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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꽃 - 1. 산책 편 일러스트 설명을 읽기 전 [오늘의 소설] 당신의 꽃 - 1. 산책을 먼저 읽어보세요. 글 읽어보기
당신의 꽃 - 1. 산책을 발행하고 일주일 뒤 아직 한글을 읽을 수 없는 아이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었다. 이 그림 안에 들어있는 스토리는 배제하고 순수하게 그림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이 사람은 왜 색을 입히지 않았어요?
아직 글을 읽을 수 없는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한 것이라면 그림을 그린 의도가 잘 전달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단지 순수하게 그림으로만 평가받고 싶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숨은 의미들을 아주 잘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정사각형 그림에는 사실은 많은 의미들이 숨겨져 있다. 당신의 꽃 - 산책에 등장하는 각각의 꽃이 가지는 의미와 주인공인 칼라이스가 색상이 없는 이유를 글의 끝자락에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소설] 당신의 꽃 - 1. 산책에 등장하는 칼라이스는 아펠 부인의 강아지인 세미와 산책을 하며 여러 종류의 꽃 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산책을 시작하기 전 소설 속 칼라이스가 제일 먼저 만났던 꽃은 해바라기이다. 일러스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해바라기는 아펠 부인을 의미한다. 현관문 앞에 해바라기 그림이 있으면 좋은 기운이 집으로 흘러 들어와 부를 가져다준다는 속설이 있다. 아펠 부인은 본인 소유의 3층 집 자택이 있고 그 집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외동딸로 자라온 그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모든 유산을 상속받았다.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여 이혼을 했지만 출가한 자녀들과 잘 지내고 여전히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소설 속 아펠 부인은 해바라기와 강아지 세미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칼라이스와 세미가 함께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앞에서 멈춰 선 꽃의 이름은 만병초(Yellow-flower rosebay: 진달래과)이다. 이름 그대로 만 가지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그 꽃이다. 보통 만병초는 한 꽃나무에 같은 색상의 꽃들만 무리를 지어 송이송이 피어난다.
일러스트 안에 강아지 세미의 시선은 만병초의 꽃 무리 중 색상이 다른 곳에 멈춰 서서 신기한 것을 발견한 듯 보인다. 노란 꽃의 무리가 지어진 만병초의 하단 부분에 유독 한 부분만 분홍색 꽃이 피어났다.
수많은 해외 경험으로 필자에게는 세계 곳곳에 소중한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한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커밍아웃을 했다. 늘 필자에게 합리적인 생각과 조언을 해 주던 소중한 친구라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사실 끝까지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살아오면서 유년 시절부터 겪었던 자신의 정체성 혼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친구의 선택을 존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 특별한 만병초를 보며 문득 그 친구가 떠올랐다. 이 꽃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소수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장애인, 성 소수자, 그 외 세상의 편견으로 부터 하루 하루를 버티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노란 꽃 무리 중에서 오직 하나의 꽃 하나만 분홍색을 띠며 살아가야 하는 꽃을 보면서 그 친구라고 처음부터 다른 색을 띠며 살고 싶었을까. 한 꽃나무에서 났어도 태어날 때부터 자신과 함께하는 무리들과 색상 자체가 다를 수 있음을 자연에서 깨달았던 경험이었다. 역시 만병초의 뜻과 의미가 알려주듯 꼭 신체적 아픔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삶을 쉽게 판단할 뻔했던 나도 고쳐준 만병초였다.
만병초에서 색이 다른 꽃의 무리를 발견하고 알아보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세미 역시 블랙독의 일종이다. 작가가 표현한 색상은 짙은 갈색이지만 세미는 여전히 블랙독이다. 색이 짙다는 이유만으로 검은 유기견 입양을 꺼리는 현상을 '블랙독'이라 표현한다. 희고 품종이 좋은 강아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므로 필자같이 늘 실패하고 소외된 사람도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표현의 중 하나였다. 두 가지 색상을 하나의 가지 안에 품고 있는 만병초와 블랙독인 강아지 세미는 세상의 편견을 그대로 가지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이미지들이었다. 소외된 존재들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봐 주었다. 그들을 위해 서로가 딱히 무언가를 할 수 없어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너를 내가 알고 있어'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림 안의 세미는 여전히 귀엽지만 사실은 이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펠 부인이 일주일 여행을 떠나며 칼라이스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자신에게 부의 상징이었던 해바라기를 잘 돌봐 달라는 것과 그녀의 강아지 세미의 산책이었다. 아펠 부인은 평소 표정이 없고 차갑게 보이지만 한편으로 소외된 작은 것들을 살피는 마음이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강아지 세미는 그녀에게 그런 존재이다. 소외된 마음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몇 개월 동안 칼라이스에게 아무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소설 속 아펠 부인은 칼라이스에게 연민의 마음이 있었다.
그림 왼쪽 상단에 배치되어있는 붉은 꽃 칸나는 키가 무척 크고 매우 화려하다. 주인공인 칼라이스는 칸나와 자신의 앞에 놓인 들풀과 들꽃을 번갈아보며 어떤 꽃은 칸나처럼 크고 화려한 반면 또 어떤 꽃들은 작아 밟혀 없어질 운명을 가졌을까? 하는 질문을 오랜 시간 동안 해왔다. 사실 칼라이스에게 '칸나'는 갈망의 대상이었다. 칼라이스는 자신은 어째서 스스로 칸나가 될 수 없을까 하는 괴로움도 가지고 있었다. 그림에서 칼라이스의 시선은 하늘과 칸나를 바라보고 있다.
화려한 칸나와 대비가 되듯 칼라이스의 앞에 들풀과 들꽃들이 무색으로 배치되어있다. 칼라이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들꽃과 풀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마치 이 꽃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존재가 너무 작아서 아무렇게나 밟힐 수 있는 꽃, 어디서나 흔하디 흔한 그저 특별하지 않은 꽃. 들풀과 들꽃이 바로 칼라이스 자신이었다.
아펠 부인의 집에 얹혀사는 존재였던 칼라이스는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며 크고 화려한 꽃에 비해 별로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느꼈다. 때문에 칼라이스는 스스로 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쯤 행복의 색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칼라이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당신의 꽃_2. 선물 을 읽어보세요. 당신의 꽃-선물 일러스트 설명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
당신의 꽃_1. 산책 일러스트 설명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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