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꼭 싸운다니까

물론 내 탓은 아님

by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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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간단하게 빵으로 때웠다. 전날 들어오는 길에 부기스 정션에서 사 온 것이었다. 아침마다 배가 고프니 숙소에서 먹고 출발하자고 사 왔는데, 사 오길 잘했다. 덕분에 든든이 배를 채우고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완전히 싱가포르에서 하루를 보내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모든 것이 아쉬워진다. 에어컨 먼지 때문에 목구멍이 간지럽던 이 호텔도, 어제 망해버린 한식 푸드코트도, 앉을자리가 없어 투덜거리던 쇼핑몰도 갑자기 다 아쉬워진다.


그러니까 '지금'을 즐기라는 것이겠지.

지나고 나면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을 완전히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마음 가짐이 한 것 부풀어 오른 것이다. 어쩌면 내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싱가포르 여행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웬만한 관광지는 다 돌고 가자고 했다. 대동이는 알겠다고 했다. 사실 그는 굳이 가고 싶지 않았던 곳들도 있었으리라.


먼저 찾아간 곳은 차이나 타운이었다.

싱가포르에 처음 여행 왔을 때 숙소를 여기로 잡았었는데...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다시 그 호텔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이젠 문을 닫았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사원과 호커 센터를 구경했다.


차이나타운에는 불아사라는 불교 사원이 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복장을 점검해야 하는데, 노출이 있는 옷을 입었다면 앞에서 나눠주는 스카프로 몸을 둘러야 한다. 나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므로 겉에서만 구경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절 안쪽의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며 자신만의 소원을 소원하고 있었다.


'만약 신이 나에게 딱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


나는 종종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같은 뻔한 것 밖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더욱이 불교에서 가르치는 철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무엇인가를 바란다'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니 '아무것도 빌지 않는 것'이 답일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주세요'라던지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다간 부처님께서 "땡!"이라고 하실 것 같은...


그런데 진짜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열반에 올랐겠지...


참 욕심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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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에는 맥스웰 역이 있다. 그 근처에는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는 호커센터가 있는데, 이곳의 분위기는 정말 끝내주니 꼭 들려보길 바란다.


에어컨은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로컬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일종의 지붕은 있지만, 야외 느낌이 나는 푸트 코트라고 보면 되는데 맑은 육수에 후루룩 국수를 먹고 있는 사람, 치킨이 올라간 밥을 받아 들고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 나처럼 구경와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 등등 사람들도 요리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이곳에서도 밥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해외에서 음식을 잘 못 먹어 격하게 고생해 본 대동이는 '구경'은 하지만 좀처럼 먹고 싶진 않은 눈치였다. 그래서 그냥 한 바퀴 돌기만 하고 차이나 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이나타운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하지레인이나 리틀인디아를 생각하면 정말 조용했다.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가게들이 비어있거나 리모델링 중이었고 그나마 사람들이 있는 곳은 식당이었는데 아직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곳들도 많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대신 여전히 운영 중인 식당들은 대부분 유명한 맛집인지 미슐랭에 올랐다는 간판들 달고 있어 호기심이 생겼다.


'생각해 보니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맛집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은가?'


한번 가볼까 고민하며 그냥 지나가 버린다.

예전에 고급스러운 식당에 들어가서 '푸트 코드와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아'라고 실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때인데..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지금 다 즐겨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 먹어보고 싶었던 것은 미슐랭 가이드 맛집이 아니었다.


요즘 싱가포르 여행에서 가장 핫한 장소중 하나인데 일명 '사테거리'로 도로를 막고 길거리를 채운 테이블에서 맥주 한잔과 고기 꼬치 한 접시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미리 후기도 찾아봤는데 누군가는 아주 맛있었다고 하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하여 꼬치가 다 식어 나와 실망스럽기도 하다 했는, 그야말로 호불호가 갈리기에 오히려 궁금한 곳.


그런데 사태 거리에 도착하니 맛은 둘째치고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해가진 도시가의 밤거리, 꼬치를 굽는 연기가 짙은 밤하늘 위로 뿌옇게 올라오고, 그 곁으로 살짝 취한 사람들의 즐거운 기분이 리얼하게 다가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설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낮에 그 거리를 먼저 지나가 보았는데 그때부터 거리는 막혀있었고, 벌써부터 사태를 팔고 있는 노점상도 있었다. 곁으로는 호커 센터도 있어 사테가 아니더라도 다른 음식들도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여전히 대동이는 그 경치를 흥미롭긴 하지만 시큰둥하게만 쳐다보고 있다는 것.


굳이 먹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여기가 사람들한테 엄청 요즘 인기 있데."

나는 슬쩍 운을 떼 보았다.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마주 않아 있어 줄 대동이긴 하지만, 술도 안 먹고 사테도 안 먹는 사람을 앞에 앉혀두고 나 혼자 부어라 마셔라 하고 싶진 않았다.


