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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22. 2022

나는 남편을 사랑하는 걸까?

남편의 가능성을 사랑했던 걸까?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 뒤, 지금의 남편이 한국에 다른 일로 방문했었다. 그때 만나서 서울 곳곳을 관광하며 정신없는 2주일을 보냈다. 물론 다 내가 계획해서. 남편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었나. 우리는 또 대판 싸웠다. 내가 니 가이드인 줄 아냐고 왜 아무 계획도 없냐고.


남편은 그때도 똑같이 대답했다. 나는 관광을 안 해도 된다고. 그냥 여유롭게 되는대로 있어도 좋다고. 아마 죄책감이나 미안함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를 관광 가이드로 만들어놓고 왜 상대가 같이 계획하지 않는지 화를 냈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행은 싸우기만 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사진을 보면 참 행복해 보인다. 그때의 내가 참 좋아 보인다.






그 뒤로 남편은 세 번이나 한국에 더 방문했고, 나도 미국에 세 번을 다녀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했고, 나는 나 스스로를 며느라기로 만들었다가 피해자로 만들었다가 희생자로 만들었다가 불행한 아내로 만들었다가 난리부르스를 추었다.


결혼하고 첫 시댁 방문한 뒤,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각자도생 했다. 너는 시댁 나는 친정. 물론 코로나로 2년은 여행이 제한되기도 했지만. 서로 아무도 초대하지 않고 초대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 결혼하고 두 번째로 4년 만에 같이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비행기만 같이 타고 호텔만 같이 쓴다. 남편은 일, 나는 거기까지 쫓아가서 여행.




나는 더 이상 가이드를 자처하지 않았고, 남편이 비행기와 호텔을 결정해야 했다. 남편은 나와 함께한 4년 동안 훈련받은 성과(?)로 무려 두 달 전에 비행기를 예약했고, 호텔도 예약했다. 장족의 발전이지만 물론 그 과정은 험난했다.


남편은... 지금 준비하는 시험공부며 일이며 최우선 순위로 할 일을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몇 날 며칠을 비행기표와 호텔을 찾아보고 가격을 비교하고 있었다.


지금 네가 비행기표와 호텔에 몇 날 며칠 동안 시간 낭비한 거, 그거 일당 시급으로 계산해보라고, 차라리 이 시간에 너 공부나 일을 하는 게 돈을 버는 거라고.


비행기표는 가격보다는 최대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돈을 아끼는 거라고, 너무 일찍 도착하면 호텔 하루 더 예약해야 하는 거고, 이상한 시간대에 내리면 그날 하루를 버리는 거라고.


호텔은 어차피 일주일 짧게 머물 곳이고 어느 호텔이던 장단점은 있다고, 호텔이 싸면 위치가 안 좋아 교통비가 더 들 것이며, 어차피 쓸 돈이라고 설득을 해봐도 소용없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고민 고민하다가 결제했는데, 그것도 뭐 잘못해가지고 다시 전화를 하네 마네 전화해서 한 시간을 대기음만 듣다가 끊고... 어휴 답답해서 어떻게 돼가는지 다시 묻지도 않았는데 아마 전화도 까먹고 있을 것 같다.




남편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남편이 왜 이런 답답한 행동을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가긴 한다.


나는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긴 해도, 그냥 대충대충 결정하는 편이다. 뭐든 장단이 있겠지 이 정도면 됐어하고 약간 운에 맡기기도 한다. 나는 운이 좋았을까, 그때 그때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타이밍 기가막히게 행복한 우연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추진력 있게 빨리빨리 밀어부치면 자잘한 일들은 저절로 해결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잘되면 럭키인 거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하지만 사실 단점이 없는 곳은 없다. 어쩌면 나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하고, 보지 않아도 될 손해를 본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단점이 보이면 얼른 회피하거나 끝내버리게 된다.


남편은... 자신이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 최선에 최선에 최선의 선택지를 찾아낼 때 까지 심사숙고한다. 그렇게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거의 모든 일에 그렇게 시간을 들여 결정한다.


