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Nov 19. 2023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속세를 떠나는 이야기







1. 한~~ 여자가 다~~섯번 째 이~~별(고민)을 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11월 일기


11월 초에는 일주일 정도 남편 없이 집에 혼자 있으면서 고요한 하루들을 보냈다. 옛날에는 혼자 지내는 게 무서워서 일부러 집 안에 불도 다 켜놓고 티비도 크게 틀어놓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켜고 조용히, 가만히 보냈다. 잠도 훨씬 오래 자고 차분하게 착 가라앉는 기분.


혼자 지낸다는 건 꽤 괜찮았지만 내 한 몸 건사하기가 참 힘들다 ㅠㅠ 매일 끼니를 챙기고 야채와 과일을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해야 하다니! 냉장고에 남편이 사다 놓은 과일들이 상하기 직전이라 잘라서 소분해 두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해바라기 씨도 내가 들고 마셔버리게 물병에 담아두고 ㅋㅋㅋ


이렇게까지 해놓아도 나는 누가 떠먹여 줄 때까지 기다리는 진상이라 ㅜㅜ 남편 올 때까지도 다 못 먹은 과일도 있었다. 남편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유기농 과일과 야채들을 챙겨 먹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거. 나도 나를 살뜰하게 챙기며 보살펴주어야 하는데 ㅜㅜ 넘나 귀찮은 것.







2. 산~~ 속으로 머~~리 깎고 완전하게 떠나버렸대



왼쪽 사진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면접 보러 가는 길. 블루문이라는 맥주 광고와 하늘에 달이 한 장면에 담겨서 사진 찍었다. 파란 달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라 Once in a blue moon 이라는 표현도 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가뭄에 콩 나듯. 그래 내 인생 긴긴 가뭄이래도 싹 좀 내보자!


가운데 사진은 갓생을 산다며 새벽에 헬스장 가는 길. 달이 작고 예쁘게 떠있어서 사진을 찍다가 홈리스인지 술취광이 인지 모를 어떤 사람이 말 걸면서 따라와서 허둥지둥 도망갔다. 워킹맘에 인싸인 친구가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새벽 다섯 시 반에 운동 인증하는 거 보고 감명받아서 나도 따라 해 볼까 했는데 이틀 나가고 쌍코피가 나서 그만뒀다 ㅜㅜ


오른쪽 사진은 처방받은 약 타러 가는 길. 커다란 무지개를 만났다. 회사에 반차내고 오랜만에 오전에 밖에 나왔는데 더워서 땀이 다 날 정도. 아 사무실 밖은 이렇게나 밝고 따뜻하구나~~ 가끔씩 콧바람 쐬어줘야 하는데 어디 나가기도 힘들어서... 사실은 귀찮아서 ㅠㅠ







3. 다음 얘기 되게 궁금할 거야~~ 간주 끝나면 계속할게



한참을 슬럼프에 빠져있다가 누가 옆구리 찔러주신 덕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가? 나는 정말 인복이 많은 것 같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 밖에 없어서, 나를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가득가득. 작은 일을 하더라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칭찬해 주는 분위기가 어색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는 아직 진심을 표현하기에도 서툴고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부끄러운데. ㅜㅜ


내 그릇에 넘치는 인복을 받아서, 나도 좋은 사람들 곁에서 조금씩 경계심이 풀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 컵에 담긴 물속에 불순물이 들어 있으면 하나하나 불순물을 꺼내는 것보다 컵이 넘치게 맑은 물을 부으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좁디좁았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정화되는 느낌.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선택할 수 있다. 억지로라도 의식적으로라도 계속 긍정적인 면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도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







4. 우린 서로가 사랑을 했고~~ 결혼도 하기로 했지~~



재밌게 보는 웹툰 중에 음식을 소개하는 내용이 있다. 초딩+아저씨 입맛이어서 딱히 관심두지 않았던 수많은 음식의 향연~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생전 안 먹던 음식이 갑자기 당기는 게 아닌가! 코로나로 아프고 어쩌고 하다 보니 입맛도 바뀌었나 보다 ㅠㅠ


그중 하나는 바로 딸기 생크림 케이크 ㅜㅜ 웹툰에서 너무나도 맛있어 보이는 그림을 보니 이건 진짜 안 먹을 수가 없다 ㅠㅠ 그날부터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찾아 빵집을 헤매던 나날들... 결국 마음에 드는 케이크를 못 찾았다. 다운타운에 파리바게트 생긴다는데 빨리 좀 열어주세요 현기증 나요ㅜㅜ 그래서 터덜터덜 롤케이크를 사 왔더니 남편이 딸기를 얹어 주었다.


또 하나는 바로 맥도날드 핫케이크와 밀크셰이크. 그런데 여기 맥도날드는 어째서 둘 다 안 파냐고요 ㅠㅠ 맥도날드 찾아 삼만리 하려다가 귀찮아서 포기 ㅠㅠ 대신 남편이 팬케이크를 만들어줬다.


