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해 Jun 30. 2024

올리브오일 파스타

    경도가 엄지발가락 골절로 병원에 입원했다. ('골절'의 사전적 의미는 '뼈가 부러지다'인데, 고모는 어째 이 단어가 '뼈에 금이 가다'로 밖에 안 느껴진다. 어째 '엄지발가락이 부러졌다'라고 해야 상황의 엄중성이 제대로 표현되는 것 같다.)

    간단히 깁스를 하면 될 줄 알고 동네 병원엘 갔는데, 첫 번째 뼈와 두 번째 뼈가 벌어진 정도가 3m를 넘어서 쇠심을 박아 넣는 수술을 해야 한다며 큰 병원에 가보랬다. 다음날 아침은 토요일이었고, 동네 의사 말로는 수술 날짜도 잡고 병실도 기다려야 하니, 간다고 그날 바로 수술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큰 병원에 갔던 그날 그냥 바로 수술을 했다, 사람 마음 준비도 못하게. 

    그리고 수술만 하면 집에 오는 줄 알았더니, 당장은 입원을 해야 한단다. 경도 엄마는 월요일 하루를 휴가 내서, 수술을 하던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3일간 경도의 병실을 지켰다. 

    삼일의 입원 후에는, 사실 퇴원을 해도 안될 건 없었지만, 반깁스 한 채로 혼자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 발가락 위 살점이 찢어져 꿰맸는데 이걸 소독하기 위해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들러야 한다는 점 때문에, 경도 아빠는 입원할 수 있는 최대치로 입원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와 아빠가 언제까지 병실을 지킬 수는 없어서, 일반 병실에서 간호간병 병실로 옮긴다. 간호간병 병실은 보호자 없는 병실이다. 간호사가 이것저것 환자의 시중을 다 들어주고, 일주일에 두 번 머리도 감겨준다. 

    고모가 보기에 경도의 엄마 아빠는 참 강하다 싶다. 방금 수술이 끝난 어린애를 어떻게 저렇게 혼자 입원을 시켜놓나 싶다. 고모는 혼자 있을 경도가 좀 안쓰럽다. 직장 다니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고모가 좀 돌봐줄 생각이다.


    "경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고모가 물어본다. 

    "스파게티." 이탈리아에서 살기를 해 본 고모는 올리브오일 스파게티 요리가 전문이다. 경도도 이걸 알기 때문에 맨 처음으로 스파게티를 꼽는 것이다.

    "또 먹고 싶은 거 더 있어? 햄버거 사갈까?" 경도가 평소에 햄버거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고모가 묻는다.

    "아니, 햄버거 사 오지 말고 미니햄버거 만들어와." 

    미니햄버거는 큰고모 전문이다. 모닝빵에 떡갈비를 얇게 썰어 넣고 양상추, 오이피클, 토마토를 끼우고 여러 가지 소스를 뿌리면 미니 햄버거가 된다. 직장 다니는 제 엄마는 이런 걸 만들어 주는 법이 없으니, 늘 고모에게 만들어내라고 한다.


    경도가 혼자 있게 된 첫날, 고모가 스파게티와 떡갈비 한 조각을 보기 좋아 담아 점심과 저녁 사이 간식으로 들고 갔다.  

    경도는 올리브오일 스파게티를 깨끗이 먹어치웠다. 떡갈비를 담기 위해 데코레이션으로 깔았던 상추 한 장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그러고 나자 그릇에는 맛있어 보이는 노르스름한 올리브기름만 촉촉하니 남았다. 집에서 스파게티를 해 먹을 때면, 고모는 식빵 한 조각을 따뜻하게 구워와서 그 기름에 찍어먹게 해 줬다. 그 맛이 아주 환상적이라는 것을 경도도 인정했다. 고모는 한 방울의 기름도 안 남기고 접시를 깨끗하게 닦아먹는 걸 조카들과 경쟁도 한다. 

    "고모가 빵도 하나 구워 오려고 했는데, 너무 배부르면 저녁 못 먹을까 봐 안 구워 왔지. 가져올 걸 그랬나?"

    "응, 가져왔어도 될 것 같은데." 경도가 노릇노릇한 기름이 좀 아깝다는 듯이 쳐다본다. 

    "안타깝네." 고모가 하는 소리. 

    "응." 경도의 대답.

    "그럼 기름을 마셔." 고모의 제안.

    고모의 말에 경도는 답이 없다. 이 고모 또 헛소리한다는 것을 아는 경도는 "에효~"같은 한숨도 이제 안 쉰다.


이전 17화 병원에서 시간을 때우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