사테 거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밤이기에 낮에는 우선 주변을 좀 더 구경하기로 했다. 여기서 '우선 좀 더 구경한다'라는 것의 의미는 저녁에 사태를 먹으러 온다는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구경. 어쩌면 조금은 그가 고민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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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거리 근처에는 GS와 현대 건설이 지었다는 '마리나 원'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그 안쪽에 멋진 정원이 있다고 하여 보러 가기로 했다. 블로그 후기에서 확인한 바로는 인증샷 한 장을 건지러 가는 곳인 듯하여 사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이니 가볼 수 있는 곳은 다 가보자는 마음이 나를 이끌었다.


'안 와봤으면 후회할뻔했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감탄하게 되었다.


겉에서 보았을 때는 그냥 높은 건물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니 곡선으로 층층이 쌓인 벽 사이로 햇살이 비쳐 들어오고, 그 속에는 잘 꾸며둔 실내 정원이 위치해 있었다.


그야말로 빌딩숲 속에 숨겨 둔 비밀 정원.


한쪽에선 조용히 흐르는 폭포처럼 물줄기들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물줄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멋진 인생샷이 완성된다.


특히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려 보길 바란다. 그러고 보니 싱가포르는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즐겁게 여행을 한다던데, 이런 포인트를 발견하니 실제로 그럴 것 같았다.


진짜 멋있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양해를 구한다. 우리는 '마리나 원'에서 '마리나 베이'로 이동해 또 푸드 코트에서 한식을 먹었다. 역시 한식은 마리나 베이인 것 같다. 다른 곳 보다 가격이 조금 더 나가긴 하지만, 그만한 자격이 있다.


이번에는 비빔밥과 라면을 시켰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리 잡는데 좀 고생을 했는데, 다행히 음식이 나오기 전에 테이블을 잡을 수 있었다.

비빔밥은 비빔밥 맛이었고 라면도 라면 맛이었는데 해외에서 먹으면 왜 이렇게 맛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비빔밥은 정말 기본 정도였고, 라면은 약간 부족한 라면맛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식'이라 불릴만한 맛이었고, 때문에 우리는 바닥을 싹싹 긁어 비웠다.


생각해 보니 이것이 오늘의 첫끼였다.


'그렇게 많은 음식을 보고 돌아다니면서, 도대체 아무것도 안 먹고 뭐 한 거지?'

이곳에서 몸무게가 적어도 2kg은 줄어 갈 것 같았다.


헤가 질 때쯤 우리는 사테 거리로 다시 구경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가기 전에 음료수 한잔하고 가자.'


대동이는 헤이티에서 마셨던 베리 쥬스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음료를 주문하는 곳 앞으로 사람들이 줄까지 서며 몰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계산을 마치고 나니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40분쯤 걸리는데 괜찮으실까요?"


처음에 14분 걸린다는 줄 알았다. 아무 생각 없이 오케이 했는데 '괜히 주문했다'며 바로 후회했다.

하지만 화장실도 가고, 근처 구경도 하고, 분수쇼도 보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갈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 되었다.








기다리는 사이 빵도 사기로 했다.

헤이티 아래층에는 브래드 톡이 있다. 그곳에서 빵도 사서 밖에 나가 야경을 보면서 먹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문화 충격을 받게 된다.


빵을 접시에 담아서 결제하는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동일한데 접시에 까는 유선지가 없다.

순간 대동이의 표정이 굳었다.

유선지까지는 환경오염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쳐도, 접시를 잘 닦은 것이 맞는지 얼룩이 있거나 행주로 닦은 흔적까지 보여서 당황한 것이다.


약한 결벽증이 있는 그이지만, 약간 마음을 내려놓은 듯 빵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눈앞에서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한 단계 득도하는 것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빵을 두 개 골라서 계산하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분수쇼도 슬쩍 구경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그래도 아직 우리가 시킨 음료가 나오기까지는 한참 멀은 듯했다. 심지어 전광판에 주문 번호는 멈춰서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뭔가 미심쩍은 마음으로 40분을 기다렸다. 결국 우리는 기다리다 지쳐 픽업대로 찾아갔다. 그런데 영수증에 주문 번호를 보여주자 직원이 바로 우리의 음료를 찾아 주는 것이 아닌가?


아.

탄식이 나왔다.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앞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시킨 음료를 가져가지 않아서 주문 번호가 빠지지 않으니까 계속 밀리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 뒤의 음료가 나오더라도 번호는 화면에 뜨지 않았던 것이다.


시스템의 오류인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손님들을 마냥 기다려주는 직원분의 배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격 급한 한국인의 DNA기 여기서 모나게 삐죽 튀어나와 버리는 것이다.


