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Oct 26. 2022

진흙탕 개싸움 탈출기

현실이 시궁창인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이 시궁이었다.


남편이 이사를 또 못 간다고 한다.


나는 이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위안할 방법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활동을 등록하고, 모임에 나가고, 단골 카페와 단골 미용실을 만들고... 이곳이 참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자연 좋고 공기 좋고 회사 좋고 다 아는데 그런데도 나는 이사를 가고 싶었다.


나는 왜 이사를 가고 싶을까? 


나쁜 기억이 너무나도 많은 공간이라 얼른 떠나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날의 일들이 있었던 곳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뜬다. 그날의 기억에 떠오르면 나는 약을 먹을 때도 있고 조용히 넘어갈 때도 있고 감정이 요동쳐 울분을 토할 때도 있었다. 이 집, 이 도시가 진절머리 나게 싫어졌는데 남편 때문에 이사도 못 가고 갇혀있는 것 같았다. 한이 서려 죽어서도 지박령이 되어 떠나지 못할까 봐 두렵다.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라면! 나는 이사를 가면 된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그렇다면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이사를 가는 건가? 이사만 가면 이 모든 질풍노도의 원인이 해결되는가? 그건 아니다. 이사를 가기 위해 남편과 떨어져 살거나, 이사를 가기 위해 이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사는 나에게 하나의 현실 도피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을 무능력하다고 원망할 수 있는 안전장치였다. 거봐라 (그렇게 호구처럼 이용당하더니) 너는 니 일 하나도 제대로 못하냐고. 우리의 묵히고 묵힌 여러 가지 문제들을 모아 모아 원망을 가득 담아 보낼 수 있는 아주 정당한 사유였다.


현실이 시궁창인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이 시궁이었다.




'진흙탕 개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니캉 내캉 진흙탕에서 개싸움 하고 있으면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다. 둘 다 진흙에 파묻혀서 서로를 진흙 범벅으로 만들어 버린다.


네가 넘어져 있으면 진흙 묻은 손으로 너를 일으키려 하다 둘 다 중심을 잃고 넘어져 다시 진흙탕물에 빠지고

내가 울고 있을 때 너는 진흙 묻는 손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면 나는 눈 코 입에 진흙이 가득하니 더 괴롭고




너의 손을 잡으려면 내 손을 먼저 깨끗하게 해야 한다. 서로 힘을 빼고 두 다리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나와서 단단한 땅을 밟은 상태로 너를 끌어올려 줄 수도 있고,

아니면 나를 진흙탕물에 빠뜨려 상대가 나를 밟고 올라가 탈출할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고,

서로 협동해서 으쌰 으쌰 같이 나가자 할 수도 있고,

진흙 속에서 휴전하고 밤하늘 보고 누워 별을 셀 수도 있고,

머드팩 하며 웃긴 얘기 하면서 낄낄 댈 수도 있고,




어떤 게 가장 빨리 진흙탕에서 우리를 구해줄까?

우리는 이 개싸움을 끝내고 싶은 걸까?


어떤 사람은 진흙에서 탈출할 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

진흙 밖의 세상이 두려울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확,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진흙탕에 빠져서 허우적 대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걸어 나왔다. 진짜 어느 날 갑자기 기분이 나아졌다. 억눌려있고 답답하고 꼴도 보기 싫던 그런 마음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세상이 똑바로 보이고,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다시 제대로 화장도 좀 하고 머리도 좀 빗고 출근을 한다. 내리쬐는 햇살이 갑자기 반갑고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진짜 정신병인가 싶을 정도로 기분이 획획 바뀌네.








하와이에서 아침을

긍정충 꿈나무의 머리를 꽃밭으로 만들기 도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