메밀국수 그릭요거트 샐러드 등등 사 먹은 게 더 많은데, 뭔가 먹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점심에 뭐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ㅋㅋ


“요리란 자고로 먹는 이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수고하여 자신의 마음을 담는 행위입니다.”


“요리는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행위잖아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힘들고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조리하는 이타적인 행위.”


이 문장은 또 다른 요리 웹툰에서 읽었다. 나는 사실 요리를 잘 못해서 그 수고로움을 외식으로 대신했었다. 옛날에는 남편이 요리하는 것보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요리가 남편만의 사랑 표현 방식이라는 걸 인정하고, 그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가 표현해주고 싶은 만큼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줘야 한다는 사실도 알 것 같다.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요리도 기꺼이, 음식이 식지 말라고 뚜껑으로 덮어놓은 것도, 과일을 한입에 먹기 좋게 잘라주는 것도, 밤늦게 배고프다고 하면 몇 시든 지 간식을 같이 먹는 것도... 전부 남편의 이타적인 그 마음이겠지. 나는 혼자라면 그냥 귀찮음이 배고픔을 이겼을 텐데, 이렇게 챙김을 받는 것도 남편 덕분이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게 설거지의 범위나 방법, 청결의 기준 등이 다르더라도, 남편이 설거지를 제대로 해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설거지라도 해줄 수 있으니까.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다며 기회를 주지 않거나, 남편이 해놓은 설거지를 다시 해버리면, 설거지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테니까.







5. 우리 사랑 아무 이상 없었는데~~



하 우리 남편... 참으로 다정다감하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데 ㅠㅠ 입력한 그대로 출력되는 사람, 약간 포켓몬 같기도 하고.


요즘 나의 최애 음식은 삼계탕. 요즘에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귀찮더라도 비싸더라도 꼭 음식점에 가서 먹는다. 나에게 주는 나름의 작은 보상.


“결혼하면 다 의리로 사는 거야~ 나중에는 그냥 편한 친구야, 친구! 결혼은 현실이다?

설렘이라는 것은 아주 보잘것없이 느껴질 정도로 편안함과 안정감은 큰 행복이자 사랑이구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서 무엇을 하든 함께 즐거울 수 있다는 뜻이구나”


이 문장 역시 웹툰에서 읽은 내용. 웹툰에 온 세상이 담겨 있구나.


11월 둘째 주, 남편이 돌아오고 나서 평화로웠던 시기가 지속됐다. 한 2주? 효과가 너무 미미한 거 아닌가? ㅠㅠ





6. 그~~녀 내게 이~~ 한마디 남~~겨 놓고서


남편은 며칠 전부터 냉장고가 고장 난 것 같다며 수리 신청을 하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자기가 냉장고를 고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재잘재잘 말해주는데 ㅜㅜ...


망할 놈의 냉장고!!! 이놈의 냉장고 몇십 년 됐는지도 모르는데!!! 판매도 더 이상 안 하고, 수리하려면 부품도 못 구할 정도로 오래된 냉장고라, 부동산에서 집주인이 새 걸로 바꿔준다고 했었단 말이다. 하지만 하와이가 섬이라 물량이 적어서 3-5주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본인이 먹는 음식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은 냉장고에 채소나 유제품들이 상할까 봐... 후. 그 와중에 냉장고를 고치겠다며 하루종일 그 난리를 친 것이다. 당장 한 달 뒤에 시험인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냉장고 고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나의 뇌리를 스쳤고, 나는 화를 내는 대신 너 시험일 즈음에 오겠네! 얼마 안 남았다~라고 말해버렸다.


어쩌면 남편은 본인이 시험을 이번에도 못 볼 것이라 생각해서 벌써 포기해 버린 걸까? 냉장고를 핑계로 시간을 이렇게 허투루 보내고, 본인만의 정당화를 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하... 이 임시로 렌트한 집에서 에어컨도 바꾸고, 싱크대 음식물 처리기도 바꾸고, 이제 냉장고까지 바꿀 때까지 이렇게나 오래 있다니... 남편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https://brunch.co.kr/@kim0064789/469

https://brunch.co.kr/@kim0064789/167







7. 아~~주 멀리 떠~~나갔어 무기들아 잘 있으라고



그날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갔는데 사진 찍힌 뒷모습에 흰머리가 뙇! 내가 늙는다 늙어 ㅠㅠ 그렇게 폭풍수다를 떨고 12시쯤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자고 있다. 벌써... 자니?ㅜㅜㅜㅜ 공부는 언제 해?ㅜㅜ


그리고 그 다음날 흰머리 뽑아주는 남편 ㅠㅠ 병 주고 약 준다. 휴... 그래 올해 시험은 마음을 비우자. ㅜㅜ 이 세상 남편이 아니다. 나도 머리 깎고 산으로 떠나버리고 싶다.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8414149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https://class101.net/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744364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나의 우울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