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개인주의 남편의 최대 장점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도 그 사람이 살아온 배경을 바라보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가정환경, 성장 과정, 인생 경험 등 다각도로 바라봐 줄 수 있어야 한다. 그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섣불리 평가하기보다, 다양한 환경과 다양한 반응을 모두 복합적으로 고려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너는 어떤 상황에서 행복한지, 네가 간절히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너는 어떤 행동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는지, 어떤 결핍을 충족받고 싶은지
너는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그 말이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는 어떤 꿈이 있고, 그 꿈을 어떻게 가지게 됐는지
너는 어떤 일에 힘들어하는지, 어쩌다 네가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라나 문화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어느 곳에나 있는 가족의 모습들이 있다. 희생을 요구하고, 화목한 가정을 강요하며, 애증의 관계로 발전하는 가족도 있고, 자신들의 인생을 살며 개인의 행복을 각자 스스로 추구하는 독립적인 가족도 있는 거겠지. 그 차이를 인정하면 참 쉬운데. 내가 받고 싶고 주고 싶은 사랑의 방식과, 남편이 받고 싶고 주고 싶은 사랑의 방식이 너무나도 달라 우리는 서로 사랑을 주기만 하고 아무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남편을 관찰해 본 결과, 남편은 시부모님을 꼭 닮은 아들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지만. 부모님을 존경하며, 부모님의 가치관을 상당 부분 물려받고, 부모님과의 관계가 남편의 인간관계에 지표가 돼주는 것 같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자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지만 당신들의 인생 역시 중요하게 여겼던 것처럼, 남편의 사랑방식도 상당히 개인주의적이다.
아내에게도, 부모님께도. 남편이 나에게만 개인주의를 시전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부모님께도 똑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고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아 이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그렇게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남편이 보여주는 정말 미미한 노력이 이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냥 인정하게 됐다. 그래서 나에게는 고부갈등이 크지 않다. 내가 며느라기 자처했을 때 빼고는.
1. 연락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일이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남편. 남편은 시어머님의 부재중 통화에도 본인이 시간이 있을 때 연락 드리고, 문자도 본인이 확인할 수 있을 때 답장 드린다. 그게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자신이 할 수 있을 때 바로바로 하는 것.
우리가 장거리 연애 때에도 비슷했다. 하루종일 연락 한 두 번이 끝일 땐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게 저 사람의 최선이구나 그것도 정말 많이 노력한 거구나 하고 인정이 된다. 남편에게는 그게 '최대한 빨리' 였던 거다.
나에게도 시어머님께 연락이나 답장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면 좋겠다 정도. 자식들도 안 하는데 시부모님도 나에게 기대하시진 않겠지 하는 마음에, 그리고 남편도 우리 부모님께 안 하는데 나에게 강요하진 않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가만히 있는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한다.
2. 방문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소중히 하는 남편. 그래서 시댁의 방문 요청에도 못 갈 때는 확실하게 거절한다. 본인이 조금만 무리한다면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이어도, 그 무리를 하지 않음.
우리 남편은 코로나가 심했을 때 한참을 시댁에 방문하지 않았다. 나라면 내가 아픈 건 상관없지만, 혹시나 나 때문에 가족이 아플까 봐 걱정이라는 빈말이라도 좀 했을 텐데. 물론 남편에게도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올 2월에 결혼하고 처음으로 시어머니께서 우리 사는 지역에 오신다고도 하셨는데, 본인 공부해야 한다고 취준 끝나고 오라고 미루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보니, 장거리 연애 때 남편이 휴가 때마다 짧게라도 한국에 와준 게 정말 큰 노력을 한 거였구나 깨닫는다. 이 사람의 사상에서는, 이 사람의 능력에서는, 그게 엄청난 노력이었다.
나도 한국 갈 때 혼자 준비하고 혼자 간다. 남편이 시댁 간다고 하면 남편도 혼자 간다. 내가 친구들이랑 여행 계획 다 세워놨는데 갑자기 시댁 오라고 하면 남편 혼자 간다. 시부모님께서도 여행 재밌게 다녀오라고 해주신다. 각자의 독립된 삶이 있으니까, 사정에 맞추면 되겠지 뭐.
3. 돈
자기 자신이 번 돈을 참 아끼는 남편.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해서 대학생 때부터 장학금과 학자금으로 공부했다. 시어머님께서 어렵다고 하시더라도, 시어머님도 경제적으로 독립된 개인이라는 사실을 안다. 시어머님의 소비습관이나 경제관념을 존중(?) 해드리며, 타인의 일에 해결사로 나서지도 않는다. 물론 우리가 지원드릴 돈도 없고.
시댁에 며칠 동안 방문했을 때, 시어머니와 남편의 대화법이나 의사소통 방식을 보면서 많은 법을 깨달았다. 아, 남편은 시어머니께서 하시는 것처럼 대하면 되는구나. 그게 남편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이구나.
남편을 관찰하면서 내가 깨달은 점
1. 원래 저런 사람이다, 나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2. 할 수 있을 땐 분명 최선을 다한다, 그 정도가 내가 평가하기에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최선인 것.
3. 그래서 안 할 땐 진짜 못 하는구나, 인정하게 된다.
사실 어쩌면 무리해서 노력하면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과 몇 년을 함께하며, 남편의 개인주의도 어느 정도 존중해 줄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갈등도 많았지만, 지금 남편은 결혼생활에서 몇 년째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결같이 (아주 미미하게) 본인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나도 한국식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잠은 죽어서 자라" "사당오락" 이런 말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 아니다. 남편이 나고 자란 이 나라에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게 될 이 나라에서는 120%, 130%의 노오력을 쏟지 않는다는 걸. 남편은 항상 100% 최선을 다한다. 그것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한 만큼,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온전한 개인 시간도 중요하다.
그래서 남편의 개인주의를 존중하면서도, 내가 남편의 방식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의 범위를 넓히고, 그 빈도를 높여가면 된다. 그렇게 천천히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도 가능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https://brunch.co.kr/brunchbook/kim30064789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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