'사람이 안 찾아가면 일정 시간 뒤에는 넘기고, 나중에 찾으러 온다면 자기 번호가 지나간 것을 알 테니 찾으러 가게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찾아가지 않은 주문 번호가 화면에 가득 차 있어서 뒤에 시킨 사람은 자기 음료가 만들어졌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어쨌든 받았으니 된 것이다.

역시 모를 때는 물어보는 게 답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야경이 반짝이는 마리나 베이 앞 밴치에 앉아 우리는 빵과 음료를 먹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수분과 탄수화물을 섭취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동안의 여행을 돌이켜보며 떠들고 있자니 첫 번째 여행지가 진짜 끝이 난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행 내내 숙소 때문에 힘들어했던 대동이는 나와 반대로 속이 시원하다는 듯 어서 쿠알라룸푸르로 떠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쉬운데 속 시원하다니..'

매우 서운해졌다.


같은 경험을 하고도 서로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게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더라도 마음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은 것이었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상대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도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이때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다시 사테 거리를 찾았다. 밤이 되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있었다. 싱가포르 사람들 여기 다 모여 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거리고 있었고, 낮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은 양의 사테를 굽는 연기가 공중을 채우고 있었다.


'냄새가 난다.. 맛있는 냄새가..'


하지만 대동이가 굳이 먹고 싶어 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이 저녁도 먹고 온지라 나도 먹지 않은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기로 했다. 그래서 왔다 갔다 구경만 했다.


한국 사람들이 추천했던 7번 8번 가게가 역시나 가장 바빴는데, 둘러보니 다른 곳도 맛은 비슷할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사테가 먹고 싶다기보다는 사람들과 모여 떠들며 술 한잔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동이는 콜라를 마시면 된다고 했겠지만 '같이 마시는 분위기'를 낼 순 없을 테니까.


또한 여기서 나의 여행 기준이 발동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하기 싫은 것에 대해서 더 주의 깊게 배려할 것.'

심지어 방금 마신 음료 때문에 계속해서 속이 좋지 않다는 대동이였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자.'

아쉬웠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싱가포르의 마지막 일정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돌아가는 길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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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이는 사실 싱가포르 여행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숙소도 마음에 들지 않고, 편히 쉬지도 못했으니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날카로워졌다고 할지라도 서로 티를 내지 않은 편이라 나도 그를 많이 신경을 써주지 못하긴 했다.


그러나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좋은 척할 순 없었던 것이고, 때문에 계속해서 투덜거려 왔던 그에 결국 내가 터져버렸다.


"그래도 나는 좋아.

다 재밌었고 좋았는데, 오빠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나는 좋은걸 이야기하길 좋아해. 물론 안 좋은 것도 있겠지.

그런데 그것마저도 그냥 웃고 넘기고 싶어.

하지만 오빠가 옆에서 하나하나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그제야 대동이는 자신이 지나치게 투덜거렸다는 것에 대해 깨달았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그랬어. 미안해.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이번 싱가포르 여행이 좋지 않았거든.

그래서 그랬나 봐. 이젠 안 그럴게."


불같은 전쟁은 아니지만, 후덥지근한 싱가포르의 밤을 선선하게 만들 정도의 짧은 냉전이 있은 후로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버스 안에서 우리 앞자리에 앉은 부부의 웃고 떠드는 소리만이 어색한 공간을 채울 뿐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트러블이 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같이 떠났다가 헤어지고 오는 커플, 등을 지는 친구, 두 번 다시 같이 여행 가지 않겠다 다짐하는 가족들이 있겠는가?


그에 비하면 우리의 싸움은 언제나 싱거운 편이었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서운한 것을 이야기하고 난 뒤, 서로 감정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한 것.

이런 류의 대화를 나누고 난 다음에 드는 생각이 '좀 더 빨리 이야기했었어야 했다'인 것을 보니 동행하는 여행에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도 한 듯하다.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히 좋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데 어떻게 좋은 것만 있을까?


안 좋은 것도 있고 삐걱 거리며 맞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런 순간 서로 한 발자국 물러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더욱 가까이 다가가 부딪치더라도 대화를 나눠볼 필요도 있다.


물론 너무 세게 부딪히면 파국이니, 부드러운 목소리와 단어 선택은 필수적.


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나이가 들며 그런 인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배려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해서 한 발자국씩 서로 물러만 서다가 어느새 가까이 가기엔 너무 멀어져 버린 사이.


우리들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적절한 거리감각을 익힐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컨디션에 따라 그 거리가 때론 멀어야 할 때도, 반대로 가까워야 할 때도 있다는 것.


너무 멀어지거나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건 오히려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고들 하나보다.


나는 아직도 그 거리 감각은 도통 능숙하게 조절할 수가 없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서로에게 사과하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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