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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18. 2024

低調(dī diào)

대만인은 띠띠아오(低調)

  띠띠아오(低調)를 한국어로 읽으면 '저조'다.  한국어 사전에는 '1. 가락이 낮음. 또는 그런 가락, 2. 활동이나 감정이 왕성하지 못하고 침체함, 3. 능률이나 성적이 낮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중국어 사전에서는 '1. 낮은 성조, 낮은 톤이라는 뜻의 명사, 2. 부드럽거나 비교적 무기력한 논조라는 뜻의 명사, 3. 비밀이나 알릴 필요가 없는 일을 떠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함을 뜻하는 형용사'의 셋으로 설명하고 있다. 

  중국어 사전의 이 세 번째 용법이 한국어에는 없는 용법이다. 나는 이 일을 반드시 조용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我覺得這事應該低調處理。)'에서 '조용히'에 해당하는 말이 띠띠아오(低調)인데, 여기서 '조용히'란 '소리가 안 나게', '분주하지 않게'의 뜻이 아니라, '남들에게 떠벌리지 않고', '남들 모르게', 의 뜻이다. 


  내가 처음으로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바로 이 세 번째의 형용사 용법,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묘사하는 형용사로였다. 

  중국어를 배우는 랭귀지스쿨에서 스위스 남자아이랑 잡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자기가 본 대만 사람들에 대해 묘사하면서 연방 띠띠아오(低調)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중에는 몇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도 대충 알아듣게 되는데, 이 친구는 말의 절반에 반복적으로 띠띠아오(低調)를 써서, 대화를 중단하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봐야만 했다. 부자라도 부자라고 티 내지 않고, 권세가 높아도 겸손하고, 잘나도 잘난 척 않고,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게 띠띠아오(低調)라고 했다.

  띠띠아오(低調)의 반대말은 '낮을 저(低)'대신 '높을 고(高)'를 써서 까오띠아오(高調)라고 하는데, 대만 사람들은 어느 방면에서 까오띠아오(高調)하는지 몰라도, 입고 다니는 옷이며 들고 다니는 가방이며 자신을 단장하는 데는 정말 띠띠아오(低調)해서 부자인지 아닌지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대만사람들은 부자일수록 남들이 자신의 부를 시샘해서 그게 화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해서 띠띠아오(低調)하게 산단다.

  스위스 남자는 대만에서 영어 가르치는 알바를 하면서 부잣집을 많이도 들락거려 봐서 제대로 느낀 것이 많을 것이다. 나는 가난한 학생이라 내가 접할 수 있는 최고로 권위 높은 사람은 교수님들 뿐인데, 우리 과 교수님들의 옷차림을 보자면, 대만사람들이 띠띠아오(低調)하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한국 사회에서 교수쯤이면 입고 다니는 옷만으로도 권위가 느껴지는데, 내 교수님들의 행색은 한국 사회에 옮겨다 놓으면 평범한 동네아줌마 아저씨 축에도 못 낄 정도로 허름하기 그지없다. 


한국인은 까오띠아오(高調)

  한국 사람들은 대만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까오띠아오 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밖에 나갈 때 화장은 필수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깔맞춤으로 단장을 해야지, 돈지갑이며 핸드백이며 명품을 하나쯤 들어야지, 핸드폰은 최신이어야지. 남자라면 집은 없어도 차는 한대 있어야지. 뭔 취미생활을 하자면, 취미 활동 그 자체보다 그걸 하기 위한 장비부터 갖춰야지 등등.


  내 룸메이트로부터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애가 그러던데, 한국 대학생들은 식당에 밥 먹으러 가서, 지갑을 테이블 위에 딱 얹어 놓고 밥 먹는다면서?” 

  그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하는데, 다음 말에 나는 기겁을 했다. 지갑의 브랜드를 상대방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란다.

  "세상에 만상에. 절대 그렇지 않아.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너네, 한국인에 대한 오해가 너무 깊은 거 아니야? 완전 오해야."

  "한국애가 직접 나한테 그렇다고 했는걸?"

  "말도 안 돼. 오해야 오해."

  그러나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해 보니, 한국 아가씨가 그런 말을 했다면 정말 지금의 한국 여대생들이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것이다. 내 언니가 서울로 시집을 가더니 '명풍 가방' 타령을 해댔던 것을 보면. 서울에는 정말 저런 풍토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싶은 것이다. 


당신은 띠띠아오인가, 까오띠아오인가?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내 엄마가 동네친구분들에게 막 자랑을 하는 모습이 영 보기 싫어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다. 여행 가서 내가 즐거웠으면 되었지 자랑은 왜 하느냐고. 우리 엄마의 대답에 그만할 말을 잊었다. 

  "요새는 자기 PR 시대야."


  중국말에 '띠띠아오 쭈어런, 까오띠아오 쭈어쓰(低调做人,高调做事)'라는 말이 있다. 띠띠아오 쭈어런(低調做人)은 사람됨은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고, 까오띠아오 쭈어쓰(高调做事)는 일하는 것은 목표를 정하면 단호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어에는 이런 인생의 지혜를 담은 말들이 참 많다. 내가 감동하는 지점!  


  대만에서 유명한 가수, 황명지(黃明志)의 노래 중에 '띠띠아오(低調)'라는 노래가 있는데 한번 들어보길 추천한다. 가사가 재미있다. 가사 일부에 바로 이, 인생의 지혜를 담은 문장이 나온다. 아주 조금만 옮겨본다.


  做事要高調 做人要低調 (일하는 건 까오띠아오, 사람됨은 띠띠아오)

  不喜歡假熬 也不需要炫耀(똑똑한 체하는 거 좋아하지 않아, 뽐낼 필요도 없고)

  我突然高調 偶爾又低調(나는 돌연 까오띠아오, 가끔 또 띠띠아오)

  不想戴高帽 名利我夠用就好(치켜세워지는 거 원하지 않아, 명리는 내가 쓸 수 있는 정도면 그만이야)

  我不要掌聲 也不用你的尖叫(난 박수소리 원하지 않아, 너의 '꺅!' 하는 소리도 필요 없어)

  每個人都是主角 不可能比較(모두가 주인공이야, 비교불가야)

  要符合大眾的期盼? 沒有必要 No No(대중들의 기대에 부합해야 해? 필요 없어 No No)

  我爽就好((너야 어떻든) 내 호쾌하면 그만이야)


  나는 띠띠아오(低調)인 편이지?

  사람들 속에 껴있을 때, 내 존재가 마치 공기 같아서,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남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딱히 눈에 띄지 않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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