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작가©기이해 | 오늘의 소설 2
당신의 꽃 -1. 산책 << 오늘의 소설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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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이스가 아펠 부인의 집을 떠난 지 어느덧 한 해가 지났다.
처음에는 거의 몇 개월 단위로 다른 집으로 또 다른 집으로 몇 번이나 이사를 가야만 했다. 버릴 수도 늘 지고 다닐 수도 없는 그 최소한의 짐들을 가지고 늘 혼자서 이사를 했다. 사실 이사할 때마다 딱히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칼라이스는 늘 혼자였으니까. 한 번에 갈 수 없으면 지하철과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이사하는 바람에 이사는 늘 일주일씩 걸렸다. 어느 날은 무척 어지러워 샤워를 하다 힘이 없어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날도 있었다.
지금은 다행히 적어도 1년 정도 이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머물고 있어서 당분간은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이 푸르고 날씨가 화창해진 어느 봄날 칼라이스는 자전거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바덴바덴의 도시 곳곳에 놓여있는 하늘색 공유 자전거를 항상 타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기억이 까마득했지만 오늘은 꼭 자전거를 타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늘 걷던 산책길이 아닌 자전거 도로를 열심히 달리며 그동안 칼라이스는 자신이 겪어낸 수많은 경험들이 머리속에 스쳤다. 그동안 어지러웠던 그녀의 삶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듯 봄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동안 끼니를 잘 챙겨 먹지 못해서 어지럽기도 했지만 사실은 빈혈 때문이었다는 것도 최근 병원에서 알게 되었다. 이제 원인도 알았고 어지럼증이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자전거를 타는 것쯤이야'라고 생각했다.
봄이 되니 자전거 도로 길가에 꽃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난다. 꽃들을 보니 문뜩 1년 전 아펠 부인의 강아지 세미와 산책길에 본 여러 개의 꽃들이 기억났다. 키가 큰 카라와 들꽃이 들려준 그 이야기들 말이다.
칼라이스는 카라의 삶을 무척 부러워했음에도 그녀는 자신이 절대 카라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늘 그녀를 응원해주고 지지해 주는 따뜻하고 자상한 든든한 부모도 없었고, 당연히 물려받을 재산도, 특출 나게 빼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카라처럼 멋지고 화려한 삶을 살지 못한 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래도 카라는 여전히 키도 크고 예쁘잖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좁은 길로 들어서니 자전거 도로 왼쪽에 피어난 들꽃과 풀들이 보인다. 그 식물들 사이를 팔랑팔랑 오가는 흰색 배추나비도 보이기 시작했다. 자전거로 재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들풀과 들꽃이 칼라이스에게 말을 걸었다.
칼라이스!
응? 누가 날 부르고 있는 거지?
칼라이스는 그들의 말을 듣고 달리던 자전거를 갑자기 멈춰 세웠다.
칼라이스! 이쪽이야. 지금 네가 생각하는 거 말이야, 우리가 답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칼라이스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들풀과 들꽃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듣고 싶었다.
그거 알아? 네가 부러워하는 카라처럼 관상용으로 크고 아름다운 꽃은 우리 같은 작은 풀이나 작은 꽃에 비해 밟힐 위험은 없겠지만 그런 꽃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꽃꽂이에 쓰이기도 해. 사람들이 관상용으로 보기 위해 꺾어간다고.
들풀이 말했다. 이어서 옆에 있던 들꽃이 말한다.
맞아! 예쁘고 화려한 꽃들은 보통 돈을 주고 사고 팔지만 우리 같이 이런 들풀이나 들꽃들은 돈을 주고 사고 팔지는 않아. 어디에나 있고 너무 흔하니까.
그런데 말이야, 칼라이스! 이 세상에는 꽃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못 받고 못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 그래서 우리 같은 들꽃이 늘 그 자리에 있으면 돈을 주고 사고팔지 않아도 누구나 우리를 볼 수 있어. 물론 우리는 큰 꽃들에 비해 잘 짓밟힐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사라져도 나의 옆엔 나와 같은 또 다른 들풀과 들꽃이 존재해. 우리는 너를 위해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우리는 언제든 너에게 이 아름다운 색을 줄 수 있고 작지만 은은한 향기도 줄 수 있어.
칼라이스가 그들의 말을 이해한 순간 드디어 그녀가 웃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언제나 어디서나 난 너희들을 볼 수 있어. 작지만 어여쁘고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늘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존재 말이야.
이제 알았어! 너는 나의 선물이었구나!!
칼라이스가 바라보는 세상이 온통 봄의 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이 칼라이스가 자전거를 타며 본 세상이었다.
당신의 꽃 마침.
브런치작가©기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