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할까
뜬금없지만 어제 <서울의 봄 12.12: The Day (Seoul Spring)> 보고 서울 가고 싶어서 쓰는 기록.
격동의 80년대 끝자락에 바야흐로 6공 시대가 열리니... 일천구백팔십구년 십일월, 세상에 태어났다. 나야~~ㅎㅇ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철이 없었을 때에는 나는 나 혼자 큰 줄 알았다. 내가 알아서 잘 컸다고 믿었다. 내가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그만큼 그 상황에서 또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다.
내가 가장 바쁘게 살았다고 생각되는 시기는 아마 대학 신입생 시절이 아니었을까. 아침에는 학보사 일을, 낮에는 강의를 듣고, 저녁과 주말에는 과외를 했었다. 당시 시세 30만 원, 일주일에 두 번, 수업 당 두 시간씩. 월수, 화목, 토일 하루에 두 탕 씩, 기진맥진해서 집에 가면 11시 12시였는데, 6시에 일어나 7시부터 학보사 신입생 교육을 받으러 나갔던 기억. 그렇게 월 150 벌어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물으면 대학생 용돈 벌이는 됐지만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정말 힘들었었다.
그때까지도 사실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나 잘난 줄 알았다.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유럽여행하는 개념 찬 학생이라고 이 여행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처럼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빈털터리가 되어 학교로 돌아와 보니, 그동안 나의 삶을 지탱해 주던 가장 큰 기반은 부모님의 지원이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0에서 시작하기 위해서는 마이너스를 메꿀 엄청난 희생과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부모님께 매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 죄송스럽게도 여러 지원을 받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뒤에 있나 돌아보면 전부 등에 올라타있어요.” 어느 방송에서 들은 문장이다.
대충 내용이 한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앞 만 보며 뛰어갔다고. 내가 조금만 더 고생해서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해왔는데... 잘 따라오나 뒤돌아보니 전부 등에 올라타 있더라는...
지금 남편이 그렇다.
자기가 잘나서 여기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본인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러운 꼴 보아가며 피땀 묻은 돈을 벌어온다고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다. 우리가 영위하는 이 모든 안락함이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월세를 내는 것도 보험을 내는 것도 핸드폰 요금 인터넷 요금 식비 생활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본인 학비!!!!!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지출이 나가는데.
옛날에 파트타임 일을 그만두며 회사에서 보장받던 보험이 끊겨서 새로 등록할 수 있는 기간까지 반년 정도 이가 아파도 치과도 못 가고 불의의 사고로 응급실이라도 갈까 봐 불안했다는 사람이, 내가 다니는 회사 보험에 5년 동안 피보험자로 있으면서 그 불안감을 잊었나?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할까?
그 희생으로 얼마나 많은 가정이 유지됐고, 얼마나 많은 개인이 파괴됐을까
이 영화는 뭔가 지금 나의 상황과 평행이론처럼 다가왔다. 특히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날아와 꽂힌다.
서울의 봄, 민주화에 대한 온 국민의 열망이 가득했던 10.26부터 5.17까지.
나의 봄, 남편이 처음으로 시험을 등록했다는 10월 말부터 희망에 부풀었었다.
12월 12일, 하필 날짜도 남편 시험 예정이었던 날짜에 뙇!
영화 보기 전 나는 검색으로 이것저것 읽고 가서 결말을 알았는데, 내가 남편에게 지나가는 말로 결국 실패한다고 말해서ㅜㅜ 남편은 당연히 쿠데타가 실패하고 주인공이 이길 줄 알고 영화 보는 2시간 반동안 내내 이렇게 해서 어떻게 진압하지? 하면서 숨죽이며 봤다고 한다.ㅋㅋㅋ
하지만 언제나 발려지는 건 나였다.
올해도 남편은 시험을 못 본다 한다.
내년 상반기 시험을 볼 수 있는 날짜도 딱 5월 중순.
남편의 시험 합격과 취업을 염원하며 하와이 빼고 어디로든 가고 싶어 이사를 꿈꾸는 나의 봄... 왜 나 혼자만 고군분투하는 것 같지?ㅠㅠ 힘 빼고 긴장 풀고 지금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실패하면 백수, 성공하면 사짜 아입니까!”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팔자 좋은 백수..............................
나의 작은 역사도 반복될까?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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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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