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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03. 2023

자기 방어적인 남편의 변명과 합리화가 듣기 싫다면

전업 수험생 남편의 자격지심

지난번 싸움으로 내가 배운 점, 그리고 고칠 점들을 적어본다.

이 대화를 다시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다르게 말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1. 갑자기 폭발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그때그때 충분히 표현할 것이다


남편은 우리 결혼생활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해줬을 때,

나는 아무 말도 안 하며 속으로 참고 참으며 견디고 있을 시기였다.

그런데도 나는 별말 없이 그래 네가 행복하다니 좋다는 대답을 했었다.


내가 한계치에 다 달아 폭발하며 분노했을 때 남편은 정말 진심으로 놀랐던 것 같다.

아무 문제가 없는 평온한 상태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진심으로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상대방은 불행하고 외롭고 힘들었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본인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을 수 있겠다.




삶의 근간이 되어주는 안정감

한 집에 사는 사람과의 유대감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는 긍정감


매일매일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고,

내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드디어 심적으로 사랑받고 안전하다 느껴졌었는데...


나는 그 평화를 깬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남편이 공부에 집중하기를 바라며 내 감정을 뒷전으로 미뤘다.

사실 너무나도 사소한 불만들이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만 빼면 나는 행복한 순간도 있었고 웃는 날도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최선이 나 자신을 등한시하게 만들었다.


물 한 방울이 반복되면 돌도 뚫는데

내 감정을 내가 그렇게 몰라줬었다.




남편이 내가 하는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아주 당연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 맞은 기분일 수도 있으니까.

이제까지 느꼈던 행복감, 안정감, 만족감이 한순간에 박탈당했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다음부터는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상태를 잘 알려서 남편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에 맞게 대처할 방법을 찾을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2. 너를 탓하는 게 아니라

나의 감정을 인정받고 싶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다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서로를 위해 기꺼이 노력하기도 하고,

나보다는 우리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해야 한다.


남편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내가 가장이 된 것도,

보험과 수입이 필요해서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남편이 시험을 봐야 취직할 수 있고 그래야 우리가 이사 갈 수 있는 것도,

남편은 매년 두 번의 시험 기회 동안 이사 갈 수 있다고 나에게 약속했고,

그 약속만을 믿고 나는 승진도 부서이동도 이직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내가 아픈데도 출근해야 한다는 게 힘들다는 말을 꺼내면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시험을 못 봐서 내가 불행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나는 왜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데

너는 항상 네 얘기로 주제를 바꾸냐고

왜 내 얘기를 듣지 않냐며 또 다른 주제로 싸우게 된다.


남편에게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대화에 상처가 되고

나에게는 내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대화에 상처가 된다.


내가 듣고 싶은 건 네가 힘들었구나 라는 대답이었는데...




한참을 그렇게 싸우면 남편이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려고 노력해도

결국 방어적인 태도로 형식적인 말만 건네게 되고,


나도 남편의 의도를 투명하게 보기보다

자격지심을 내세웠던 이전의 태도와 겹쳐 거부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대화 첫마디에 분명하게 나는 나의 감정을 인정받고 싶다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공감과 위안이 필요하고, 네가 그 대화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우리가 서로를 감정쓰레기통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사이에 중요한 감정적인 지지와 정서적인 충족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3. 남편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나도 인정하고,

그에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할 것이다


우리의 대화 패턴은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남편은 시험을 못 본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이 변명하고

자신이 지금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합리화하고

자신도 공부하느라 힘드니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남편의 이런 변명과 합리화가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편 역시 나에게 자신의 상처와 좌절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도 있다.

다만 당시에는 내가 폭발하는 나의 감정에 남편의 입장이 보이지 않았었다.




나는 묵묵히 내가 돈을 벌어오고 남편을 뒷바라지한다면

사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이렇게 희생해 가며 너를 돕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너를 믿고 지원하는 걸 모르겠냐면서.


하지만 내가 남편을 진심으로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내 감정을 인정받고 공감받고 싶은 만큼,

나도 먼저 남편의 감정을 헤아려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네가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고

네가 꼭 시험을 잘 볼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너는 그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표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4. 내가 남편을 진정시킬 수 있을 때,

그리고 나도 위로받을 준비가 됐을 때 대화할 것이다


남편이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신이 공격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공격적인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상대가 공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솔직하게는... 나는 남편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무의식 중에서.




나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행복하고 재밌게 살고 싶었지

누군가에게 상처 주거나 수치심, 죄책감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데...


이번에는 꼭 시험을 보겠다고

올해는 꼭 이사 갈 수 있다고

만약 남편이 약속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약속을 3년 동안 다섯 번이나 어기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했을까...?




나는 평가받는 것도 비교당하는 것도 질색하며 싫어해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지도 않고 통제하고 싶지 않은데...


남편은 자기가 계획을 잘 못 세우니

나에게 계획 세우는 걸 도와달라고 하고

자기가 우선순위에 집중하지 못하니

나에게 시간관리법과 목표설정하는 걸 도와달라고 해놓고


정작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다...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적인 면을 보고

예쁜 표현을 많이 하며

항상 의사를 묻고 존중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하지만 우리가 대화하는 목적은 갈등의 해소이지 유발이 아니다.


내가 의식적으로라도 나의 공격성을 낮춰야

남편에게도 방어적 태도가 줄어들 것이다.


남편이 계속 방어적으로 나오더라도

내가 남편을 진정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이성적이라면 원만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답답하고 좌절스럽더라도

남편이 건네는 위로의 말을 제대로 들어줄 수 있다면 대화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5. 남편이 변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 모습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남편은 자신에게 납득이 되면 바로 고치려는 노력을 보이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당연한 사실과 상황에 대한 설명에,

인과관계와 그에 따른 감정 변화까지...

답답함에 가슴을 내려치며 하나하나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괴로워서 그만하고 싶은데

남편은 본인이 납득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그다음에는 정석으로 사과하고 위로해 준다.


남편이 노력한다면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이 모든 게 의미가 있는 걸까?




하루에도 여러 번 사랑해 말해주고,

아주 작은 행동에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해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해

오늘도 일하느라 수고했어 고마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해 넌 분명히 해낼 거야

오늘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너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어

네가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 좋아

괜찮아 우리 같이 이겨내자

너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야


결국엔 내가 나의 상황에 지쳐서 남편의 특별함까지 깎아버리는 건 아닐까

내가 사랑했던 남편의 그 밝고 따뜻한 모습도 사라지는 게 만들면 어떡하지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함께일 때 행복한 걸까?

우리가 헤어지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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