 고단함도 동시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매일 6시에 일어나 저녁 12시에 취침하면서 강행군한 지난 여정에 힘이 부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내 아내도 엄청나게 힘들었을 텐데 말없이 모든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오늘은 관광지 탐방이 아닌 천혜의 공기 맑고 산세가 좋은 몬세라트에 가서 힐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가 탄 열차는 몬세라트로 가는 역이 2개가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려면 아에리 데 몬세라트 역(Aeri de Montserrat), 산악열차를 타려면 모니스트롤 데 몬세라트 역(Monistol de Montserrat)에 내려야 한다. 나는 휴대폰으로 찍은 열차 노선표를 보면서 아에리 데 몬세라트 역을 놓치지 않으려고 내심 신경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연결통로를 통해 케이블카역으로 가서 8 각형의 노란색 케이블카를 타고 5분 만에 수도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소 비용이 비싼 케이블카는 20분 정도 걸리는 산악열차보다 훨씬 빨라서 좋았다. 우리 부부는 바로 수도원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아침 미사 중이었다.

수도원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미사를 드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경건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나는 12시 정각에 세계 최초 소년합창단(Escolania)의 성가를 듣고 싶었지만 이 수도원에서 가장 유명한 검은 성모상을 볼 수 있는 시간도 12시라서 할 수 없이 성당 밖으로 나와서 검은 성모상이 있는 예배당 입장 line으로 갔다.



현지 카탈루냐 사람들도 무언가 소원을 이루고 싶으면 이곳 검은 성모상에게 소원을 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소 특이한 모습을 보이는 인도 사람, 중국사람들이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아들, 손자, 며느리를 포함하여 3대 가족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불교 또는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줄을 서서 검은 성모상에 소원을 빌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냥 호기심인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또 7-8명의 중국사람들이 옷차림이나 행동으로 봐서 중국이 아닌 외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로 보이는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오랜 시간 줄을 서 있는 동안에도 피리를 연주하여 서로 성가를 부르는 모습이 매우 서구적인 인상을 주어서 흥미로웠다. 우리 부부는 말없이 1시간 30분 정도 줄을 서 있다가 입장할 수 있었다. 검은 성모상은 당시 어린 목동들에 의해서 수도원 위쪽 산 타고 바 동굴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1881년 교황 레오 13세가 카탈루냐의 수호 성모로 인정받았고 한다. 검은 성모상을 보려고 하면 5개 조금 한 예배당과 3개의 방을 지나서야 볼 수 있다. 드디어 검은 성모상을 알현할 수 있는 차례가 되었다. 나는 검은 성모상이 쥐고 있는 둥근 공을 만지며 기도를 올렸다. “성모 마리아여 오늘날까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 있는 날까지 내 가족을 위해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하고 짧은 소원을 빌었다.

우리 부부는 수도원 앞 광장에서 운이 좋게 카탈루냐 민속춤 축제를 구경할 수 있었다.  프랑코 독재정권에도 굴하지 않았던 카탈루냐 민족의 강인한 정신이 깃든 민속춤으로 우리나라의 강강술래 같은 춤 같았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지역별로 색다른 복장을 갖추고 힘차게 추는 모습볼 수 있었는데  아쉽지만  검은 성모상이 발현된 산 타코 바 길을 트레킹 하려고 수도원 옆에 있는 푸니쿨라 역으로 향했다.


산 조안 상부 푸니쿨라 역에 도착한 후 나는 잠시 힘이 들었는지 아내에게 ‘저 앞에 가서 산 타코 바로 가는 길이 어딘지 보고 올래요’하고 부탁했다. 잠시 앉아서 하늘을 보니 참으로 평온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문득 아내도 힘드는데 하고... 나는 다시 뻐근한 몸을 이끌고 안내판으로 가서 아내와 함께 가는 길을 알아보고 역 전망대로 가서 경치를 구경하고 나서 산타 코바 길로 가기로 했

산 조안 상부 푸니쿨라 역

전망대에서 본 몬세라트... 참으로 기이하고 독특한 바위산이다. 산 높이가 1236미터, 6만 개의 봉우리, 5천 전 지중해 속에 있었다고 한다. 여러 관광안내책에서는 가우디가 이 몬세라트 산을 보고 그 유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의 영감을 얻었다고 하고 여기 와서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그런 느낌보다는 수많은 형상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금강산 같은 느낌이었다.

“뭐~ 해석이야 각자 자유지만 내가 본 몬세라트는 아무튼 우리의 아름다운 금강산 같았다”.

우리 부부는 전망대 위에서 산타 코바와 반대로 가는 길을 발견했는데... 어린아이들의 소리가 들려 나는 아내에게 “저 쪽 길로 한번 가볼까?”하고 말하니 아내도 흔쾌히 가자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으며 몬세라트 산의 바위들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당초 의도했던 산 타코 바 가는 길이 내리막길이라면 우리는 점점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왕복 3시간 이상이 걸리는 몬세라트의 최고봉 산 제로니(Sant Jeroni)까지 가는 코스를 올라 탄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여행안내책자에 ‘누군가는 이 꼭대기에서 천국을 보았다’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아내는 ‘우리도 한번 천국을 봅시다’하고 오던 길을 되돌리지 않고 계속 앞으로 산꼭대기로 향했다. 가는 길은 평탄하고 곳곳에 아름다운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간간이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점점 다리에 힘이 든다. “우리가 스페인까지 와서 이렇게 등산하다니...” 하고... 이제 나의 몸 상태는 너덜너덜한 느낌이다. 산꼭대기는 1236미터로 쉽지 않았다. 특히 내 아내의 신발은 구두도 아니고 운동화도 아닌 얇은 덧신 같은 신발로 바위산을 오르고 있었다. 정상까지 150미터 정도 남은 거리는 아주 깔딱 고개 수준이었다. 어느덧 우리 부부는 정상위에 섰다.

우리는 이제 천국에 온 것인가? 내 아내의 표정은 이미 천국에 온 것 마냥 엄청 즐거운 모습이다. 눈 앞에 펼쳐진 끝없는 평야... 저 멀리 프랑스와 경계에 있는 피레네 산맥이 보일 정도로 날씨도 무척 맑았다.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니...” 아내와 나는 생각지 않았던 몬세라트의 꼭대기에 서서 이렇게 힐링을 하다니... 아내는 오늘의 완벽한 행복을 마음속 깊이 담고 있는 것 같았다.

‘톱으로 자른 산’이라 뜻을 가진 몬세라트! 그러나 실제로 날카롭지 않다. 오히려 울퉁 불통하지만 뭉툭하니 둥글둥글 정감이 있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되돌아오는 열차의 창밖을 보니 멀리서 몬세라트는 나에게 다정다감한 손짓을 보낸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몬세라트 #산제로니 #몬세라트수도원 #검은성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