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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Feb 20. 2024

카루이자와의 이상한 라멘집

우리 집 일본인 #12

"나만 마셔서 좀 미안하네."


미안하단 말과 그렇지 못한 표정.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마시는 맥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맥주는 맛있고, 달리는 자동차의 흔들림이 기분 좋았다. 괜찮다며 웃는 남자를 종종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어제보다는 덜 뚝딱이지만 술이 없으니 다시 리셋된 듯 약간 데면데면한 이 사람. 오늘 무슨 생각을 하면서 나를 맞이했을까. 


다 마신 맥주캔을 내려놓고 눈을 한번 깜빡였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차는 이미 굽이굽이 굽어진 산길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창밖을 쳐다보는 척 몸을 돌려 축축한 입가를 손등으로 문지르는데 곧 도착한단다. 일본 부자들의 별장이 모인 유명 관광지라고 들었는데 내 눈엔 가마쿠라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런 카루이자와의 상점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점심을 먹을만한 가게를 찾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런치도 끝났을 시각, 코로나 때문에 문을 연 가게도 얼마 없었다. 



"여기는 할지도 모르겠는데?"


되돌아온 상점가 입구에서 라멘가게의 입간판을 발견한 그가 골목으로 먼저 들어서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그의 걸음이 멈춰 선 곳에는 수상한 미닫이 출입문이 있었다. 문 틈으로 들여다본 가게는 한눈에 봐도 낡고 허름한 '관광지 한복판에 왜 이런 가게가?' 싶은 그런 곳이었다. 그는 걱정스럽다는 듯 뒤돌아 보았지만 그의 등을 살짝 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게가 아기자기하거나, 음식이 예쁘거나 하는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뱃속은 허기의 발광으로 이미 아비규환이었고,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어서 오세요."

"지금 식사되나요?"

"네, 들어오세요."


비좁은 가게는 네댓 명이 앉을 수 있는 카운터석이 전부였다. 그가 식권자판기에 돈을 넣더니 내게 버튼을 누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장거리 운전까지 해준 두 살 어린 친구한테 얻어먹기 미안했지만 우리가 오지 않았더라면 저녁시간까지 브레이크 타임일지도 모르는 데서 꾸물거리기도 뭐해 대충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 허름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딱히 큰 기대도 없었다.






카운터석의 의외의 순기능. 아직 어색한 상대와 마주 보고 눈동자만 또록또록 굴리고 있느니, 차라리 옆으로 나란히 앉아 주방 안쪽의 분주한 손놀림을 바라보고 있는 게 낫다.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그 남자의 시선도 주방 안쪽을 향해 있었다.  


가게 안에는 나, 그, 주인아주머니, 직원, 이렇게 넷뿐이었다. 그 흔한 라디오조차 틀어놓지 않았지만 면을 데치고 헹구어 내는 소리, 챠슈를 써는 소리, 조리대 위에 그릇 내려놓는 소리, 식기세척기 돌아가는 소리로 꽉 차 있어 별다른 대화가 필요 없었다. 음식이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과정은 재미있기까지 했다.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가 카운터 건너편에서 라멘그릇이 담긴 쟁반을 건네어주었다. 그릇까지 먹어치울 수 있을 것처럼 배가 고파 얼른 받아 들었다.


사실 나는 일본 라멘을 좋아하지 않았다.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담긴 스프는 짜기만 하고, 그 짠맛이 채 배어들지 않은 두꺼운 면발은 먹고 나면 항상 더부룩하다. 라멘가게들이 느긋하게 먹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는 것도 기피 이유 중 하나였다. 꼭꼭 씹어 먹어도 모자랄 판국에 누가 따라올 새라 면발을 부지런히 입안으로 옮겨 넣고,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다음 면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입에 넣을 준비를 해야 했다. 뒤에 식권을 들고 대기 중인 사람이라도 있으면 눈치까지 보게 되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 그 느낌.


정정한다. 난 라멘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싫어했다.



그날의 라멘 (정확히는 츄카소바(中華そば, 중화소바)지만 쇼유라멘이랑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날의 라멘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꿀맛 같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여지는 바쁜 젓가락에 지배되어 돈부리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면발을 들이켜고 있는데, 서비스라며 미니 챠슈동이 또 나왔다. 차에서 맥주 마시고 퍼자다가 부스스 일어나서는 라멘 한 사발 뚝딱하고 이것까지 먹으면 너무 게걸스러워 보일까 생각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주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어요?"


일본 생활도 10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한국이라 해야 할지 도쿄라 해야 할지 헷갈린다. 반사적으로 옆을 보았더니 그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아주머니는 면을 그가 사는 현에서 공수해 오는 거라며 마치 뜻밖의 인연을 만난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나와 그녀는 띠동갑이라는 것, 아들이 셋이라는 것, 주방 직원은 큰 아들로 나와 동갑이며 아주머니는 수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코이비토(恋人, 연인)?"


젓가락이 멈춰 섰다.


   




손님과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아주머니에겐 그저 스몰톡 레퍼토리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무 사이도 아닌 남녀가 유명 관광지에 단둘이 찾아 올 리도 없을 테니 '사귄 지 얼마나 됐어? 어디가 좋았어? 결혼할 거야?' 준비된 질문을 순서대로 캐묻는 즐거운 한 때. 그러나 지레 찔린 나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뇨, 친구예요."


몸을 틀어 아주머니의 '너네 연애하지 공격'을 살짝 피했다. 이내 아주머니가 어쭈, 같은 미소를 띠며 진짜냐고 물었다.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친구, 벗, 프렌드, 펑요우, 토모다치..., 그때였다.


