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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18. 2022

완전체 남편과 일반 인류 생존기

차라리 이혼이 더 행복할까?


고개를 들지도 못할 정도로 힘이 없는 날에는 가만히 누워 창밖을 바라봤다. 집 오른쪽으로는 호텔 주차장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월마트 주차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정면으로는 한 층짜리 상가 단지가 있다. 어두운 상가 뒷골목을 흐릿하게 비치는 누리끼리한 전등 두 개, 그 빛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마치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뜨는 것조차 힘이 드는 날,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뜨면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다. 하염없이 눈물에 번지고 크기가 커졌다가 작은 점으로 보이는 그런 순간, 바로 그 순간 그 불빛 속으로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매일 밤 그 누런 불은 깜깜한 밤 길목을 밝혔고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내 눈을 채웠다.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중




2년이 지났다. 누런 불빛은 백색등으로 바뀌었다. 한창 공사 중이었던 왼편 건물은 벌써 41층 고층건물이 완공됐고, 건너편 건물은 재개발로 블락 전체가 허물어졌다가 다시 세워지고 있다.


저 푸르른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그런 일상에도, 불빛의 색이 변하고 창밖의 풍경이 바뀌었다.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아주 조금씩 어딘가는 바뀌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랑은 이러이러 해야한다"와 같은 추상적인 관념들의 본질은 결국 "나의 사랑은 이러이러 했으면 좋겠다"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네이트 판에서 본 명언. 결국 나의 기대 때문에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일까? 어느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게 정말 가능할까? 그가 나를 배신하고 그가 나를 버려도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게 가당키나 할까?


나의 사랑은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는 명확한 가치관이 있어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게 사랑일까? 나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도 함께할 가치가 있을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결혼일까?


차라리 이혼을 하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이혼하면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의 사랑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그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꼭 이혼을 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긴긴 시간 이렇게 보내다간 말라죽을 것 같아서 당신을 생각해낸 거예요. 언젠가는 만나게 될 당신 적어도 당신한테 난 그렇게 평범하진 않겠죠.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만나지지도 않는 당신. 당신 누구일까요?
<나의 해방일지>




남편과 대화를 하면 내가 정신병자가 될 것 같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자기가 한 짓은 생각 못하고 어떻게 남 탓을 하는 거지? 어떻게 세상에... 저런 인간이 존재할 수가 있지?


그런 사람과 차분하게 '대화'를 한다는 건 정말이지 극한 직업이다. 특히나 나를 평가하고 나를 비난하고 자신의 실패에 나를 원망하는 사람과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브런치북이 남편 '덕분에' 배운 대화법이지, 남편'에게서' 배운 대화법이 아닌 이유. 내 정신을 부여잡고 남편과 대화하기 위해 만든 나만의 방어기제이다. 나의 생존수단이다.


대화가 끝나면 항상 남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척 다정하게 말을 건낸다. 이제 화해하자. 기분 좋게 마무리 하자. 그게 아주 사람 미쳐버리게 만든다. 방금 전까지 나를 공격하고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놨으면서, 이제와서? 소시오패스 같다. 가스라이팅? 다중인격? 나르시시스트?


자신만의 세상에 사는 남편은... 본인은 행복할 것이다. 상대가 미쳐버리든 정신이 나가든 화병이 나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면서 살겠지. 스트레스도 없을 것이다. 이혼을 하든지 말든지, 자기 잘못은 모른 채 아주 잘 살겠지.


https://brunch.co.kr/brunchbook/kim70064789

https://brunch.co.kr/@kim0064789/406





사는 게 그런 건가. 좋았던 시간의 기억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멜로가 체질>




브런치 알고리즘 덕분에 계속 추천받는 이혼에 관한 수많은 글들. 나는 출판된 책보다는 브런치 글이 더 좋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 훨씬 더 선명히 읽히고, 중화되지 않은 솔직함에 더 공감가고 용기를 얻는다.


그런데... 어느 한 남편의 입장에서 쓴 이혼 이야기를 읽었다. 그 글의 복선과 줄거리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우리 남편이 글을 쓴다면 저런 생각일까 소름 끼치게 닮아있었다. 세상에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 공황장애까지 온 아내가 오해했다고 여전히 자기변명만 하는 모습이라니. 정말 대단했다.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자가 얼마나 용감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리고 우리 남편이 그렇게 당당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다음 날, 나는 너무나도 생생한 꿈을 꾸었다. 정독한 수많은 이혼 글들이 뒤죽박죽 되어 나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고, 나는 꿈인 줄 알면서도 숨도 못 쉴 정도로 울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면서도 펑펑 울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아침에도 나는 혼자였다.


우리는 아이도 없고 계획도 없는데, 대체 왜 이혼하지 않을까? 나는 정말 이혼이 하기 싫은 걸까? 나는 이혼이 하고 싶은 걸까?







https://brunch.co.kr/@kim0064789/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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