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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Dec 02. 2022

맥시멀 시댁에서 미니멀리스트 며느리가 잃어버린 것

풍요 속의 빈곤

귀걸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귀걸이는 무려 10년 전 내가 대학교 학사과정을 졸업할 때, 동아리 친구들이 선물해준 귀걸이었어요. 내 졸업식까지 와주고 선물까지 주고, 게다가 귀걸이도 완전 내 취향에 딱 맞는 작고 예쁜 모양이라 더더욱 감동의 물결이... 10년 동안 사들이고 비우고 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내 곁에 남겼던 유일무이한 귀걸이, 꾸미고 싶은 날이나 예뻐 보이고 싶은 날 아주 작지만 소소하게 내 귀에 착붙하고 다녔던 귀걸이었습니다.


원래 귀걸이를 잘 안 하다가, 불안했던 왼쪽 귓볼이 막히려고 해서 샤워 후에 잠깐씩 귀걸이를 하려고 시댁에까지 가져왔어요. 그리고 자기 전에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았는데, 그다음 날 보니 한 개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거 있죠. ㅎㅎ 시댁에 간 지 이틀 만에 한쪽을 잃어버려, 방바닥과 샅샅이 쓸어봐도 쓰레기통을 뒤집어봐도 못 찾았어요. 그리고 며칠 뒤 또 다른 한쪽을 잃어버렸고, 찾으려는 시도도 안 했습니다. 그렇게 보내주었어요.


나의 귀걸이여, 아디오스...!




https://brunch.co.kr/@kim0064789/504 




시댁은 작은 도시에 위치해 있어요. 넓은 땅에 적은 인구가 살아서 굉장히 여유로운 동네입니다. 시댁은 2층 구조의 주택이고, 집도 크고 방도 크고 또 그만큼 집안이 가득 차 있어요. 그래서 귀걸이 같이 작은 물건을 잃어버리면 행방불명이 돼버렸어요 ㅎㅎ


아무래도 공간이 넓으면 살림이 그만큼 더 어려울 것 같아요 ㅜㅜ 저는 살짝 청소에 유난인 스타일인데, 그런 저도 집이 크면 관리하기 힘들어서 바로 포기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미니멀 라이프는 의식적인 노력이 정말 많이 필요해요.


소모품은 대용량으로 사는 게 더 싸고,

콜라를 사도 박스로 구입하고,

어디서나 쉽고 싸게 쇼핑할 수 있으니 안 살 이유가 없잖아요 ㅜㅜ


그러다 보니 집안에 물건이 고여있게 되는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장식, 선물 포장지, 리본도 박스채로

추억은 물건과 ‘메모리 박스’에 차곡차곡

테이블과 의자도 많이 많이

그릇과 용기도 케비넷 가득가득

음식은 냉장고 꽉차게, 과일과 간식들도 넘쳐나고

피크닉 라탄 바구니도 열두 개도 넘게...!







친환경적 생활 방식


신혼 초에는 남편의 생활습관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어요. 미국에서는 분리배출도 안 하고, 쓰레기봉투 종량제도 없고, 일회용품을 정말 많이 사용하잖아요 ㅜㅜ 지퍼락이나 일회용기 등 편리하긴 하지만 더욱 친환경적인 생활습관을 살짝 강요했었죠.


한국식으로는 원룸인 스튜디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저희는 집이 좁아 딱 필요한 물건만 갖추고 살아야만 하는 강제 미니멀 라이프거든요 ㅎㅎ 어른 둘이서 사니까 다회용기 사용하고 제로 웨이스트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가정이 저희와 같지 않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살림을 해야 하잖아요. 제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있는 집도 많고, 24시간 내내 간병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면, 일회용품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겠죠.


특이하게도 미니멀 실천의 큰 그림은 비슷한데 자잘한 부분에서 차이점이 보여요. 예를 들어 한국은 페트병 식수를 많이 사 먹어서 페트병 분리배출을 한다면, 이곳은 정수기 물을 엄청 큰 보온물병에 담아 다녀요. 하와이는 일회용 비닐봉지나 일회용 용기 등을 금지하는데, 다른 주는 여전히 캔이나 페트병을 분리수거도 안 하는 곳도 있죠. 그런데 가구나 물건들을 오래오래 사용해요. 대를 이어서 물려받은 물건들도 집집마다 많고, 물건을 그냥 버리기보다는 가라지 세일로 나눠 쓰기도 하고, 물건을 새로 사기 전에 주위에서 빌리고 빌려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각자의 삶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는 것만은 어느 곳이나 비슷할 것 같아요.