"저는 좋아하는데 그쪽은 아닌가 봐요."


아니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항의하듯 그를 돌아보는데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고백했는데 차였거든요."


어폐가 있었다. 보류로 하자고 본인이 말해놓고는. 난 그저 우리의 관계를 천천히, 뭉근한 불로 데우며 지켜보고 싶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 오지 않았겠지. 하지만 거절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처음 온 라멘집에서 그저 때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뿐이었고, 찼느니 안 찼느니 아옹다옹하는 것 자체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남의 연애를 눈앞에서 피로하는 행동이 될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면발을 후루룩 들이켰다.


"어머,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요. 여기 커플들도 많이 오는데 처음엔 친구라 했던 사람들도 결혼한 사람들 많거든. 난 솔직히 손님들 하나하나 다 기억은 못하는데, 몇 년 전에 왔었는데 이번에 결혼했다고 반지 보여주러들 오고 그래."


그리고 몇 팀인가 아주머니 기억에 남은 커플 이야기가 휘몰아쳤다. 어찌나 입담이 좋으신지 왠지 모를 머쓱함에 면발만 빨아들이고 있던 나도 어느새 고개를 들고 경청하게 되었다.


"아, 그래! 내가 손금도 볼 줄 아는데 손 좀 줘봐요."


아주머니의 열렬한 응원을 받은 그가 냉큼 손을 내밀었다. 손을 이리저리 살핀 아주머니의 점괘를 들은 그의 옆모습은 그새 신자가 된 것 같았다. '다음'이라고 말하듯 아주머니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역시 젊음이 좋다며, 손이 곱다고 연신 쓰다듬었다.


"에이, 하나도 안 젊어요. 벌써 서른도 한참 넘었는데요"

"그래? 한 스물아홉 정도로 보이는데?"

"진짜요?"


아주머니는 프로였다. 서른을 한참 넘겼다는 사람에게 '스물아홉'이라는 숫자가 주는 매혹적인 울림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스물과 스물아홉의 차는 크지만 스물아홉과 서른몇 살의 차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토록 갈망하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만 돌아갈 수 있는 '이십 대'로 보인다는 그 한마디에, '사람 볼 줄 아는 아주머니'의 손금 해석 역시 틀림이 없을 거라는 묘한 신뢰가 싹텄다.


라멘집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하늘이 내려준 천생연분이고 처음엔 부모님이 반대하실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다 괜찮다고 했다. 그에게는 아주 좋은 아가씨니까 절대로 놓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덕담 수준의 점괘였지만 밥 먹으러 들어간 가게에서 점주와 수다를 나누거나 손금을 보는 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옛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밖으로 나와 돌아보니 대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같은 엔딩이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집을 나오고도 몇 번이나 그 좁은 골목을 뒤돌아 보았다.


가게는 그대로 있었다.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왜 그 후미진 골목에 있던 허름한 라멘집이 눈에 띄었을까.

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 생겼을까.

왜 나의 주저를 알기라도 하듯, 아주머니는 내 손을 쓰다듬으며 몇 번이나 괜찮다고 했을까.







"お手(손)!"


하늘에 노을이 필 무렵, 카루이자와에서 돌아온 우리는 그의 강아지와 공원에 와 있었다. 잔디밭과 나무 벤치 하나만 달랑 있는 그 공원은 증설을 위한 재단장 중이라 했다. 처음 보는 나를 경계하던 강아지는 공을 몇 번 던져 주었더니 기분이 내키면 10번에 1번은 손을 주게 되었다.


강아지를 보여주겠다며 주택가로 차를 몰고 간 그는, 어느 한 집을 지나치며 '여기가 우리 집'이라 했다. 그렇게 쉽게 집을 알려줘도 되냐는 나의 말에, 해코지할 것도 아니지 않냐며 가볍게 넘기더니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두고 강아지를 데려왔다. 산책의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던 강아지는 나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서 (털은 원래 하얗다) 제 주인에게 매달리는 바람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무릎에 강아지를 앉혀둔 채 운전해야 했다.


공을 물어오긴 하지만 주지는 않는 강아지를 뒤쫓아 오랜만에 잔디밭 위를 내달려 보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봄이라고는 하나 어스름한 시간이 되자 쌀쌀해졌고 그는 자동차 뒷좌석에 놓아두었던 니트 아우터를 꺼내와 어깨에 덮어주었다.


"미안해. 어제도 추워했는데 또 추운 데 데려왔네."


아주 가까이에서 그가 쓰는 향수 냄새가 났다.






역으로 향하는 길.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가 얼마나 빙글빙글 먼 길을 돌아갔는지. 캄캄해진 차 안에선 '밤에 드라이브하면서 들으면 좋을 것 같은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말없이 아쉬운 이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우니 입고 가라던 니트 아우터는 받지 않았다. 다음에 언제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전철을 기다리면서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무심결에 귀를 만졌다가 귓바퀴의 이어커프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종종 잘 걸려 있는지 확인했기 때문에 이 동네 오고 나서 흘린 것 같았다.


얼마 후, 조심히 들어가라고 그의 라인이 왔고, 이어커프가 없어졌다고 말하자 내일 날이 밝으면 찾아보겠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차피 GU(*저가 의류브랜드)에서 산 500엔짜리였다.





정확히 3년 뒤, 다시 다녀왔습니다.


https://brunch.co.kr/@kim2ram/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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