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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Oct 16. 2021

시골 노인 성수씨의 루틴

시골 노인 성수씨에게는 몇 가지  루틴(Routine)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요 같은 시간에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한다.  시골 노인에게는 이 정도야 틀에 박힌 일상이겠지만 성수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것이다. 누군가로 인해 일상이 깨지면 참지 못한다. 화를 내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 같이 사는 사람, 길심씨는 무척이나 피곤하다. 저녁이면 드라마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밤 9시도 되기 전에 자야 한다고 불을 꺼버리기 때문이다. 


성수씨는 새벽 4~5시경이면  일어난다. 그 시간에 T.V도 같이 일어난다. 여름과 겨울, 해 뜨는 시간에 따라 그 시간은 한 시간 정도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 일상에는 변함이 없다. 일어나 한 시간 정도 T.V를 시청한 다음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이 시간만큼은 아버지에겐 노동이 아니라 운동의 시간이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는 법은 없다. 이것이 성수씨의 아침 루틴이다.


어스름 새벽공기를 가르며 우리 마을, 옆 마을, 아래 마을 들녘을 한 바퀴 돌고 때로는 동네 뒤로 나 있는 월출산 기친묏길을 돈다. 자전거를 타다가 언덕길이 나오면  끌고, 타고를 반복한다. 나갈 때는 나름 복장도 정비한다. 따로 운동복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목장갑을 끼고 바짓단은 양말단에 야무지게 찔러 넣는다. 그리고 모자를 착용한다. 신발은 새 신발은 아끼고 딸, 사위, 손주들이 신다가 낡아서 시골에 오면 신으려고 갖다 둔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는다. 성수씨는 한 시간 반가량의 운동이 끝나고 시계도 없지만 거의 정확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오후 해 질 무렵에도 성수씨의 자전거는 어김없이 또 마당을 나간다. 아침 루틴과 더불어 일몰 루틴이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자전거 뒷좌석에는 기다란 나뭇가지나 공사장에서 버려진 나무토막이 실려있다. 길심씨네는 새 집을 지으면서 구들장도 놓고 기름보일러도 놓았다. 이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기름값 나가는 것이 아까워 거의 늦가을부터는 굴뚝에 연기가 난다. 예전 같지 않게 나뭇감이 지천이라지만 늘 땔감에서 못 놓여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운동이라고 친다면 꼭 그리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여기저기 장작이 쌓여 있어 집안 꼴이 말씀이 아니긴 하지만. 길심씨네는 성수씨 덕분에 한 일 년은 너끈히 땔 양의 장작이 쌓여 있다



운동을 나갔다 늘 땔감을 자전거에 싣고 들어오는 것도 어쩌면 루틴이라면 루틴이다. 나는 서울에서 아침에 일어나 매일 종이신문을 보는 것을 모닝 루틴을 만들려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늦게 일어나면 신문을 펼치지 못하고 출근을 했더랬다. 나를 위해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을 쓰는 시간도 들쭉날쭉이다. 좋은 루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존경스럽다. 아버지는 시골에 살면서도 따로 하루 두 번 노동이 아닌 운동, 좋은 루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직 연세에 비해 건재하다. 성수씨의 루틴 DNA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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