게다가 이곳은 거주형태가 전부 주택이에요. 그리고 옛날에 지어진 집이라 난방으로 대부분 벽난로를 사용한다고 해요. 가스나 전기로 켜지는 난로도 있긴 하지만 어느 집들은 여전히 땔감을 사용하는 곳도 있나 봐요.


겨울에는 당연히 난방이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따뜻하지는 않더라고요 ㅠㅠ 벽난로와 연결되어 공기를 내보내는 환풍구 가까이는 따뜻하긴 한데 집안 전체는 여전히 찬 공기가 느껴져요. 겨울이라 추운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ㅜㅜ


옛날에 중국에 살았던 저희 집은 바닥이 돌로 되어있어서 겨울에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기억이 있어요. 본투비 코리안인 저희 가족은 한국식으로ㅋㅋㅋ 침대에는 전기장판을 거실에 보일러 장판을 설치했었더랬죠.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분리배출도 성실하게 하고 냉난방도 규정에 맞춰서 하니까 정말 대단하게 느껴져요! 게다가 한국에서 육아나 간병을 하시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ㅎㅎ




자연 친화적 생활 방식


저는 도시에서 살아서 자연 친화적인 생활 방식을 집에서 식물을 키우거나, 식물원이나 산림원에 방문하거나, 여름에 바닷가에 놀러 가거나 하는 한정적인 방법으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곳은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산책하며 매일을 생활 속에 자연이 묻어나는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요.


시댁에서 남편의 어린 시절 사진 앨범을 함께 봤어요. 아가일 때부터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 자라고, 금붕어나 거북이와도 함께 자라고, 남편의 특이한 취향(?)에 반려동물로 방 하나를 패럿 방으로 해서 패럿도 여러 마리 키웠었고 (-o-) 개구리에 도마뱀 같은 파충류까지 (-O-) 만약 내 자식이 반려동물로 파충류를 키운다면 저도 응원해줄 수 있을까요? ㅠㅠ 직장에 살림에 육아에 바빠 죽겠는데 강아지도 아니고 파충류를? ㅠㅠ


그리고 돌도 안된 아가였을 때부터 산으로 바다로 호수로 정말 많은 가족 여행을 다녔던 추억의 사진들이 정말 많았어요. 피크닉 바구니가 많다는 건 그만큼 나들이를 많이 나가 가족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는 뜻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산모와 아주 어린 아기는 외출을 삼가잖아요 ㅠㅠ 한적한 해변가에 돗자리 깔고 누워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 찬 아기와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속의 오두막 집에서 여행을 한다는 게... ㅜㅜ 성인끼리만 놀러 가도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데 ㅠㅠ 하지만 요즘에는 캠핑이 유행이라 가족단위로도 많이 간다고도 하더라고요 ㅠㅠ






시댁에서 남편이 썼던 방 벽에는 남편의 작품(?)이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공룡 그림과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이 만들어낸 상형문자가 남아있어요. 한국이었다면 아기가 어릴 때에는 전세에 살면서 원상 복귀 해야 하니까 조심조심 지냈을 것 같아요 ㅜㅠ 자가라도 벽에 영구적으로 남는 그림을...? ㅜㅜ







이곳은 핸드폰 데이터도 잘 안 잡혀서 메신저 확인을 바로바로 못하고, 항상 인터넷에 연결되어 생활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매번 핸드폰을 제때 확인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굉장히 답답했는데, 이곳은 젊은 사람들이 아니면 핸드폰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전화를 안 받아도 음성 메세지를 남기고, 문자를 확인했는지 안 했는지 자체에 관심을 덜 두는 것 같아요. 편지와 카드를 우편으로 보내고 신문과 잡지를 구독하고 옛날의 생활방식으로도 충분한 거겠죠?




시댁에서 지내면서 여기가 친정이었다면 싹 다 갖다 버리라고 잔소리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집은 이미 다 정리가 되어 있어서 남의 집이라도 싹 뒤집어엎어서 정리하면 엄청 뿌듯하거든요 ㅎㅎ 하지만 다양한 일상이 있듯이 각자의 미니멀 라이프가 있고, 타인의 생활 방식 역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물건의 갯수가 아니라 그 물건으로 무엇을 하느냐 이니까요. 청소를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가족들과의 시간, 마음의 짐이 되지 않게 받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중요하죠.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거나, 너무 익숙해져서 얼른 비우고 싶어지거나, 또는 멀리 보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닥달하게 되는 그런 일이 없도록 미니멀 라이프의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저의 오만과 편견을 잃어버리기로 했어요! 잃어버린 물건은 귀걸이지만 더 열린 마음을 얻어갑니다.







https://brunch.co.kr/@kim0064789/314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https://class101.net/products/DCNO3sPxKUBstRcB0u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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