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 당신, 마주한. 이 순간
고양이 레오와 함께 하노라면
무엇보다 그의 집중력에 놀라게 됩니다.
가끔씩 놀러 오는 조그맣고 까만 거미 군을,
뻘짓하는 키키토네를,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을, 최고의 집중력으로 바라보고
최고의 집중력으로
몇 백 엔짜리 장난감 카사카사 붕붕에게 달려 뛰어오릅니다.
고양이 레오를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매 순간 집중한다면.
커다란 고양이가 되겠군요.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예쁜 선을 보면 어쩔 줄을 모르겠다.
요가가 끝나고
오늘 뭐 느꼈어요 하는 선생님의 질문에
실은 생각을 비우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없어요…’하는 말 조각이 올라오다
도중 ‘선이 참 이쁘네’ 시선에 마음이 따라갔던 것이 떠올라
“선생님 선이 너무 예뻤어요.” 했더니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칼 같은 답을 돌려주신다
평상시엔 어쩐지 천진하고 찰랑찰랑 넘칠 듯한 분이지만
중요한 순간엔 흐트러지지 않고 중심을 찾으신다.
이게 이 이의 매력인가 보다.
오늘 수업은 선생님과 나, 둘이었다.
요즘 요가를 배우고 있는 이 분은
우연이지만
내가 비기너 요기니 시절 좋은 영향을 받은 요가 선생님의 선생님.
우연과 인연이 겹쳤다.
두 분은 내 덕(?)에 요즘 한 번 나눌 안부를 두 번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요가를 하는 곳이 워낙 소수 클럽인 데다
새 사옥에서 새 컨셉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고
거기다 내가 참여하는 시간이 일반 수강생들이 적은 시간대다 보니 단 둘일 때가 있다.
사제 간이긴 하지만 다 큰 어른 남녀 둘.
보통 쑥스러울 법도 하지만 둘 다 보통은 아닌가 보다.
(물론 어른 남남 둘, 어른 여여 둘도 쑥스러울 수 있다)
담담하게
매트 위에 서고
마주한다.
그저 마주한다.
이 순간을 마주한다.
나와 마주하고
내 눈앞의 대상과 마주한다.
누군가와 단둘이
서로와 마주하고
때로는 거울을 마주하고
몸을 써 동작을 한다는 것은 꽤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이 강한 이들과 만나면
오히려 그 순간은 부드러운 진공이 된다.
첫날은 다소 어색하여 담담한 것이 아니라 담담하려 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사설이 아닌 본론에 집중하며
이내 그런 어색함은 사라지고
함께 하는 사람의 숫자 따윈 별 상관이 없어졌다.
우선은 나에게 집중하고
무언가를 제대로 전해주려 하는 상대의 진심에 집중하고
또 있을지 모르는 그 너머의 것에 집중한다.
마주 선 그의 선의 기운이 좋아서
그저 흉내가 아니라
나도 내 안의 좋은 선을 쓰게도 되는 것 같다.
징징거리고 주저하며 힘을 빼지 않는다.
꾸미느라 리듬을 놓치지 않는다.
꼭 이쁘게 해야지가 아니다.
투명한 마음과
적절한 힘과 이완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팽팽한 선.
요가에 있어 선의 이쁨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좋은 움직임은 좋은 선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이 아니고.
집중.
그것만 해도 바쁘다.
집중하다 보면 좋다.
좋은 것은 아름답다.
집중의 한 시간이 잘 지나고 남는 것은
충만함과 감사함
시원한 피로감으로 귀가하는 길.
인연이란 무엇이길래
타인과
오롯이 한 시간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서로를 보며 지났을까
그 묘함에
빙그레 웃음이 나며
오늘
누군가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낸 것에
감사할 뿐
- 제가 언젠가부터는 이 시간에 못 올 수도 있어요.
- 다른 이들이 오면 다른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어요.
= 어떤 형태가 되었든 함께 하는 순간 감사히 즐겁게 임하도록 합니다.
이 모든 것도 다 인간사다 보니
혹여나 어떤 오해나 서운함이 생길까 다져둔 어른들의 인사말.
시간이란
자기 자신과도
다른 누군가와도 유한하다.
다만
바라옵건대
이 순간
집중하기를.
#고양이와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