내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 상황에 얼마만큼 투자하고 싶은지, 이 환경에서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 등등. 단점에 대비하며, 장점을 기대하며,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면을 고려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


그래서 남편은 여행을 가면 그 장소 그 시간 그 분위기 작은 디테일까지 정말 잘 기억하고 그 순간의 감상까지 잘 표현한다. 정말로 현재를 살면서 현재에 감사하는 게 뭔지 보여주는 사람. 여행을 일상처럼 여유 있게 즐길 줄 아는 사람.


문제는 그게 마음의 준비뿐, 실질적인 효용성은 없다. 표를 산다거나, 식당을 예약한다거나 하는... 그렇게까지 세부적으로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


그래서 그런가 남편은 별로 후회도 없어 보인다. 진짜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진심으로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을 결정할 때에도 각자의 방식대로 결정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차피 결혼할 건데 빨리빨리 서류 작업해놓고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괜찮아 우리 둘 다 노력하면 돼지. 사랑하니까 다 잘 될 거야!!!


반전은 내가 그렇게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남편은 이 생각 저 생각 이러면 어떡하나 저러면 어떡하나 결혼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현실적으로 생각했겠지?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아가면서, 그 사람이 왜 이런 일련의 말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해는 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왜 결혼을 결정했을까?

나는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아니면 남편의 가능성을 사랑했을까?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 능력은 없는 사람이지만, 남편이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 나도 함께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나 보다. 내가 끝을 모르고 불안정하며 이리저리 흔들릴 때, 나와 똑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굳건히 잡고 나를 안정궤도로 다시 돌아오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의 남편은 참 어른스럽고 나를 품어줬었는데.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나의 변덕을 다 받아줄 것 같았는데. 사실 이건 나의 변덕이 남편과 상관없는 거라면 여전히 받아주긴 한다. 문제는 나의 변덕은 대부분 남편 때문에, 남편을 향한 것이라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


남편은 정말 진중하고 자기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었는데. 팔랑팔랑 날아다니며 이리저리 떠돌던 내가 남편과 함께라면 한 곳에 뿌리내려 안전하다고 느껴졌었는데. 하긴 이것도 지금도 그렇긴 한다. 다만 나의 뿌리와 남편의 뿌리가 근간이 다른데, 어쩌다 보니 나는 남편의 땅에 뿌리내리게 되어 거부반응이 생기는 걸까?




남편은 지금 이 상태가 진짜로... 그 사람의 최선인 거다.


남편이 지금 나에게 표현하는 그 사랑이 진짜로 최선을 다한 것일 거다. 남편이 지금 하는 일이나 성과도 진짜 진짜로 최선의 결과를 낸 것이다.


내가 볼 때 그 사람이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었고, 얼마나 노력을 덜 했으며,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했는지,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는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은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걸 전부 고려해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딱 거기까지. 더더더 최선을 다해서 안 되는 걸 되게 할 마음도 없으며, 최선을 다한다고 자신의 일상이나 휴식, 취미와 여가를 포기할 생각도 없는 거다.







나를 사랑해?
...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할수록 내가 상처받아. 그래서 혼란스러워.
나의 어떤 점을 사랑해?
너는 좋은 사람이었고, 나에게 친절하고 잘 대해줬었어. 우리가 함께였을 때 정말 재밌었었고...



우리가 싸우는 이 모든 순간은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기회이다. 상대가 자신의 주장을 표현할 수 있고, 내가 상대의 입장을 들어줄 수 있는 기회. 서로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해 줄 수 있고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기회. 


잠깐, 그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까? 나는 이제까지 당연히 내가 그걸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줄 수야 있지만, 내가 그걸 원하는 걸까?

나는 남편을 더 잘 알아가고 싶을까?

나는 남편을 이해하고 싶을까?


나는 남편을 사랑하는가? 이게 진정한 사랑일까?

나는 남편과 결혼을 유지하고 싶은가?

결혼했으니까 그냥 사는 건가? 그게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인가?


나는 어떤 결혼생활을 원하는가?

나는 남편과 어떤 결혼생활을 원하는가? 어떤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내가 진심으로 행복한가?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나는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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