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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y 26. 2024

시어머니도 못 꺾으실 외국인 남편의 고집

중꺾마 남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스포츠 경기에서 필요한 열정과 끈기, 지구력과 저항력!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절.대.로. 꺾일 것 같지 않는 마음을 가진 자가 있었으니, 바로바로 우리 남편 되시겠다... 시댁과 비행기로 6시간 떨어져 멀리멀리 살았을 때도 고집 센 건 알았는데, 시댁 코앞에 살게 되면서 새삼 더더더 느낀다. 고집이 어찌나 센 지 시어머님이 아니라 시어머님의 할아버님께서 오셔도 못 말린다 ㅜㅜ 증조 할아버님!!! 고조 할아버님!!! 조상님들!!!!! 헲미 플리즈ㅜㅜ




엊그제, 남편이 예전에 일했던 곳으로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옛날에 일했던 곳

옛날에 머물렀던 곳

옛날에 뭐 했던 곳...


진짜 어떻게 보면 그냥 동네인데, 젊었던 시절 회상에 잠긴 남편이 신이 나서 여기서 뭘 했고 저기서 뭘 했고 설명해 주었다. 추억이 가득 담긴, 어쩌면 남편의 역사의 한 장면일 수 있는 그런 공간에 다시 들어왔구나, 그 공간에 나를 데려와 주었구나, 하는 감성적인 순간도 있었다.


이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우리는 새로운 도시를 즐기고 추억을 만끽하다가 또 며칠이 지나 새로운 재밌는 일이 생겼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 장면은 찰나였고 나머지는 억겁의 시간, 인내심 시험장이었다고 하겠다.




처음 출발은 나름 평탄했다. 로드트립처럼 음악 틀고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나게 출발을 했더랬지.


그렇게 네 시간을 달려 코리아 타운에 도착. 정통 설렁탕 맛집이라고 해서 왔는데 해물파전 주문한다고 ㅠㅠ 심지어 피자 만 한 해물파전 4만 원짜리 ㅋㅋㅋㅋㅋ 그럼 네 시간 걸려 설렁탕 맛집을 왜 오냐고요 ㅜㅜ 설렁탕 육개장 수육 이렇게 먹으면 딱일 텐데 ㅋㅋ 한식 먹잘알 친구들이 너무 그리웠다. 그 와중에 깍두기 맛있다고 먹어 가지고 내가 추가한다니까 7천 원이라 괜찮다고ㅜㅜ 본인은 많이 드셨다고... ㅋㅋㅋㅋㅋㅋ


하와이에서는 아시안 인구가 많아서 그런가, 한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에도 보통 나에게 맡겼는데 갑자기 자기 나와바리(?)라 똥고집이 새어 나오는 건지. 하 그래, 외국인들 공동으로 잘 안 나눠 먹으니까. 그래도 나를 위해서 한식당 가준 게 어디인가...ㅠㅠ 너무너무 고마워 눈물이 나려고... 아무튼 나는 섞어 설렁탕 완뚝 했으니까, 맛있게 잘 먹었다고 여기 같이 와줘서 고맙다고 예쁘게 말해줄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 세 개가 똑같이 알려주는 길을 안 가고 자기가 아는 길로 간다고 (물론 그 길도 맞았다) 자신이 옛날에 일했던 건물 드라이브스루로 잠깐 차창으로 보고 가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더니, 주차장 저 멀리 차 세워놓고 걸어가자고. 내가 걸어서는 너무 힘들어서 못 간다고 했더니 진짜 쪼끔만 걸으면 엄청 멋진 산이 보이는 트레일이 있으니 거기 잠깐만 다녀오자고, 그거만 보고 돌아오자 해서 갔더니 또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정말 잘 되어 있으니 더 걷자고.


나는 힘들어서 못 한다고 이미 말했고, 우리가 사전에 이야기 한 그만큼만 준비가 되어 있는데. 자꾸 여기서 조금만 더 여기서 조금만 더, 왜 자꾸 말을 바꾸냐고. 사실 산책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동안의 우리 결혼 생활 전반적으로 이런 식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많아서 속으로 더 화가 났다. 이번에는 꼭 시험 볼 거다, 이번에는 무조건 시험 볼 거다, 하면서 내가 외노자에 외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무슨 똥개 훈련도 아니고.


남편은 뭐 어쩌고 저쩌고 설명 (나에게는 변명) 하다가 결국에는 알겠다고, 자기가 오랜만에 좋아하는 공원에 와서 너무 신나서 그랬나 보다고 강요로 느껴졌으면 미안하다고 먼저 해줬다. 또 먼저 미안하다고 하니, 나도 마음이 풀려서 결국 그 산책길에 건물까지 걸어갔다 옴 ㅠㅠ 잠깐, 여기서 훈련당하는 건 누구지? ㅋㅋㅋ




심지어 최악은 자신이 십몇 년 전에 묵었던 호텔이 좋았다고 또 예약했는데... 실상은 공항 바로 옆 투스타 호텔. 대체 뭐가 좋았다는 거지? 객실 내부와 시설들이 얼마나 낡았는지 ㅠㅠ 진짜 CSI에 나오는 범죄현장 같았다. 나는 근처 에어비앤비 가자고, 우리가 혹시나 이곳에 몇 달이라도 살게 되면 집이나 동네를 보고 결정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는데 ㅜㅜ


생각해 보면 뮤직비디오나 영화나 드라마 등등 약간 폐허가 된 장소를 실제보다 더 낭만적으로? 근사하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버려진 건물이나 주차장, 녹슬고 고장 난 차, 아무거나 무작위로 어지럽혀진... 사실상 쓰레기장. 그런 위태로운 사람이나 무질서한 장소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사실상 우리의 정신 건강에 이로운 건 안정적이고 정돈된 삶인 것 같은데... 아닌가?


