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첫만남 그리고 마주보는 내 마음
겨울밤, 창밖엔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캄캄한 병원 복도에서 퉁퉁 부은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날 첫 수술을 기다리게 되었다.
수술장으로 들어가는 아내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해방감을 느끼는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미안해 보였다.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잘 다녀올게.”
수술실 앞에서 장모님과 함께 기다렸다. 처음엔 담담하려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머릿속은 별별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1시간, 그리고 다시 30분이 더 지났을 때 간호사가 다급한 걸음으로 아기를 안고 나왔다. 얼굴엔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아기는 괜찮은가요?"
말을 잇지 못하고 간호사의 행동만 바라봤다. 아기는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겁이 났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는데, 간호사가 능숙하게 아기 입에 공기를 불어넣자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울컥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아기의 얼굴은 신비로웠고, 이 작고 연약한 존재가 이제 우리의 전부가 될 거란 생각에 어쩐지 무거운 책임감이 밀려왔다. 직장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더욱 버겁게 느껴졌고, 모든 게 낯설고 막막했다.
하지만 옆에서 아기를 바라보던 아내가 아픔을 참으며 웃어주는 모습을 보니 또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고맙고, 또 미안했다. 우리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그 낡고 불편한 간이침대 생활이 끝난다는 안도감도 잠시, 아기가 인큐베이터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덮쳐왔다. 어깨 위에 올라앉은 무거운 감정. 태어난 아이는 아직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둔 채 살아가야 했다. 병원 문을 나서면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기야, 미안하다. 아빠는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봐.”
그렇게 우리의 첫 가족은 두 가지 마음을 안고 시작되었다. 회복과 불안을 오가는 나날들. 다음 날 아침, 우린 무작정 몸을 움직였다. 그래야 덜 불안할 것 같았다. “우리가 잘 지내면 아기도 잘 클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을 의지 삼아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실, 두려움을 회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잘 되겠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그런 마음조차도 나의 진심이었다. 겁이 나고 서툴렀지만, 나는 매일 조금씩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 겨울밤, 눈 내리던 병원 복도를 다시 떠올려본다. 퉁퉁 부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아내, 아무 말 없이 웅크리고 있던 아기, 그리고 그 조용한 침묵 속에서 터져 나온 첫 울음.
그 순간이 모든 시작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그렇게 함께 첫발을 내디뎠다. 불안과 기쁨, 두려움과 감사가 뒤섞인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어깨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다.
지금도 가끔 겁이 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겁마저도 우리 가족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날처럼, 아기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다짐한다.
한 걸음씩, 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고. 무엇보다,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