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의 소설 - 정세랑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엽편소설

by 멧북

평소 오래전에 쓰인 책들을 선호하다 보니 비교적 현대 작가들의 책을 멀리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인 정세랑 작가이다. 각종 SNS에서 매일 같이 쏟아지는 광고를 통해 알게 된 작가는 아니다. 그렇게 알게 된 작가였다면 책을 구매하지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평소 다른 분들의 리뷰, 서평을 읽어보고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요즘 엽편 소설에 관심이 있어 관련 책을 찾던 중 작가의 미니픽션이 눈에 띄었다. “아라의 소설” 책의 디자인도 무겁지 않아 좋았고 대충 글을 살펴보니 쉽게 읽혔다. 요즘에는 읽는 것보다 쓰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 보니 이전보다 독서 시간이 줄어든 나에게 필요한 소설이라는 생각에 구매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 01. 치카


꽤 현실적인 글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유난히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요양병원 또는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을 케어하고 있지만, 과연 몇 년 후에도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적으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분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진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케어 로봇에 대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현재 요양보호사들이 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이동을 로봇들이 더 안전하게 할 수 있었다.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 버린 지 오래되어 자료를 찾아보고 싶지 않다. 아직까지 로봇이 대체하기 힘든 부분이 정서 지원 부분이지만, 이 부분 역시 시간이 흘러 기술이 발전하면 어느 정도 대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요양보호사들이 생존하려면 이동, 배설 케어 등의 당장 로봇으로 대체 가능한 영역보다는 정서지원 부분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관심 없는 분들이 절대다수이다. 현재 장기요양분야가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고, 일하시는 분들의 연세도 높기도 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문제가 있다. 뭐.. 모르겠다. 내 직업의 미래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아마 내 직업도 로봇이 대신하지 않을까? 음.. 아직까지는 사례관리와 상담을 할 때 감정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이 오로지 매뉴얼대로 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작별인사의 철이 같은 로봇이 있다면 아마 내 직업도 사라질 것이다.


아무튼 밸런타인은 케어 로봇이 아닌 교감 로봇을 선택하였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불편한 것보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것이 더 힘들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육체적인 고통이 없는 것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오히려 육체적인 고통이 있더라도 자신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 생각한다.



# 02. 마리, 재인, 클레어


마리가 클레어와 헤어질 때 슬퍼하는 감정. 클레어가 삵이든 고양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감정을 나누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마리가 순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고 세상에는 마리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마리였다면 클레어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멀리 하였을 것 같다.


참으로 사람은 간사하다. 상대방의 본질을 몰랐을 때는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다가 상대가 본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상대의 아주 작은 부정적인 부분을 알게 되면 멀리하게 된다. 마치 본인이 멀지 않은 미래에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말이다. 삶을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인가 싶다가도 “에이.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을 한다.




이번 책은 다양한 엽편 소설로 구성되어있다. 그중에는 사랑스럽고 밝은 이야기도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삶, 걱정,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특히 ‘아라’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았는데 그중 20~30대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걱정, 불만, 포기에 대한 이야기인 ‘아라의 우산’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끝없이 성장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아무것도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윗세대가 오해하듯이 나른한 패배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고, 그저 팩트들이 가리키는 지점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중략) 20세기 진취적이고 무책임한 표어들이 힘을 잃어갈 때 태어난 걸 뭐 어쩌라고? 잘 속지 않는 세대에 속했다는 것에 만큼은 자부심이 있다. 참지 않는 세대에 속했다는 것에도.”(p.184)


“미니멀리즘은 이 시대의 실용주의며, 허영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영영 이해 못 할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후자가 그간의 착취 방식이 먹히지 않고 젊은 세대가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게 못마땅해 동동거리는 걸 보며, 아라와 아라의 친구들은 화가 난 채 웃을 것이다.”(p.189)


아직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특히 나이가 많은 상사들이 틈틈이 말하는 ‘그들의 삶’에 대한 정의를 듣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더욱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진취적이고 무책임한 표어들이 힘을 잃어가는 시대임에도 나는 ‘계속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 단순히 나이를 따지면 MZ세대이지만, 아무래도 나는 구시대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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