아무튼 나와 남편은 각기 다른 부분에서 청결에 집착하는데, 남편도 이 호텔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럴 줄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했다. 또... 먼저 사과하니 뭐 어쩌겠는가 마음 약해지지 뭐 ㅜㅜ 이미 체크인했고 네 시간을 차 타고 와서 다운타운에 트레일에 지칠 대로 지쳐서 나는 그냥 자버림 ㅠㅠ


진짜 인간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다 보면 어떤 환경에서도 그냥 적응해 버리는 건가. 개인적으로 뭔가 불만도 유난도 견딜만할 때 나오는 것 같다. 이것만 좀 고치면, 이것만 좀 바꾸면... 우울증도 부자병이라고 한다더니. <행복을 찾아서> 의 아빠처럼 정말 지금 당장 먹을 거 걱정해야 하고, 씻을 수 있고 잘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면, 사람이 그렇게 필사적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억척스럽거나 무례하거나, 또는 절실한 사람을 보면 아이고 진짜 오죽했으면 그랬겠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모르겠다 사실 내가 뭐라고 남을 판단하는가.




집으로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ㅠㅠ 어제 그렇게 고생을 했으면 좀 빨리 집에 가서 쉴 법도 한데 고속도로 제일 빠른 길로 가면 세 시간 반, 반대쪽 길로 돌아가면 네 시간 반. 올 때와는 다른 대륙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꼭 보여주고 싶지만 나보고 선택하라길래 어차피 운전은 남편이 하니까 남편이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운전했는데... 진짜 엄청 막히고 도로 공사해서 막히고 사고 나서 막히고 ㅠㅠ 남편도 이렇게 막힐 줄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ㅜㅜ 거의 다섯 시간 반 걸려 집에 오니 밤 아홉 시였다. ㅎㄷㄷ


다만 풍경은 정말 예쁘긴 했음. 나도 피곤하다고 조수석에서 눈 감고 자버릴 수 있겠지만, 미안하다고까지 했는데... 와 예쁘다 정말 고마워 운전하느라 힘들지 억지로 몇 마디 건네다 보면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더 오바해서 폭풍 칭찬에 감사 표현하다 보면 그게 내 진심이 된다. 결국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나는 왜 바로 해주지 못했을까.




          언어감지          ⇌          남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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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다른 도시 나오니까 기분전환 되고 좋다! 나도 데려와줘서 고마워.

당신이 어렸을 때 이곳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이 된다. 추억을 공유해 줘서 고마워.

안전하게 운전해 줘서 고마워. 운전하느라 수고 많았어. 당신 덕분에 로드트립도 하고 정말 좋다!

나를 위해 코리아타운을 찾아와 줘서 고마워! 마트랑 한식당까지 여러 군데 있어서 든든하다.

미국은 자연환경이 정말 거대하고 압도적이야. 너무 아름답다.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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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끝날 때까지 끝난 거 아니쥬. 이번 여행 하루 밤 자고 오는데도 짐을 어찌나 많이 챙겼는지, 캐리어 하나를 꽉 채우고 트레일 가야 하는데 비 올까 봐 부츠에 레인재킷에 추울까 봐 후드티에, 자기 갈아입을 옷을 몇 개나 챙김 그놈의 혹시 몰라서. 내가 백날 미니멀라이프 해봤자 내 물건은 에코백 하나 딱 맞게 챙겨도 소용이 없다 ㅠㅠ 어차피 트렁크에 싣고 가면 별 차이 없긴 하지만.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고 빨래하고, 옷이 너무 많아서 빨래를 두 판을 했더니 새벽 한 시에 끝났다. 어휴 힘들어...




남편은 진짜 고집 세다... 자아성찰이지만 나도 한 고집하는데.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걱정된다는 엄마 아빠 말도 안 듣고 고집 부려 했는데. 만약 그때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말리셨으면 안 했었을까?


그래도 진짜 남편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산 꼭대기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라면 남편은 작렬하는 태양이라고 하셨으니. 하지만 스스로 납득이 되면 사과하고 시정한다. 나보다 낫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실천해서 남편에게 롤모델이 되어주는 것.


밖에서는 호인인 척 남들 도와주느라 자기 일도 내팽개친다면,

중요한 게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해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짠돌이 남편이 돈을 아끼려고 시간낭비에 몸도 고생시키고 있다면,

그 비용이 사실은 시간을 벌어주기에 바쁜 시기에는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시간 약속 못 지키고 자꾸 늦어서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면,

시간을 지키기 위해 역순으로 계획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기 고집만 부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얼마나 좋을 수 있는지 그 차이를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것.




내가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남편이 나에게 롤모델이 되어준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 언젠가는 분명히 배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거.

조금은 고생하더라도 새로운 경험과 추억, 그리고 노하우가 쌓인다는 거.

시간을 더 들여서라도 최고의 아웃풋을 내기 위해 준비할 가치가 있다는 거.

나에게 자신의 방법을 경험하게 해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거...(?)


자 그럼 누가 훈련받는 거지? ㅋㅋㅋㅋㅋ 결국 발라지는 건 나였다. 나는 의지와 체력이 없다 ㅠㅠ




천사님, 오늘도 꺾이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힘든 길이지만 꽃을 보는 5초는 좋았다... 진정한 의미의 꽃길(?)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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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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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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